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장자는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통일한 후,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그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고 했다.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고작 사물을 인식할 뿐이지만, 기(氣)는 텅 비어서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려 기다린다고 했다. 도(道)는 오로지 빈 곳에만 있는 것, 이렇게 비우는 것을 장자는 '심재(心齋)'라고 했다. 이 말을 풀으면, '마음 굶김'이다. 장자는 이어서 '심재'를 실천하여 생기는 결과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심재'를 하면,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귀로 듣는 일, 마음으로 듣는 일 등에는 아직 제한적인 자기 관점이 강하게 적용되는 단계이다. 기(氣)로 듣는 단계는 아직 이념이나 가치가 개입되기 이전으로서 세계의 원초적 상태이다. 어떤 가치나 관념이 자리 잡기 이전 혹은 자기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은 단계이다.
그런 마음으로 어젠 좋은 고향 선 후배들과 강릉 정동진의 <바다부채길>을 걸었다. 우리 나라 가장 동쪽 바다에서 소리를 듣고 싶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소리를 찾아, 전북 부안 흙집에서 현악기를 수작업으로 깎고 있는 박경호 현악기장을 지난 금요일에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소리 찾는 목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외롭게 세상에 없는 소리를 찾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보는 색이 실제 색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듣는 소리도 실제 소리가 아닐 수 있다. 소리에 뼈가 있을까? 소리를 듣는 귀에는 뼈가 있다. 그렇지만 소리 자체에는 뼈가 없다. 한낱 음파에 불과한 소리가 의미를 가지고 해석이 되는 것은 귀속의 뼈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 어떤 소리도 귀속의 뼈가 없다면 들리지 않는다. 세상 소리들의 뼈는 내 귀속에 있다. 소리는 결국 밖에서 보는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소리가 아닌 '말에 뼈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그저 하는 말 속에 심상치 않은 뜻이 담겨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오랜만에 공유하는 기형도 시인은 "소리의 뼈"가 있다는 김교수의 새로운 학설에 주목한다. 그런 김교수는 한 학기 내내 침묵하는 모습만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다음 학기에 김교수의 침묵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세상을 떠도는 모든 소리들이 이전보다 더 잘 들리는 걸 그들은 느꼈다. 장자가 말하는 귀나 마음이 아닌, "기(氣)로 소리를 들어라"는 말이 이해된다.
애석하게 강릉 정동진 바다에서 난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소리의 뼈/기형도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 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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