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2021년 1월 26일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한다. 그런데 행복이 즐거움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즐거움을 쫓아다닌다. 자본도 즐거움을 주겠다고 늘 외친다. 그러다 보니 즐거움은 쾌감이 되고 중독이 된다. 중독이란 황홀경에 빠지는 거다. 황홀경이란 정신을 놓고 무아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황홀경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중독에서 약물로 이어지는 길로, 죽음 충동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 충동이 아닌 생의 약동에 이르는 길이다. 그건 지성과 영성을 통해 자아를 해체하는 것이다. 쾌감이 하나의 감각만이 극대화되는 것이라면, 후자의 기쁨은 온 존재에 퍼져 나가는 충만감이다. 이것을 우리는 '지복(至福)'이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유데모니아이다. 거기에는 늘 웃음이 있다.
어제 큰 깨달음이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웃을 시간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건 시간을 조절하는 능력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다. 산다는 건 늘 어떤 약속을 지키는 것의 연속일 뿐이다. 그렇게 살다가 그날 주어진 일을 하다가 죽는 거다. 특별한 삶, 특이한 죽음 같은 건 없다. 오늘도 주어진 약속 지키며, 즐거운 마음으로 웃으며 사는 거다. 그러다 죽는 거다.
그러면 우리는 하루 종일 몇 번 웃는가? 혹은 다른 사람을 몇 번이나 웃게 만드는가? 웃음은 마음의 조깅이다. 웃음은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긴 마라톤과 같은 우리의 삶을 버티려면 마음에도 운동이 필요하다. 건강한 신체를 위해서 매일 조깅을 하 듯이, 웃음으로 마음의 조깅을 하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가 우리를 매우 위축시킨다. 그러나 이렇 때일수록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웃음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웃는 표정을 만나면 즐겁다. 웃는 표정을 가지려면, 지속적인 얼굴근육 에어로빅을 통한 얼굴표정 훈련에다가 밝고 좋은 생각, 마음의 여유를 갖고 웃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좋은 얼굴표정을 가질 수 있다. 우선 좋은 표정을 갖기 위해서는 웃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여러 표정 중에서 웃는 모습은 자신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기 때문에 슬퍼지는 것이고,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즐거워진다고 웃음 연구자들은 말하고 있다. 따라서 웃음은 좋은 매너이기도 하지만 또한 자신의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주변에 곱게 나이가 드신 분들을 보면, 우리는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밝은 표정을 발견할 수 있다. 늘 웃으며 얼굴에 미소를 담고 살면 얼굴이 바뀐다. 젊었을 때 얼굴 표정은 선천적인 것이라면, 40대 이후의 얼굴 표정은 후천적인 것으로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웃는 얼굴을 결정하는 포인트가 입매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진 찍을 때 ‘치즈’라고 외치게 하는 것이다. 즉, ‘치’할 때 입모습이 웃는 얼굴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할 때 사진기가 ‘찰칵’하면 좋지만 간혹 ‘즈’할 때 사진이 찍히면 입술이 쑥 나와 버려 실패할 수도 있다. 따라서 웃는 얼굴의 입매를 갖기 위해서는 ‘위스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다. 그 이유는 ‘위’ 할 때 뺨의 근육이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가 근사하게 웃는 얼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위’라고 발음하고 그 상태에서 ‘스’라고 발음하면 입이 크게 벌어진다. 다시 그 상태에서 ‘키’하면 크게 웃는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스마일 마크를 그려보면 잘 알 수 있다. 입 꼬리 모양이 인상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위] 입을 가운데로,
▪ [스] 입을 옆으로 당긴다.
▪ [키] 입의 근육의 반동을 이용하여 입 꼬리를 위로 치켜 올린다.
웃는 얼굴에 그 다음 중요한 것은 눈동자이다. 눈동자와 관심 사이에는 관련이 있다. 관심이 커질수록 눈동자가 커진다. 그렇지만 크게 뜬 눈동자에 또한 미소를 머금어야 한다. 왜냐하면 밝게 웃고 있는 ‘위스키’의 입 모양과 함께 눈동자에 미소가 없으면 그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인위적인 미소로 보이기 때문이다. 입과 눈이 함께 웃을 때 비로소 멋진 표정이 완성된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며 진실의 창이다. 눈동자에 미소를 띠우면 상대방은 호감으로 보답한다.
"웃음은 영혼이 연주하는 음악이다. 내 웃음에 친구가 웃는다면 음악은 재즈가 된다. 전염되어 온 동네가 웃는다면 음악은 오케스트라가 된다. 오늘도 기꺼이 오케스트라 단장으로 나서 보자." (윤정구)
오늘 아침은 웃자고 웃기는 시를 공유한다. 사진도 웃는 모습의 내 사진을 찾았다. 몇 년 전 것이다.
맑은 웃음/공광규
캄캄한 밤 시골집 마당 수돗가에 나와
옷을 홀딱 벗고 멱을 감는데
수만 개 눈동자들이 말똥말똥 내려다보고 있다
날이 저물어 우리로 간 송아지와 염소와 노루와
풀잎과 나무에 깃들인 곤충과 새들이
물 끼얹는 소리에 깨어 내려다보는 것이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나를
들판과 나무 위를 깝죽깝죽 옮겨 다니면서
웬 낯선 짐승인가? 궁금해했던 것들이다
나는 저들의 잠을 깨운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삼겹살로 접히는 뱃살이 창피하여
몸에 수건을 감고 얼른 방으로 뛰어가는데
깔깔깔 웃음소리가 방 안까지 따라온다
"얘들아, 꼬리가 앞에 달린 털 뽑힌 돼지 봤지?"
그리고 웃는 얼굴을 가지려면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눈을 돌려야 한다. 예를 들어, 만일 찾아 온 손님을 보고 ‘아 인상이 험악하군!’ 또는 ‘성가신 할머니’, ‘매너 없는 아줌마’같은 마이너스 이미지를 갖는다면 친절하게 서비스할 마음이 사라진다. 즉 웃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인간은 누구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상대에게서 매력 포인트를 찾아내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근사한 안경, 멋진 수염, 다정한 잉꼬부부’ 같은 식으로 손님의 매력을 찾아내 플러스 이미지를 갖게 되면 보다 더 양질의 친절한 서비스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중국 속담에 “웃는 얼굴이 아니면 가게 문을 열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먼저 웃으면 웃음은 상대방에게 전이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상대도 바로 쉽게 웃게 된다. 웃음은 호수 가에 던져진 작은 조약돌이 만들어 낸 물결처럼 아주 멀리 퍼져 나가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간다. 주변에 곱게 나이가 드신 분들을 보고 부러워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공통적으로 밝은 표정을 발견할 수 있다.
웃음이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한다. “여성에게 있어서 최고의 화장술은 웃는 것이다.”(나이팅게일) 웃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법이다. 그러나 웃는 얼굴이나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갖기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 밝은 마음을 갖는 습관과 웃는 표정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습관화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웃음은 훌륭한 몸짓 언어로 좋은 소통의 수단이다. 피부가 다르고 피부색, 종교, 신분, 연령 등이 달라도 웃음은 훌륭한 대화의 수단이 된다. 전 세계 공통 언어가 ‘웃음’이다. 입으로 말하는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는 미소나 웃음만으로도 충분히 서로 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말이다.
웃음은 신이 내린 선물’(KBS1 TV의 <생로병사의 비밀>)로 건강에도 좋다. 우리가 “웃으면 엔도르핀의 작용으로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이 증대하고 스트레스가 감소한다.”(월리엄 프라이). “웃으면 깊은 호흡으로 공기를 복부 깊숙한 곳까지 들이마시게 됨으로써 복부 근육 운동을 자져 와 변비를 치료하는 한편, 침과 기타 소화액의 분비를 촉진시켜 콜레스테롤 증가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허은아, , p. 141에서 재인용.) 웃음은 심장 기능에 긍정적 효과를 주고 면역기능을 강화 시킨다. 또 한 연구에 의하면 하루에 15번 이상 웃는 사람은 의사를 멀리하고, 하루에 3번만 크게 웃어도 아침 조깅을 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웃음은 위에서 위산이 많이 나오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위산과다의 예방과 치료에 한 몫을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웃음(laugh)과 미소(smile)는 다르다. 외부의 자극에 의해 무심코 터져 나오는 것이 웃음이라면, 본인이 미리 의식하여 만들어 내는 능동적인 웃음이 미소이다. 좋은 표정을 갖기 위해서는 늘 자신의 얼굴에 미소를 유지하는 것(keeping smile)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웃는 연습을 반복하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웃음이 습관이 되어 무의식적으로도 미소를 띤 표정을 유지하여 몸에 달라붙게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표정을 관리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표정은 인생을 바뀌게 할 수 있다.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 미소를 띤 모습은 어느 잘 생긴 배우보다 멋지고 근사하다. 또한 그런 표정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친절을 느낄 수 있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이 느껴져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왜 우리들의 삶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있을까? 경쟁, 일자리, 스트레스 등의 진부한 단어들이 떠오른다. 이제 삶의 질을 따질 때 웃음 짓고 웃음 짓게 하는 능력, 곧 유머를 중요한 척도로 삼아야 한다. 여기서 유머는 단지 웃음을 야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권위를 해체하고, 누구든 친구로 만들고, 가치를 창조하도록 유도한다. 유머에는 반드시 지적 향연, 곡 지성이 수반된다.
지성이란 혈연과 감정의 늪에서 벗어나 우주적 합일을 지향하는 고매한 정신활동이다, 당연히 책이 중심이다. 왜냐하면 책에는 인생과 세계의 지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지도를 갖고 갈 위에 나서는 순간, 우리의 몸은 가벼워지면서 생각의 회로가 열린다. 반면 교환과 계약은 유머를 얼어 붙게 만든다. 쾌락을 탐닉할 때도 웃음기가 사라진다. 오직 지성의 길 위에서 길 벗을 만날 때만 농담이 터지고 유머가 폭발한다. 그러니 지성과 유머가 자아내는 책 일고 쓰기의 통쾌한 일에 접속하는 것이 좋은 삶의 길에 새로운 척도가 되어야 한다.
복지제도가 지향하는 것은 배움터의 확장이어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으로 인해 누구든 어느 시기에는 백수가 되기 때문이다. 국가가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복지가 공부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특히 삶과 연결된 공부의 장이 중요하다. 그 이유를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자신의 책,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에서 <숫타니타파>를 인용하면서 설명한다.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습니다."고 세존이 말하자,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묻자, 세존이 이렇게 답한다. 이 답이 흐트러진 내 일상과 굳어진 내 영혼을 펴주었다. "믿음이 씨앗이고 감관[감각 기관과 그 지각 작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수호가 비며, 지혜가 나의 멍에와 쟁기입니다. 부끄러움이 자루이고 정신이 끈입니다. 그리고 새김이나 나의 쟁깃날과 몰이막대입니다."
- 씨=믿음: 가능성에 대한 자기 신뢰 그리고 타자들에 대한 신뢰
- 비, 바람= 감관의 수호-감각 능력을 잃지 않도록 벼르며, 동시에 감각의 지평을 확장한다.
- 멍에와 쟁기=무지로부터 깨달음을 위해 힘들지만 매일 공부하며 정진한다.
- 자루와 정신=부끄러움-잘 못했으면 바로 반성하며 방심하지 않도록 정신을 가다듬는다.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는 "몸을 수호하고 배에 맞는 음식의 양을 알고 나는 진실을 잡초를 제거하는 낫으로 삼고, 나에게는 온화함이 멍에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속박에서 평온으로 이끄는 정신이 내게는 짐을 싣는 황소입니다. 슬픔이 없는 곳으로 도달해서 가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밭을 갈면 불사의 열매를 거두며, 이렇게 밭을 갈고 나면 고통에서 해탈합니다." 그렇다. 농부가 밭을 갈 듯, 내 심전(心田, 마음의 밭)을 실제로 매일 돌보아야 고통에서 해탈되어 마음의 평화가 온다. 주말 농장의 야채들도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고 한다. 나도 자주 내 심전(마음의 밭)을 방문하여 경작해야 한다. 이 경작이 문화(culture)이다. 그래야 문화적 높이가 올라가고, 그만큼 사유의 시선도 향상된다.
'경작(耕作)'하지 않고 문화에서 나오는 문명을 기대할 수 없다. 문화라는 단어의 어원이 잘 말해준다. 배철현 교수는 최근 자신의 <묵상>글에 다음과 같이 문화를 잘 정의했다. "‘문화’에 해당하는 영어단어 ‘컬쳐(culture)는 ‘땅을 개간하다, 돌보다’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 동사 ‘콜레레(colere)의 과거 분사형인 ‘쿨투라(cultura)에서 파생되었다. 그 의미는 ‘관리된 것, 개간된 것’이란 의미다. ‘문화적인 인간’이란 자신을 관리한 사람, 자신의 마음을 갈아엎은 자다. 그(녀)는 그곳에 새로운 종자의 씨를 심고, 그 씨가 발아하고 자라나고 커다란 나무가 되어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사람들이 그 나무가 자비롭게 주는 그늘에서 쉬도록 배려한다. 자신을 돌아본 적이 없고, 자신의 심전(心田)을 갈아엎은 적이 없는 괴팍한 사람은 야만인(野蠻人)이다. 야만인은 자신의 욕심과 야망의 노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응시한 적이 없고, 제어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행복을 타인을 제어함으로 획득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에겐 무질서와 폭력이 법이다."
심전, 마음의 밭을 다스리는 것, 욕망의 불꽃을 끄는 것은 이제 단순한 힐링을 넘어 문화의 토대가 된다. 그 문화는 산업으로 이어진다.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 더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면 누구나 다 자기 삶의 구도자가 되어야 한다. 구도자가 되려면 삶을 탐구해야 하고 거기에 글쓰기는 필수이다. 이 길의 접속하면 누구나 충만하고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묻고 읽고, 읽고 또 물어야 한다. 그건 길 속에서 기존의 전제를 깨는 전복적 사유들이 탄생하고, 그 사유들이 내 몸을 통과하면서 눈부신 비유와 서사로 재탄생 될 때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게 붓다가 보여 준 글 쓰기의 길이다.
공자에게서도 또한 글쓰기의 전략을 배울 수 있다. 고미숙은 두 개의 사자성어를 소개한다. 하나는 "화이재지(化而裁之), 다른 하나는 '미언대의(微言大義)'이다. '화이재지'란 말은 내용에 서건 표현에 서건 충분히 소화를 한 다음엔 과감하게 잘나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글쓰기의 핵심은 군더더기를 잘라 버리는 데 있다. 소화가 안 되면 비위에서 음식물이 그대로 뭉쳐 있게 된다. 그럴 땐 과감하게 뚫고 흘러가게 해야 한다. 사유와 말들이 산만하게 뒤엉켜 있을 땐 그 흐름을 과감하게 절단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문장으로 채취할 수 있다. 절단이니 채취니 하는 말은 들뢰즈 용어이다. 이것은 논리를 구축할 때 쓰는 방편이다. 고미숙 고전 평론가에게서 배운 내용이다.
그리고 '미언대의'는 수사학과 관련된 비결이다. 미언대의는 사소해 보이는 말 들 속에 큰 뜻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접속사, 종결어미, 부사어 등 별 기능이 없어 보이는 단어들을 어떻게 구사하느냐가 문장의 내공을 결정한다. 호리의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을 빚는 것이다. 이를 한자어로 '실지호리, 차이천리(失之毫釐, 差異千里)'라 한다. 호와 리는 자와 저울의 눈금으로 아주 작은 단위를 뜻하는데, 즉 '호와 리를 소홀히 여겨 잃는다면, 천리의 차이로 벌어진다'라는 의미이다. 처음에는 근소한 차이 같지만 나중에는 아주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처럼, 문장의 승부수 역시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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