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마음이 가볍지 못하고, 무거운 것은 가을 때문일까? 하나씩 떠나는 나뭇잎들이 소멸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일까? 인간을 지칭하는 말들이 여럿인데, 호모 루덴스(homo ludens)란 말도 있다. 인간은 재미를 추구하며 노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최근에 나는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 살려고 했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유투브로 우연히 보게 된 어제 대검찰청 국정감사 장면 때문인 것 같다.
천상병 시인의 묘비명이자 그의 시 일부분을 오늘 아침 되새겨 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잘 놀다 가지 않으면 인생 잘 못 산 것이다. 힘든 우리들의 삶을 소풍 왔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고달픔이 즐거움으로 변할 것이다.
오늘 오후에는 가을 만나러 대전을 벗어난다. 서대산 자락에 있는 갤러리에서 이루어지는 <새통사> 강의에 참석하고, 저녁을 먹고 온다. 그림이 그려진다. 예쁜 사진도 많이 찍을 생각이다. 아침부터 즐겁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로 주어진 오늘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래 오늘 아침의 화두는 '소멸(消滅)'이다. '사라져 없어짐'이란 말이다. 가을 탓에 이런 생각을 한다.
고갱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그림을 그리고, 구석에 이렇게 썼다.
D'ou sommes-nous?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Qui sommes-nous? 우리는 누구인가?
Ou allons-nous? 우리는 어디로 가는다?
그러나 위의 세 질문은 해답을 원하지는 않는다. 단지 이런 질문들은 자신의 삶을 더 숙고(熟考)하는 질문을 유도할 뿐이다. 그래 스스로 나를 인문운동가로 자처하며 아침마다 글을 쓰는 이유이다.
인문운동가가 보는 인문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근본적인 철학적 요소들과 인간 중심의 근원적인 사상을 다룬다. 그 이유는 좀 더 나은 삶, 지혜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만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인간끼리 잘 살자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힘든 처지에 놓인 그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 사람 사는 맛이고, 이런 것을 나는 '인문정신'이라 하고 싶다.
관심 받는 것도 관심을 주는 것도 꺼리는 각박한 요즈음,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것이 인간들이 그리고 만들어내는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은 지식, 즉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저 따뜻한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 그런 마음으로 생각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이 생각의 틀이란 세계관이다. 여기서 세계관이란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 방식을, 아니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잘 알게 해주는 것이 '인문정신'이다. 이것은 문학, 역사, 철학에서 다루는 영역이다.
이런 인문정신이 부족하면, 우리는 쉽게 정치적 판단을 한다. 예컨대, "좋다", "나쁘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인 방식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이념들에 지배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세계를 보고 싶은 대로 봐서도 안 되고, 세계를 봐야하는 대로 봐서도 안된다. 인간적으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다시 한 번, 인간적으로, 매우 인간적으로. 이런 인문정신은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 부정적 사고, 열정 없는 꿈들을 막아주는 방패이기도 하다. 이런 방패는 사유하는 힘에서 나온다. 생각, 아니 사유하는 힘이 인문정신이다. 실천하는 철학자 최진석 교수에게서 배운 것이다.
약간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는다. 오늘 아침은 좀 서정적인 시를 공유한다. 아침 사진은 산책길에서 만난 빈 두 의자이다. 그 사람이 생각났다.
시월에 생각나는 사람/최원정
풋감 떨어진 자리에
바람이 머물면
가지 위, 고추잠자리
댕강댕강 외줄타기 시작하고
햇살 앉은 벚나무 잎사귀
노을 빛으로 가을이 익어갈 때
그리운 사람,
그 이름조차도 차마
소리 내어 불러볼 수 없는
적막의 고요가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지
오지 못할
그 사람 생각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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