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7.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0월 21일)

오늘로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 중 일곱 번째 rule(규칙)인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는 이야기를 마친다.
인생의 필연적인 고통을 감안하면,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는 모든 행위는 선한 것이다. 저자 피터슨의 신념은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거라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더 나은 삶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도덕적 가치 체계의 가장 높은 곳에 놓는 것이라 했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고통을 완화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닥치는지 알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은 인격의 반영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상반되는 두 인격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결과이다. 아벨과 카인, 그리스도와 사탄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두 면을 가지고 있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근본적인 조건이다.
(1) 편의주의(便宜主義)는 '어떤 일을 근본적으로 처리하지 아니하고 임시로 대충 처리하는 방법'을 말한다. 편의주의는 맹목적인 충동을 따르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선택이다. 쉬운 길이다. 편의주의로 얻는 이익은 오래가지 않는다. 편의주의는 본능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자신을 속이는 행위이다. 편의주의는 어떠한 고귀한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유치하고 무책임하다. 편의주의를 분별력 있게 대체할 때 삶의 의미를 얻는다.
(2) 반대로 의미는 충동을 통제하고 조절할 때 생겨난다. 의미는 세계의 가능성과 세계의 가치 체계가 상호 작용할 때 생겨난다. 가치 체계가 더 나은 삶이라는 목표를 향할 때 생겨나는 의미는 삶을 지속하는 데 힘이 되어준다. 의미는 혼돈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해독제이다. 의미로 인해 삶의 모든 순간이 중요해지고, 삶의 모든 순간이 나아질 것이다.
바르게 행동하면 심리적 안정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즉 균형을 이룬다. 그로 인해, 올바른 선택을 하면서, 자신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문제는 의미는 경험으로만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단지 정보를 모으고 재현하는 감각으로는 알 수 없다. 의미는 편의주의보다 강하다. 의미는 언제나 모든 충동을 넘어선다. 그래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삶은 아무리 원망해 보았자 바꾸지 않는다.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일이다. 인생의 수고로움을 덜고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많다.
(1)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본다.
(2) 귀찮아서 오랫동안 미뤄 둔 서류 작업도 좋다.
(3) 어질러진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4)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일을 가치 체계 가장 높은 곳에 두고 해야 할 일을 해 나가면 인생이 점점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편의주의적 행동에는 신념도, 용기도, 희생도 필요하지 않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 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쉬운 길을 선택해서 원하는 것을 갖는 것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해서 의미 있는 것을 갖는 것이 훨씬 낫다. 의미를 찾았다는 것은 혼돈과 질서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삶의 모든 요소가 최적의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의미가 생겨난다.
의미는 혼돈과 질서의 궁극적인 균형이다. 한쪽에는 변화와 가능성으로 충만한 혼돈이 있고, 반대에는 오염되지 않은 절제된 질서가 있다. 의미는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다. 더 순수하고, 더 안정적이며, 더 생산적인 새로운 균형이 탄생한다. 의미는 한층 풍요로운 삶으로 향하는 길이다. 의미는 사랑과 진실만이 가득한 곳, 사랑과 진실 외에는 발랄 것이 없는 그런 곳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그러니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삶을 위하 중요한 규칙 중의 하나이다.
이런 것을 동아시아 철학에서는 '성의(誠意)'라 한다. 성의를 말 그대로 해석하면, '참되고, 정성스러운 뜻, 즉 마음'이다. 선한 삶을 살고 싶으면, 항상 선한 말을 하고 선한 일을 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 속을 선한 것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방심放心하지 말고) 깨어 있으면서, 남모르는 속마음을 조심하라. 악의 싹이 보이면, 바로바로 제거하라. 이것이 <<대학>>에서 말하는, 사물의 실상을 파악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 다음 조목인 생각을 성실하게 하는 ‘성의 誠意’ 공부이다. 그 이야기는 시를 한 편 읽고 계속 이어 나간다. 오늘은 모처럼 일정이 없다. 코로나-19가 좀 풀리고 이곳 저곳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 와, 바쁘고, 동네 일들이 점점 늘어난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딸과 동네 한밭 수목원을 걸으며 사진도 찍고 가을을 즐길 생각이다. 그러면 선한 생각을 더 굳게 만들 거다.
가을날에는/최하림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넓고 넓은 들을 돌아다니는
가을날에는 요란하게 반응하며 소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예컨대 조심스럽게 옮기는 걸음걸이에도
메뚜기들은 떼 지어 날아오르고 벌레들이 울고
마른 풀들이 놀래어 소리한다 소리들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 저만큼 나는
걸음을 멈추고 오던 길을 돌아본다 멀리 사과 밭에서는
사과 떨어지는 소리 후두둑 후두둑 하고 붉은
황혼이 성큼성큼 내려오는 소리도 들린다
'성의(誠意)'는 생각을 성실하게 바꾸라는 말이다.[아마 여기서 성실이란 유교의 '성실지심(誠實之心)'이 말하는 것처럼 변덕을 부리지 말고, 일관되게 말하고 행동하려면 생각을 꾸준하게 잘 선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라는 것일 것이다.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선은 진심으로 좋아하고, 악은 진심으로 미워하라. 이를 '호선오악(好善惡惡)'이라 할 수 있다.
- 악은 악취(나쁜 냄새)를 미워하는 것처럼 미워하고, 선은 어여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다.
-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진심으로 선을 좋아하고 실천함)을 일러 ‘스스로 뿌듯함(자겸, 自謙, 겸손하여 자기를 낮춤이라고 해석되지만, 낮출수록 스스로 뿌듯해 진다)’이라 이른다.
-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음’을 삼가야 한다. 이를 '신독(愼獨)이라 한다. 이는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 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가하는 거다.
생각(意)이란 자신은 절실하게 알지만 남은 아직 모르는 자리이다. 그래서 ‘속임수'와 ‘사기'가 횡행할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격물치지의 공부를 한 후, 남모르는 곳에서도 “자신을 결코 속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자기기만(自欺, 자기의 양심을 속임)을 조심해야 한다. 성의(誠意, 생각이 성실하다)는 것은 좋고 나쁨(善惡)의 판단을 감정에 정직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너희는 그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惡)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태오, 5:37) 속마음을 속이지 말고, 맞는 것은 맞았다, 틀린 것은 틀렸다고 분명히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상의 말‘은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의란 ”자신의 속마음에 싹튼 생각을 잘 살펴보아, 악한 생각은 제거하고 선한 생각은 실천하기를 ’진심‘으로 하는 것’이다. 신독(愼獨)이 여기서 나온다. 홀로 있을 때에도 어긋남이 없도록 언행을 삼간다. 항상 뿌듯하고 보람찰 것, 즉 자겸(自謙, 겸손하여 자기를 낮춤)의 상태로 산다. 간단하다 선인 줄 알면, 실천하고, 악인 줄 알면, 그것을 진심으로 제거해가는 것이다. ‘뿌듯한 마음’이 있어야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생긴다. 호연지기란 (1)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원기 ( 2) 도에 뿌리를 박고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울 바 없는 도덕적 용기 (3) 사물에 해방되어 자유스럽고 유쾌한 마음, 호기(浩氣)라고도 한다. 이 호연지기, 뿌듯한 마음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여 타인과 자신을 공정하게 판단하는 하늘이 부여한 양심과 만날 때 나온다. 양심이란 깊은 마음속에서 혈구지도(絜矩之道)를 실천하라고 명령(天命)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마음이며, 이 양심이 자신을 칭찬해주니 당연히 뿌듯한 것이다.
악한 생각을 제거하라는 <過去七佛通戒>를 소개한다. 역대 일곱 부처님들이 깨닫고 실천한 가르침의 핵심이다. "제악막모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모든 악은 일체 짓지 말고,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라. 이렇게 하면 자신의 생각(意)이 청정해진다. 오직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나는 여기서 선을 말하기 전에 악을 짓지 말라는 말씀을 먼저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선행을 많이 하지 못해서 아름답고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이 힘들고 혼란스러운 것은 개안과 집단이 서로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기 때문이다.
악이란 나 하나 살자고 남들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고, 선이란 나 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것이다. 진정한 성의는 격물치지를 통해 완성되게 된다. 사물을 정확히 파악하여 선과 악을 구분치 못하고서, 어찌 선을 실천하고 악을 제거하는 데 ‘진실’을 다하는 성의를 행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듯 격물치지와 성의 공부는 표리를 이루며 함께 닦아져야 한다. 남모르는 은밀한 생각을 ‘얼마나 성실하게 하느냐?'하는 것은 얼마나 사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읽어 내느냐?'와 함께 참다운 도덕을 실천하는 중요한 관건이 된다.
(2)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편안 해진다.
’속마음이 성실하면 외면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 부가 집안을 윤택(潤澤, 윤기 있는 광택)하게 하듯이,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생각을 성실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남을 나처럼 여기는 역지사지의 양심이 있는 바, 역으로 나를 남처럼 보는 개관적인 관점도 견지할 수 있다. 성실(誠, 言+成)이란 말(言)을 현실화하는(成)하는 것으로,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상징하는 덕목이다.
"성자 물지종시 불성무물(誠者 物之終始 不誠無物)." "성실함은 만물의 시작과 끝이니, 성실하지 못하면 만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진실을 알고 있어도, 실천하지 않는 진실은 만물을 이루어 낼 수 없다. ”좋은 열매를 얻으려 거든 좋은 나무를 길러라. 나무가 나쁘면 열매도 나쁘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 수 있다.(...) 결국 마음에 가득 찬 것이 입으로 나오는 법이다.“(<마태오> 12:33) ”늘 깨어 있으라.“ (<마르코> 13:37)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면서, 남모르는 속마음을 조심하라. 어떻게? 악의 싹이 보이면 바로바로 제거하라. 이것이 사물의 실상을 파악하는 격물치지이고, 다음 조목인 생각을 성실하게 하는 성(誠)의 공부이다. 결국 신독(愼獨)이란 “항상 깨어 있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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