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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바라고 원하는 것'은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몇 일전부터 해오던 '행복에 관한 담론'으로 오늘 아침은 "'명성(세상에 널리 퍼져 평판 높은 이름)=행복'의 허상' 이야기를 공유하려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유명해지면 명성이 나를 결정한다. 명성을 얻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자꾸 질문해야 한다. 나는 유명해지기를 꿈꾸지 않았고, 지금도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 각광 받는 사람이 되려면 개인적 자유와 사생활 면에서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유명세 또는 유명인을 요즈음 말로는 '셀렙(celeb)'이라 한다. 나는 이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 다만 사회 활동 참여나 사회적 주제에 대한 발언, 혁명적인 과학적 발견 등 그 사람의 행보가 나에게 영감을 주거나 참고가 될 때는 예외이다.

우리 사회에는 가시성(可視性)과 비가시성(非可視性)이 존재한다. 프랑스어로 가시성을 '비지빌리떼(visibilite)라고 하고 비가시성을 '앵비지빌리떼(invisibilite)'라 한다. 내가 언젠가 적어 두었던 비가시성, 아니 '인버저블(invisible)'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나는 아침마다 내 일상을 지배하기 위해 우선 시 한편을 고르고, 그 시에 맞는 사진을 선택한 다음, 하나의 화두를 찾는다. 그날 아침은 '유니크니스(uniqueness, 유일함)'였다. 나는 이것을 들뢰즈가 사용한 '단독성'으로 보기를 더 좋아한다. 이는 교환 불가능한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고유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기 스스로가 간절하게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걸 찾아 균형점을 깨뜨려서 에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작용이 있어야 한다. 잘 되고 안되고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균형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 상태이다. 자연은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생명 현상은 그 균형을 깨는 것부터 시작된다.

‘바라고 원하는 것'은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가급적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독보적인 것이어야 한다. 독보적이라는 것은 '유니크 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것과 다른 것을 말한다. 그것이 새로운 엔트로피다. 그래서 힘이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도 힘이 된다. 나에게만 도움 되는 일은 이젠 그만하고, 경쟁에 지치지 말고, 가장 나다운 것이 남을 돕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왜? 다름으로 그 조직이나 사회를 더욱 빛나게 하니까 그렇다.

기존의 것을 잘 하겠다는 것은 단순하게 말하면 학습이다. 학습이 새로운 바램을 만드는 기반은 될 수 있어도, 학습 그 자체가 유니크니스(독창성)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남들이 만들어 놓은 발자국을 뒤따르는 것이다. 뒤따르는 것은 전술이다. 판을 새롭게 짜는 전략이 필요하다. 학습은 유니크니스(고유성, 단독성)를 만들어 낼 힘을 배양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니 학습은 일상적이어야 한다. 늘 공부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그 공부로 뭔가가 생산되어야 한다. 그래 중요한 것이 글쓰기와 토론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치고 나아갈 동력은 역시 ‘유니크하게 바라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남과 경쟁을 안 하게 된다.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인생은 경쟁이 아니라, 내 페이스로 가는 아름다운 모험이기 때문이다. 인비저블,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 너무 길어졌다. '인비저블invisible(프랑스어로는 앵비지블)'은 '보이지 않는'이란 뜻으로,  타인의 인정과 찬사 뒤에 숨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외과 의사 뒤에 숨은 마취과 의사, 유엔의 동시 통역사, 스타 건축설계사가 아닌 구조 공학자 등이다. 데이비드 즈와이그 가 쓴 <인비저블>이라는 책에서 이 말을 알았다. 형용사로 '눈에 잘 띠지 않는'이란 뜻이다. 어쨌든 인비저블 대부분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깊은 만족감 속에서 직업적 탁월성을 자랑한다. 그들의 특징은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보다, 일 자체에서 큰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인비저블이라도 단독자는 남들과의 비교에서 자유롭고, 내적 기준에 따라 만족감을 얻는다.

프랑스 사회학자 나탈리 에니크(Nathalie Heinich)는  자신의 책 <가시성에 대하여(De la visibilite)>에서 명성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가시성(可視性)'이란 일반적으로 눈에 띄는 성질, 정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니크는 대중매체를 통해 그 이미지와 이름이 재생산, 확산됨으로써 한 개인이 자격을 인정받게 되는 사회적 특성을 가시성이라 정의한다. 즉 스타가 자신의 이미지를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퍼진 이미지가 스타를 만드는 것이다.
(1) 명성이 재능의 부가가치인 경우이다. 노래, 춤, 그림, 대중 앞에서의 표현력, 독보적인 과학적, 경제적, 정치적 사유 등 재능을 갖춘 유명인들이 여기에 속한다.
(2) 명성이 뜻밖에 얻은 '우연한' 가시성과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건 이후 대중이 희대의 범죄자나 불행한 희생자에게 열광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3) 가시성 자체 외에 다른 원인이 없는 명성이다. 대단한 재능이나 특별한 사건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미디어 노출됐다는 이유만으로 유명해지는 경우이다.

'행복=명성의 허상'은 위험하다. 그래도 명성은 많은 이들에게 야망을 불어넣는 신비의 영역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명성은 빛나는 성공의 이미지를 제시하며, 나머지 모든 것을 동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성은 덧없다. 유명해지고 싶을 수는 있다. 그러나 무슨 이유로? 어떤 방법으로? 그리고 뭘 위해? 이런 질문들을 먼저 진지하게 해보아야 한다. '날것' 그대로의 명성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생활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잃어버리게 될 지 모른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그냥 자기 자신이 '원석(原石)'이면 어떤가? "해묵어 세월 흐르면 반짝이는 별이 되는 보석이 되는 원석(原石)들이 바로 그들임을 어이하여 모르실까?"

원석(原石)/정진규

사람들은 슬픔과 외로움과 아픔과 어두움 같은 것들을 자신의 쓰레기라 생각한다 버려야 할 것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을 줍는 거지 사랑하는 거지 몇 해 전 집을 옮길 때만 해도 그들의 짐짝이 제일 많았다 그대로 아주 조심스레 소중스레 데리고 와선 제자리에 앉혔다 와서 보시면 안다 해묵어 세월 흐르면 반짝이는 별이 되는 보석이 되는 원석(原石)들이 바로 그들임을 어이하여 모르실까 나는 그것을 믿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나는 슬픔 부자(富者) 외로움 부자(富者) 아픔의 어두움의 부자(富者) 살림이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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