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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헐렁함'

'참나'를 찾는 여행

봄의 흙은 헐겁다.

봄이 오면, 언 땅이 녹고, 햇볕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흙의 관능은 노곤하게 풀리면서 열린다. 난 몇 해전부터 주말농장을 해 보아 그 관능을 경험하고 있다.

언 땅이 봄에 녹아, 헐렁해지는 과정은 아름답다. 초봄의 햇살은 흙 표면의 얼음을 겨우 녹이고 흙 속으로 스민다.

흙 속에서는, 얼음이 녹은 자리마다 개미집 같은 작은 구멍들이 열리고, 이 구멍마다 물기가 흐른다. 밤이 되면 다시 기온이 떨어져, 이 물기는 다시 언다. 그러나 겨울처럼 꽝꽝 얼어 붙지는 않는다. 다음날 아침에 햇살이 다시 내리 쬐이면, 구멍 속의 얼음이 다시 녹는다.

얼고, 녹기를 거듭하면서, 흙 속의 작은 구멍들이 조금씩 넓혀진다. 그 넓혀진 구멍들로 햇볕이 조금 더 깊게 스민다. 이런 식으로, 봄의 흙은 헐거워지고, 헐거워진 흙은 부풀어 오른다.

가을 서리가 아니라, 봄 서리를 아시는가요? 해가 뜨기 전, 봄날의 새벽에 밭에 나가면, 땅 속에서 언 물기가 반짝이는 서리가 되어 새싹처럼 땅위로 피어난다. 이게 봄 서리이다. 흙은 늦가을 서리에 굳어지고, 봄 서리에 풀린다. 김훈은 "봄 서리는 초봄의 땅 위로 돋아나는 물의 싹"이라고 말한다. (<자전거 여행 1>)

사진처럼, 풀싹들은 헐거워진 봄 흙 속의 미로를 따라서 땅위로 올라온다.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풀이 올라온다. 이건 놀라운 생명의 힘이다. 생명은 시간의 리듬에 실려서 흔들리면서 솟아오르는 것이어서, 봄에 땅이 부푸는 사태는 음악에 가깝다.

소통은 나를 헐겁게 해서, 봄의 풀싹처럼, 자리를 비켜주어, 새로운 생명체가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헐렁함'을 좋아한다. 근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 까칠해진다. 헐렁해야, 다른 것을 태어나게 하는데...

헐렁함의 다른 말은 소통의 '소'이고, '틈'이고, '흠'이다.

주말농장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