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2021년 1월 24일
어제는 내가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원장으로 있을 당시 알게 된 '자랑스런' 오영석 전 카이스트 교수님의 따님 델핀 오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델핀 오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마크롱 현 프랑스 대통령이 인정한 현 프랑스 하원 의원이자 현재 UN 세대 평등 포럼 사무총장이다. 그녀가 말했던 흥미로운 담론들을 몇 가지 공유한다.
- 어린 시절 한국이 아버지가 '봉사 정신' 심어주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지요. 훌륭한 지능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고요."
- 기업 이사회, 국회 등에서 여성이 30% 넘으면 변화가 일어난다. 프랑스는 2012년 '남녀 동수 법'이 제정되었다. "남녀 균형, 연령 균형, 세대 균형이 곧 사회정의라고 생각한다. 다름과 소수를 포용할수록 혁신과 진화가 일어나며 그것은 윤리 이전에 지구생태계의 원리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배제 당했던 능력 있는 여성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는 것 뿐이다.
- 그녀가 위원으로 일으킨 다음의 세 가지 변화는 남녀 커플에게만 허용되던 여성 동성애 커플에 시험관 아기를 허용한다. 학교 개혁 정책을 통해 프랑스의 빈곤 지역 1, 3학년 어린이들의 정원을 25명에서 12명으로 제한했다. 취약 계층 아이들이 학교에 남아 읽고 쓰는 것을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해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 그리고 2주간 주어지던 남성 출산 휴가도 1개월로 연장했다.
- 그녀의 오빠 세드릭 오(현 프랑스 디지털 경제 장관)와 현 대통령 마크롱의 2017년의 승리는 유럽 정치의 낡은 흐름을 바꿨다. 두 남매의 생각이 예쁘다. 공직은 지식으로서 '사회 참여'일 뿐, 임무를 완수하면 자리에서 내려와 자신의 삶을 원한다는 점이 말이다.
- 마지막으로 델핀 오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하는 조언이 좋다. "본국의 떠나 해외로 나가세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느끼고 큰 그림을 그려보는 게 중요합니다. 책에서만 배울 수 없어요.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약자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질문해야 해요. 그게 삶이에요. 특별히 남성들은 자신들이 주류였던 세상에서 빠져나와 더 다양한 작은 문을 열고 배워 가길 권합니다." 나 개인적으로 많은 통찰을 얻었다. 그녀의 아버지 오영석 박사님을 만나 뵙고 싶다.
이젠, 지난 주 금요일에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좋은 삶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자기 스스로를 세우고[자립], 거기에 알맞은 소질을 개발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고 사회적 관계를 이룬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삶과 세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면 날마다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이것이 성장이고 순환이다."
오늘은 성장과 순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오직 자립으로 통한 자존감과 성장을 화폐이다 붙들어 매면, 순환을 상상조차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준이 화폐의 양과 소비의 스케일 그리고 인정욕망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삶의 한 국면에 불과하다. 그리고 한 시기의 문제이다. 어제 공지영 작가가 하는 말을 책에서 읽었다. “인생이 좋은가 나쁜 가의 문제는 결정의 시점을 어디서 잘라 바라볼까의 문제일 뿐이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돌아보는가에 따라 삶의 색깔이 바뀐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자본이 우리들의 삶의 전 국면을 잠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시대 대부분의 직업은 소외된 노동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서 소외는 삶의 본성과 괴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이겨야 하고, 자신을 눌러야 하고, 맘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하고, 억지로 웃어야 하는 등, 이런 것을 우리는 소외라고 한다. 생존과 자립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그 통로에서 출구를 찾을 수 없다.
나 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청년에게도 좋고 노년층한테도 좋은 그런 활동을 찾아야 한다. 탈주하여 방향을 바꾸고, 배치를 다르게 하는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빛이 보인다. 그게 우주의 원리라 고미숙은 말하였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길이 열리는 편은 없다. 탈주하여 방향을 바꾸고, 배치를 다르게 하는 변화의 길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유데모니아(eudaimonia) 아닐까? 이 말은 좋은 삶(good life)로 번역 될 수 있다. 이 말은 삶의 의미와 가치에 주목하는 개념으로, 단순히 삶에 대한 평가나 감정 상태보다 더 넓은 의미이다.
오늘 아침 사진은 지난 주에 우리동네 갑천을 상류를 산책하다 찍은 것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오늘의 화두가 행복이라 선택한 것이다.
행복/김재진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처럼
사람들 속에 섞여 고요할 때
나는 행복하다
아직은 튼튼한 두 다리로
개울을 건너거나 대지의 맨 살을
발바닥으로 느낄 때
만지고 싶은 것
입에 넣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하나 없이
비어 있을 때 행복하다.
가령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어깨에 닿고
한 마리 벌이 꽃 위에 앉아 있는
그 짧은 세상을 눈 여겨 보라
멀리 산 그림자 조금씩 커지고
막 눈을 뜬 앵두 꽃 이파리
하나하나가 눈물 겹도록
아롱거려 올 때 붙잡는 마음 툭
밀어 놓고 떠날 수 있는
그 순간이 나는 행복하다.
OECD에서 정의하는 행복이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면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다양한 평가를 포함하는 건강한 정신 상태"라 말한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측정은 인지적 평가인 '삶에 대한 만족도', 정서적인 측면인 긍정적, 부정적 정서감, 마지막으로 미래적인 관점에서 삶의 목적이나 의미, 가치를 측정하는 유데모니아 항목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이 말은 100% 다 맞는 말은 아니다. 행복이란 맛있는 거 먹고, 일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과 관련된 것들을 많이 생각하지만 이와 같은 소소한 행복도 삶에서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 있을 때만 약속한 행복을 겨다 준다. 우리가 흔히 소확행(사소한 것에 확실한 행복)을 이야기 한다. 이 말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말이다. 일상의 작은 일들이 주는 행복이 그가 누리는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 큰 행복에 빠져 있다가 작은 행복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작은 행복을 연료로 큰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소소하고 작은 행복이 그의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잘한 행복이 전부인 줄 알면 하루키에게 속은 것이다. 소확행이 전부인 젊은이는 자기의 포부나 꿈이 없이 자본주의의 부스러기나 먹으며 얻는 심리적 만족감이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최진석 교수의 한 인터뷰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유데모니아(eudaimonia, 에우다이모니아)도 행복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이 말은 자신을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화 시키는 삶의 목적을 각성하고, 이 목적을 현재 자신의 삶과 일로 가져와서 실현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또한 현재 자신의 삶에서 그 목적이 조금씩 실현되어 자신이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결과적으로 <번성>하는 체험을 의미한다. 번성과 성숙은 고사하고 우리 삶이 지속적으로 쪼그라드는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런 본질적인 행복과 차별되는 순간적 쾌락을 가져다 주는 소확행의 행복을 아리스코텔레스는 '헤도니아(hedonia)'라 했다.
헤도니아는 쾌락이다. 응원하는 팀이 이겼을 때,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 느끼는 기쁨이고, 유데모니아는 명상 같은 데서 오는 행복이다. 유데모니아는 오랜 훈련과 연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바르게 살 때만 가질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 의식이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위치하면 그것 때문에 더 삶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런 삶의 목적을 각성하지 못한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우리가 행복의 원천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소확행은 위에서 말한 유데모니아가 전제되어야 행복을 가져다 준다. 예를 들어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에서 여행을 즐기는 삶은 소확행이고, 열심히 일한 당신과 관련된 부분은 여행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유데모니아이다. 열심히 일함을 통해 스스로 성장체험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여행만 다닌다는 것은 지루한 고역이 될 수 있다. 소위 '불금'이 기다려지고 즐거운 이유는 주중에 유데모니아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바나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과일 껍질을 벗기는 수고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과 같다. 자신의 수고 후에 얻은 소확행이 더 값지다. 마치 주요리를 먹지 않고, 디저트만 넘게 되는 상황과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재력과 체력 그리고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유데모니아 없는 소확행을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더라도 그 소확행은 결국 햇빛과 같다. 햇빛이 쨍쨍한 날을 갈망해도 매일매일 해가 쨍쨍 뜨는 삶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삶은 사막화되어 금방 황폐화된다. 그러니 삶의 목적을 자기 일과 삶을 통해서 실현시키는 성장체험인 유데모니아가 행복의 본질이다. 결혼의 경우도 두 부부가 결혼생활을 통해 서로 성숙시키는 유데모니아가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로에 대한 유데모니아 체험을 할 수 없다면 결혼생활은 그냥 지루한 일상에 불과할 수 있다.
돈, 명예, 권력 등을 획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돈, 명예, 권력을 획득하면 획득한 상태를 당연한 상태로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몇 주 정도만 행복하다. 하지만 새로운 상태에 적응된 후에는 더 나은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기대치를 높이는 톱니바퀴적 성향 때문에 점점 더 큰 것을 얻어야 행복해진다. 얻은 대가로 짧게 행복한 기간을 지내다 더 긴 기간 동안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톱니바퀴 효과"라 한다. 사막 효과란 말도 있다. 예를 들어 결혼 생활의 경우와 같다. 돈, 명에, 권력을 포기하지 못하면 이것들도 매일 내리쬐는 햇볕이 되어 삶을 지속적으로 사막화 시킨다.
행복은 자신의 성장 체험과 직접 관련을 맺지만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성장체험을 한 경우에도 이어진다. 자신 때문에 세상이 더 행복해지고, 더 건강해지고, 더 아름다워지는 상태를 구현한 것이다. 결국 자신이 성장한 결과로 이런 상태가 만들어지고 소중한 사람들과 소통이 더 활발해진다면 최고의 행복한 상태를 체험하는 것이다.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했듯이 성장 체험을 통해 더 성숙해짐에 대한 되어감을 통해서 증진된다. 목표 자체의 달성보다 달성하는 과정이 우리들에게 더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성장 체험의 본질은 지속적 학습을 통한 성장과 성숙이지 실수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사람은 항상 자신만의 일인칭 프로젝트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유는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이 자신의 목적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화 시킬 수 있는 목적을 각성했고 이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자신만의 일인칭 프로제트가 있다는 유데모이나의 조건에서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다. 내 삶이 내재적 기준에 의해서도 지속적으로 쪼그라들고 있는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유데모니아가 없는 소확행에 빠져 살다가 결국 삶이 사막화되면 무언가 더 심각한 것에 자신을 중독 시킨다. 소확행으로 행복을 쫓는 것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파랑새를 쫓는 것과 같다.
그리고 행복 하려면 먼저 자유로워져야 한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행복했지만 어리석게도 자유를 요구했다가 광야로 쫓겨났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보면, 행복한 호모 사피엔스는 존재하지만 자유로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동일한 것을 생각하고 동일한 것을 욕망하게 만드는 사고의 동일화와 본능의 획일화가 무섭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다수가 추구하는 욕망의 충족이라는 행복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자유의 발견에 있다. 다수의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물리적 욕망이 아닌 정신적 욕망을 꿈꿔야 한다. 그것이 자유이고 행복한 인간이 되는 길이다. 그 길이 쉽지는 않다. 사람들은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복 하려면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 길은 용기를 내어 자신을 행해 쉼 없이 걷는 일이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들을 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이런 질문이 없으면 더 이상의 삶은 없다. 묻는 행위를 하지 않는 인간은 쪼그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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