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부터 내 삶을 지탱하는 원칙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주어진 삶을 지혜롭게 살고 싶다. 이 말은 철학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이것을 보며 나를 점검하고, 내 생활을 점검하리라. 이는 내가 성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의 자유를 충만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1.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수용한다.
내 삶에 등장하는 그 어떤 사건도, 사람도 모두 온전한 진리의 목적을 가지고 온다. 이 세상에는 정확히 필요한 일만이 정확히 필요한 바로 그 때에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크기로 찾아온다. 또한 그 모든 것들은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모두가 나를 돕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내게로 온다. 그 모든 일들이 부처의 자비요, 신의 사랑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좋다고 너무 붙잡지 않고, 싫다고 버리려 애쓰지 않고,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괴로울 일이 없다. 살다보니까 정말 그렇다. 가치 판단을 미리하지 말고, 매일 매일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본다. 그리고 모두 다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으며, 그 의미들을 성찰하고, 반성한다.
삶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말한다. 긴 삶 속에서 보면, 어떤 것이 좋고, 나쁜지 모른다. 과거에 좋지 않았던 일들을 다시 되돌아보면 큰 도움이 되었던 것들이 많다. 괴로운 상황이나 미운 사람이 내게 주었던 긍정적인 부분들을 찾아본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더라도 ‘우주가 나를 돕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어떤 집착이라도 버리고, 내려놓고, 비운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에 있다. 집착이 있으면 반드시 그곳에는 괴로움의 씨앗이 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소유도 성공도 지식도 가치관도 집착할 것이 못 된다. 모든 행복한 삶의 핵심은 ‘무집착’에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이치를 받아들이면 집착할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집착을 놓는 자리가 부처자리요 영성이 충만해지는 자리다. 아상(我相)을, 집착을, 욕망을, 번뇌를, 소유를, 생각을 놓고 비운다. 비우면 채워지고, 놓으면 잡히며, 버렸을 때 전체를 잡을 수 있다.
텅 비면 충만하다. ‘지금 죽을 수 있는가?’ 죽을 수 없다면 이유를 10가지 적어본다. 그것이 바로 가장 큰 내 집착의 실체다. 괴로운가?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언가에 대한 집착에 있다. 집착의 실체를 찾아본다. 내 욕망과 집착의 목록을 만들어 본다. 그리고 그 집착을 버리기 쉬운 것부터 지워본다.
3.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으며, 관찰한다. “견지인심, 견성성불”이다.
생각을 과거나 미래로 내보내지 않는다.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지켜본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 집중한다. 객관의 관찰자가 되어 나를 바라본다. 한 발자국 뒤에서 나를 지켜본다. 내 생각, 느낌, 몸, 호흡, 그리고 대상을 아무 판단 없이, [사전에 미리 어떤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다만 지켜보고 관찰한다.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을 때 비로소 내 안 깊은 곳의 신성(神性), 아니 불성(佛性)을 일깨울 수 있다. 신성이니 불성이니 하는 말은 내가 내 삶을 주인공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영성이 충만해지고 존재는 깊은 휴식에 든다.
깨어있는 ‘관 수행(觀 修行)’이야말로 깨달음의 중심이다. ‘관 수행’이란 자기 자신의 마음만을 곧바로 바라보는 것이다. 아침과 저녁으로 10분씩 좌선에 들어 마음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하루 일과 중 ‘3분호흡관’으로, 들숨과 날숨에 숫자를 붙이며 호흡을 관찰한다. 화날 때 화부터 내지 말고, 화내기 직전 호흡을 10번 크게 들이 쉬고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난 뒤에 화를 내더라도 낸다.
4. 부처님이나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 그것은 “자연의 흐름에 맡긴다”는 뜻이다.
내가 무엇을 한다는 생각을 버린다. 나는 없다. 오직 본연의 성품이 있을 뿐이다. 내가 한다고 하면 내가 괴롭고 즐겁지만, 모든 것을 맡기면 괴로울 것도, 즐거울 것도 없다. 늘 한결 같이 살 수 있다. 모든 것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자연의 흐름, 진리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기는 것이다. 일을 할 때도 자연스런 분위기와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가장 좋다. 억지로 무리하자 않는다. 물의 흐름처럼 일이 되는 대로 그때 그 때 일을 선택하며 흐름을 탄다.
3번 이상 권유하고 시도해서 안 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니, 포기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모든 것을 ‘내 일이 아닌 부처님 일’ 또는 ‘하느님 일’이라고 생각하고 맡긴다. 잘 되든, 못 되든 상관하지 말고 당신이 하시는 일이니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5.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베풀며, 많은 것을 나누어 준다.
엄밀하게 따지면, ‘내 것’이란 하나도 없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이다. 잠시 나에게로 흘러왔다가 흘러갈 뿐이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물처럼 흐르도록 내버려 둔다. 내 안에 가둬 쌓아두지 않는다. 소유든, 사랑이든, 마음이든, 가르침이든 이웃과 함께 나눈다. 끊임없이 자비와 사랑을 베푼다. 베풀되 베풀었다는 상(相, 모습) 없이 베푼다. 베풀어도 사실은 베푼 것이 아니라, 잠시 이쪽에서 저쪽으로 인연에 따라 정확히 필요한 곳에 가 닿을 뿐이다. 준다는 것은 곧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면 받게 되고, 준 다는 생각 없이 주면, 무한한 복을 받게 된다.
월급을 받으면 일정액을 떼어 순수하게 베풂을 위한 몫으로 정해둔다. 돌려받을 수 없는 곳,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베푼다. 매월 좋은 책을 10권씩 사서 버스기사, 회사 동료, 이웃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주는 것도 그 한 예이다.
6. 적게 생각하고, 많이 행동한다. 다시 말하면, 생각날 때 바로 일을 저지른다.
될 수 있으면 머리를 적게 굴리는 것이 좋다. 생각은 본연의 진리를 막아선다. 생각과 판단을 줄이면, 삶이 선명해지고 명료해진다. 많이 생각하기 보다는 일을 많이 저지는 행동을 한다. 행동은 깨달음의 지름길이란 말이 있다.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준다. 생각이 많으면 주지 못한다. 마음이 가는대로 생각하지 말고 바로 직접 행동한다.
한 생각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바로 저질러라.
오랫동안 마음만 있었지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 있다면 우선 저질러보고 따진다.
7. 내 생각을 남에게 주입하려 하지 않는다. 즉 고집을 버리고,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활짝 열어 놓는다.
어떤 한 가지 생각에 전적으로 고집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을 키운다. 어떤 가르침도, 어떤 사상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가슴을 열어 놓는다. 어떤 사람에게도 배울 수 있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내 생각이 옳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도 옳을 수 있다. 내 생각을 상대에게 주입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 삶을 주인공으로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전혀 새로운 분야의 책도 한번쯤 사서 읽어 보고,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의 말도 한번쯤 수용하는 자세로 잘 들어본다.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점을 찾는다. 예컨대, 다른 종교의 성전을 읽어본다.
8. 부족하게 그리고 불편하게 살며, 아끼고 절약한다.
자식을 실패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고 사는 것 보다는 조금 불편하고 부족하게 절약하며 사는 가운데에서 사유의 뜰(생각의 뜰)이 넓어지게 한다. 몸이 불편하면 정신이 깨어나지만, 몸이 게으르고 편한데 익숙해지면 정신의 지평이 축소되고 말기 때문이다.
또한 아끼고 절약하는 가운데 충만한 복이 깃든다. 집에 있는 쓰지 않는 것들을 모아 필요한 곳에 나누어 준다. 무언가를 살 때는 이것이 욕망에 의한 것인가 필요에 의한 것인가를 살핀다. 사고 싶은 것을 바로 사지 말고 좀 지켜본다. 아끼고 절약한 만큼을 돈으로 환산하여, 저축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베푼다.
9. 매일 매일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수행과 명상을 실천한다.
기도만큼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행위는 없다. 물질은 몸(육체)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기도는 정신에게 필요한 것이다. 물질은 이번 생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기도는 다음 생까지 이어진다. 아침저녁으로 기도와 수행의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다. [아침저녁으로 일기를 쓰며, 나를 되돌아보고, 기도한다.] 아침의 기도는 낮 동안의 재앙을 없애주고, 밤의 기도는 밤 동안의 재앙을 소멸시킨다는 말이 있다. 기도와 수행의 시간을 가지는 자에게는 충만한 평화가 깃든다.
매일 매일 아침 기도는 거르지 않는다. 기도의 본질은 감사다. 매 순간 순간 아무리 작은 일에도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주 1회 이상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성전에서 기도를 한다.
10. 적게 말하고, 많이 들으려 노력하며, 가끔씩은 침묵하기도 한다.
말이 많아지면, 그만큼 허물도 늘어난다. 입이 가벼우면 생각도 가벼워지고 행동 또한 가벼워져 자기중심, 즉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기 어렵다. 입이 화의 근원이고, 번뇌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침묵하는 자는 쉽게 들뜨지 않으며, 가볍지 않고 쉽게 행동하지 않는다.
내 생각과 견해를 상대방에게 말함으로써 인정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려 노력한다. 침묵 속에 기도와 명상이 있고, 신과 부처와의 대면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공감해 준다. 때때로 말하지 않는 ‘묵언’의 시간을 가지거나, 묵언의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다. 대화중에 말을 관찰하고, 내가 하루 종일 했던 말의 목록을 적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11. 자연의 먹 거리로 소식하며, 자연치유력을 높인다.
인공적인 것, 가공된 것, 인간의 욕심이 개입된 먹 거리는 곧 우리 몸을 혼탁하게 만드는 주범이 된다. 몸이 맑아져야 마음도 함께 맑아진다고 한다. 될 수 있다면, 자연 그대로의 먹 거리가 좋다. 자연의 생명이 담긴 음식은 곧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을 높여주어 온갖 병을 예방해 준다. 또한 음식을 먹을 때는 소식을 원칙으로 한다. 많이 먹을수록 식복이 다해 수명도 줄어든다. 많이 먹으면 정신이 둔해진다.
주말농장이라도 찾아 가 자연의 먹 거리를 직접 생산해 먹어본다. 가공식품, 인스턴트식품, 탄산음료 등을 먹지 않는 날을 정해 본다. 그리고 하루 한 끼 이상은 잡곡밥과 야채, 콩, 감자 등만으로 소식한다.
12.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며,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즐길 줄 안다.
외롭게 홀로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안의 ‘참 나’를 만나는 소중한 통로가 되며, 그 때 비로소 신 혹은 부처와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홀로 있다는 것은 곧 전체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홀로 존재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정신이 내 안에 뿌리를 내린다.
때때로 홀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하루 중에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일 없이, 다만 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져본다. 일주일에 며칠은 집에서 TV를 꺼 두고 지내 보기도 한다.
13. 매일 숲길을 걸으며, 산책의 시간을 가진다.
숲길이나 산길을 홀로 걷는 산책의 시간은 더없이 소중한 자기와의 대면이며, 걷는 일 자체가 수행이 되도 한다. 걸음을 관찰하며 걷고, 마음을 관찰하며 걷는다. 서서 두 발로 대지 위를 걷는 것이야말로, 몸 건강에도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을 가져다준다.
아침저녁 조용한 산책의 시간에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도 된다. 때때로
산을 찾는 것도 좋다. 아침이나 저녁 중 한 때를 정해 가까운 산으로 산책을 나선다. 주말이면 홀로 혹은 가족과 함께 산을 찾는다. 때때로 지리산을 홀로 종주해 존다. 숲길을 걸으며 발바닥에 마음을 모아 집중하고 그 느낌을 알아차려 본다.
14. 자연의 변화를 느껴보며,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유심히 지켜본다.
자연이야말로 가장 진리와 합일을 이루며 사는 생명이다. 자연과 가까이할수록 우리 마음도 자연을 닮아가고 자연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곧 마음을 비우는 일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매 월 2회씩 대전문화연대 걷기 모임에 가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나무나 야생화를 하나 정해 유심히 관찰해 본다. 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껴보고, 자연 관찰 일기를 적어본다. [가게 앞의 은행나무를 살펴보며 일기를 써보련다.] 식물도감을 가까이 하고 식물의 이름을 알아보는 것도 좋다.
15. 자기다운 삶을 살며, 누구처럼 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일체의 외부적 권위에 노예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남처럼 살려고 애쓰지 말고 독창적인 자기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진리의 표현이다. 진리가 '나'로써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나로써 피어나는 진리를 꽃피워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누구처럼 사는 것은 억지스럽지만 나답게 사는 것은 자연스럽고 쉽다. 자기다운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이 세상에 나온 진리의 목적을 이뤄내는 것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무엇인가 살펴보며, 그 일에 에너지를 쏟는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의 긍정인 부분을 100가지 이상 찾아보고 기록해 본다. 무엇이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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