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또 다시 시작되는 10월 월요일 아침인데, 가을비가 구슬프게 내린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잠들지 못하는 밤의 긴 머리를 감겨주는 가을비"이다. 비가 오면, 난 친구 김래호 작가의 이 말이 생각난다. 가을은 갈무리하는 ‘갈’이고, 봄은 ‘보기’ 때문에 봄이고, 여름은 ‘열매’의 고어이다. 그리고 겨울은 ‘결’이 되는데, 나무나 돌, 사람 모두 세월의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켜 같은 ‘결’이 온당하다. ‘볼열갈결’(사계절)의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 같은 것이다. 봄비에 만물이 잘 보이고, 열비에 튼실한 열매 열리고, 갈비에 나뭇잎 보내고, 졸가리 훤한 나목에 '결비' 내린다. '결비'에 나무는 나이테를 '뚜렷이' 긋고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나무의 일에 손 뗄 준비를 한다.
이 비 그치면, 나무들은 겨울 준비를 할 것이다. 단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무들은 나뭇잎을 떨굴 것이다. 나는 주말이면, 한 주간의 주요 칼럼들을 몰아서 읽는다. 지난 10월 5일자 백영옥 소설가의 글에서 만난 것이다. 가을 단풍은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해충에 대한 나무의 경고라고 했다.
"몸에 있는 것을 전부 떨구고, 색 전체를 바꾸는 행위에는 엄청난 신체적 비용이 따른다. (…) 나무의 겨울나기는 먹을 것을 극한까지 비축해 견디는 동물의 그것과 정반대로 이루어진다. 즉 축적은 나무의 생존 방식이 아닌 것이다. 나무는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버리는 것으로 혹독한 겨울 준비를 마친다. (…) 가을 단풍을 보며 아름다움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걸 기억하는 것도 좋은 공부다. 비우고 덜어내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가을 숲길을 걸으며 이제부터라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으로 자신을 온건히 지키는 나무의 지혜를 돌아보고 싶다." (백영옥)
사실 우리 인간도 버리기가 채우기보다 더 어렵다. 소설가 백영옥은 실제로 자신의 글에서 단풍을 우리의 노년에 비유한다. "가령 나이가 들수록 잔소리가 많아지는 건 경험이라는 빅데이터가 쌓여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 잘될 것이고, 저렇게 하면 망할 것이라는 그 나름의 데이터 말이다. 하지만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 하는 좋은 말은 잔소리일 뿐이다. 이걸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끝까지 경청하는 것이 어렵고,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자주 노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번 가을부터는, 잔소리보다는 말 수를 줄이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일에 매진할 일이다. 잘 알고 있고, 늘 강의 시간에 말한다. 대화를 잘하는 비결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이젠 말로만 할 일이 아니다. 실천해야 한다.
가을비가 창을 때린다.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 흐르는 세월 따라 잊혀질 그 얼굴이/ 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다시 떠오르나/ 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 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지금은 고인인 된 최헌이라는 가수가 내 대학시절에 발표 한 <가을비 우산 속에>란 노래이다. 학창 시절에 막걸리 집에서 많이 불렀고, 유학 후에는 노래방에서 나의 18번지였다. 가을비가 내리는 가을날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노래이다. 물론 세대 차이가 있겠지만, 40대가 넘었다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노래다.
가을비/나상국
미처 떨어내지 못한 생각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어두운 골목길에 갇힌 밤
밤마다 늘 찾아와 맴돌며 서성이던
밤손님은 기다려도
오질 않고
저 멀리서 저벅저벅 걸어와
잠들지 못하는 밤의
긴 머리를 감겨주는
가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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