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9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5월26일)
1
어제 다 못 읽은 <산지 박> 괘의 '구사' 효사부터 이어 읽는다.

"九四(구사)는 可貞(가정)이니 无咎(무구)리라" 이다. 번역하면, '구사는 가히 바르게 하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가 된다. 다시 말하면, 바르게 할 수 잇으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 '구사'는 음자리에 양으로 있고 중을 얻지 못한 상태이나 외괘 <건천 ☰>에 있고, '구사'가 변하면 <손 ☴>이 되니 하늘의 명에 겸손하게 따르는 상이다. 이렇게 바르게 하면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을 굳게 지켜서 허물이 없게 된다. 그러니까 무리하게 나아가지 말라. 현상 유지에 주력하라는 거다.
'구사'는 실위, 실중한 자리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고 강하게 망동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외괘 <건괘>에 있어 하늘의 본성에 동화되는 상이며, '구사'가 동하면 외괘가 <손괘>로 바꾸니 겸손하게 하늘의 이치에 따르는 상이 된다. 즉, 지금은 망령된 상태일지라도 바르게 하여 성품을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허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공자는 이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상전>은 "象曰(상왈) 可貞无咎(가정무구)는 固有之也(고유지야)일새라" 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가히 바르게 해서 허물이 없음은 굳게 두기 때문이다'가 된다. 바르게 할 수 있어 허물이 없는 것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고유(固有)"는 '본디부터 있음, 타고날 때부터 가지고 있음'의 의미이다. "지(之)"는 '가다, 이르다, 도달하다'는 것이니 본성의 회복인 것이다.
'구사'가 동하면, 지괘는 제42괘인 <풍뢰 익(風雷 益)> 괘가 된다. 이 괘는 공익과 베풂에 대해 이야기 하는 괘이다. 이 괘의 '육사' 효사는 "六四(육사)는 中行(중행)이면 告公從)고공종)하리니 利用爲依(이용위의)며 遷國(천국)이니라" 이다. 번역하면, '육사는 중도로 행하면 공(公)에게 고해서 좇게 할 것이니, 의지하며 나라를 옮기는 것이 이롭다'가 된다. 중도로 행하여공에게 아뢰면 따라 주니 의지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라를 옮기면 이로울 것이다. 맥락을 모르고 보면 이해가 쉽지 않은 내용이다. <천뢰 무망> '구사'와 연결하여 읽으면, 바르게 하여 본성으로 돌아가면 왕이 도읍을 올기자는 큰 요청을 들어줄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신뢰를 받게 된다는 거다. 하지만 전제는 "중행(中行)"이다. 지금은 "중도"를 행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데 주력해야 할 시기라는 거다.
2
"爲無爲(위무위, 제3장) 事無事(사무사, 제48장, 제57장) 味無味(미무미, 제35장 )", 죽 '하지 않음 하고, 일 벌이지 않는 일 처리를 하고, 가미 되지 않은 순수한 맛을 맛 보라'는 노자의 역설적인 논리는 <<도덕경>> 전반에 걸쳐 나오는 논리이다. 박재희 교수 식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이 세구절은 도를 구현한 성인의 삶의 자세를 표현하는 명구이다.
행(爲)하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일(事)하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맛(味)보라! 아무 맛도 넣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도덕경>> 제63장은 "대소다소(大小多少)"가 키워드이다. 이 말은 '작은 것이 큰 것이 되고, 적은 것이 많은 것이 된다'는 거다. 노자는 천하를 얻는 것도 작은 일에서 시작되고, 천하를 잃는 것 역시 작은 문제를 소홀히 여기다가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작은(小) 일을 크게(大) 여기고, 적은(少) 것에서 많은(多) 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내가 지금 하찮게 요기는 일이 나중에 나에게 줄 영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클 수 있다. 한 푼 두 푼 모으는 돈이 큰 돈이 된다. 작은 병을 무시하다가 결국 큰 병으로 도진다. 작은 문제점을 그냥 넘기고 지나치다가 망할 수 있다. 작은 거, 별거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은 큰 일을 이룰 수 없다. 작은 것이 큰 것이 반전되고, 적은 것이 많은 것으로 반전된다는 것이 노자의 반(反) 철학이다.
'초윤장산(礎潤張傘)'이라는 말이 있다. '밖에 나가기 전에 주춧돌에 습기가 적어 있으면 비가 내릴 징조이니, 미리 우산을 준비하라'는 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반드시 조짐들이 있기 마련이다. 언젠가 적어 둔 글이다.
조짐/박수소리
세상은 소리로 자신을 표현한다.
많은 이들은 이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 하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소리에도 그림자가 있다. 그 그림자가 신호이다.
우린 소리 속에 숨어 있는 신호를 보지 못한다.
그 신호는 '진실'과 '진실 같은 것', 즉 사이비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진실은 전면에 등장하기 전에 신호를 보낸다.
아주 작은 미세한 파동으로 자신의 진실 전체를 드러내려 한다.
그 파동을 우린 '낌새' 또는 '기미'라고 한다.
기미는 작은 조짐이다.
조짐은 거대한 현상을 이끌고 다가온다.
조짐을 파악한 사람만이 예측 가능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낌새를 읽어야 삶의 존재가 풍성하다.
삶의 길목에서 낌새를 알아차리려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실제로 1:29:300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중간 급 사건이 29번 터지고, 그 전에 작은 일이 300번 벌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좋은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도 작은 조짐이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갑자기 행운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행운이 오기 전에 작은 행운의 조짐이 있었다는 거다.
3
"九五(구오)는 无妄之疾(무망지질)은 勿藥(물약)이면 有喜(유희)리라" 이다. 번역하면, '구오는 무망의 병은 약을 쓰지 않아도 기쁨이 있을 것이다'가 된다. TMI: 疾:병 질, 藥:약 약, 喜:기쁠 희. 인위적인 수단을 쓰지 말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행하라는 거다.
'구오'는 외괘 <건천(乾天) ☰>에서 중정한 자리 강건한 리더이다. 망령됨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육이'와 정응하고 있는데, 천명에 순응하라고 이야기하는 <천뢰 무망> 괘에서는 양이 음과 응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마치 하늘이 땅의 뜻을 좇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망(妄)"이라는 글자를 파자하면, '여자(女)'를 잊으라(亡), 여자(女)를 만나면 망한다(亡)'와 같은 의미가 나온다. 여기에서도 양이 음과 어울리는 것을 경계함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육이'에서 보았듯이 음 입장에서는 양과 응하는 것이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물론 양도 양 나름이다. "상구'의 정응은 '육삼'에게 바람직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런데 '구오'가 변하면 외괘가 <이화(離火) ☲>가 되어 병(질, 疾)이 있을 수가 있다. 망령됨이 없는 상황에서도 미처 알지 못하는 뜻밖의 병이 있을 수 있다. 천성(天性)을 닦아 나가는 수양을 하는 중에도 불시(不時)의 병이 생길 수 있는데, 이러한 병은 약을 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낳게 된다. 또한 천성에 따라 망령됨이 없이 살더라도, 때로는 시련이 닥칠 수 있다. 이러한 시련에 동요되지 않고 굳게 천성을 지켜 나가면 큰 기쁨이 있게 된다. 수양하면서 나타나는 병과 망령됨이 없이 착하게 살다 가도 닥치는 시련과 같은 것은 가히 시험할 수 없는 것이다.
"무망자질(无妄之疾)"은 망령되지 않아도 걸리는 병이니 이는 곧 하늘의 뜻에 따라 자연스럽게 앓게 되는 병의 뜻이 된다. 예를 들어 코로나_19같은 것일 수 있다. 아무리 의학 기술이 진보했어도 감기는 없어지지 않고 있다. 인간의 몸이란 좋은 음식을 먹고 꾸준히 단련할지라도 주기적으로 면역력이 약화되는 상황을 겪기 마련이다. 스트레스, 수면 부족, 과로를 완전히 끊어낼 수 없는 삶의 양태가 초래하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몸과 정신의 균형과 조화가 무너질 때 깃드는 질병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과 같다. 몸과 마음을 돌보라는 배려로 받아들여 회복해야 한다. '망령됨 없이(거짓 없이) 자연의 순리를 따르다 얻은 뜻밖의 병'이라는 "무망지질" 이야기는 내일 <인문 일지>에서 좀 더 이어간다.
그리고 내호괘 <간과>와 외호괘 <손괘>에서 "약(藥)"의 상이 나온다. 산에서 자라는 목(목)이니 약초, 약나무의 의미가 된다. <간괘>에는 그치다(지)는 뜻이 잇으니 약을 쓰지 말라는 의미가 나온다. "희(喜)"는 꼭 병이 낫는 데서 오는 기쁨만은 아니다. 위에서 보았듯 병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서 훨씬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소상전>은 "象曰(상왈) 无妄之藥(무망지약)은 不可試也(불가시야)니라"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무망의 약은 가히 시험하지 못한다'가 된다. TMI: 試:시험할 시. 공자는 "무망지질"에 대한 "무병지약"은 시험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때에 따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병인데 예방하겠다고 아무 때나 미리 약을 쓸 수는 없다는 거다.
'구오'가 동하면, 지괘는 제 21괘인 <화뢰 서합> 괘가 된다. 이 괘의 <괘사>는 "噬嗑(서합)은 亨(형)하니 利用獄(이용옥)하니라" 이다. 번역하면, '서합은 형통하니, 옥을 씀이 이롭다'가 된다. '육오' 효사는 "六五(육오)는 噬乾肉(서합육)하야 得黃金(득황금)이니 貞厲(정려)면 无咎(무구)리라" 이다. '육오는 마른 고기를 씹어서 황금을 얻으니, 바르게 하고 위태롭게 여기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라는 뜻이다. 때가 되어 찾아온 병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고 순리대로 다스려야 한다. 불필요한 것정과 근심도 다 버리고 평온한 마음으로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자세임을 알게 해 준다.
4
"上九(상구)는 无妄(무망)에 行(행)이면 有眚(유생)하야 无攸利(무유리)하니라" 이다. 번역 하면, '상구는 무망에 가면 재앙이 있어서 이로운 바가 없다'가 된다. 무망의 상태에서 벗어나면 재앙이 있을 것이다. 이로울 바가 없을 것이다. 가볍게 움직이지 말고 자기 자리를 잘 지키라는 거다.
'상구'는 실위, 실중한 상태이다. "무망(无妄)"의 극에 이르렀으니 '긍즉변(窮則變)'의 이치에 따라 이제 '유망(有妄)'의 상황으로 변하려는 자리이다. 나아가지 말고 "무망"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데 중도를 얻지 못해 그러기도 어렵다. 결국은 "무망"의 상태에서 이탈하고 되고 만다. 그리하여 재앙이 따르게 된다. 인간의 잘못으로 초래된 재앙이니 "재(災)가 아니라 "생(眚)"의 상이 나오게 된다.
다시 말하면, '상구'는 외괘 <건천(乾天) ☰>의 극에 있어 도가 지나친 상태이다. '상구'가 변하면 <태택(兌澤) ☱>이 되니 기운이 사라지고 훼절당하여 재앙이 된다. 망령됨이 없는 상태 그대로 있어야 한다. 아래 <내괘>에서 자리가 바르지 않고 중을 얻지 못한 '육삼' 음과 응하고 있으니, '상구' 자신은 망령됨이 없더라도 바르지 못한 '육삼'에게 가면 재앙이 있게 되어 이로운 바가 없다. 이는 맨 위에서 궁하게 되어 오는 재앙인 것이다. <소상전>은 "象曰(상왈) 无妄之行(천망지행)은 窮之災也(궁지재야)라"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무망의 감은 궁해서 재앙이다' 가 된다. 무망의 상태에서 벗어너면, 무망이 극에 달하여 재앙이 생긴다는 거다.
'상구'가 동하면, 3~6호가 <감괘> 모양이 된다. 여기에서 "생(眚)"의 상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상구'가 동하면, 지괘는 제17괘인 <택뢰 수> 괘가 된다. 순리에 맞는 사람과 교류에 대해 말한 괘이다. 기본적으로 알 수 있는 점은 '상구' 혼자 무순 일인가를 공격적으로 추진하면 망렬된 행동이 되기에하늘의 뜻에 순응하여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며, 지혜로운 사람의 조언을 잘 새겨 따르면 좋다는 거다. <택뢰 수> 괘의 '상육' 효사는 "上六(상육)은 拘係之(구계지)오 乃從維之(내종유지)니 王用亨于西山(왕용형우서산)이로다" 이다. '상육은 잡아서 매고 이에 좇아 얽으니, 왕이 서산에서 형통 하도다. 다시 말하면, 붙잡혀 붙매이고 또 밧줄로 묶였지만 와인 서산에서 제사를 지내게 될 것이라"라는 뜻이다. 그래서 억지로 잡아서 매고 따르라 하고 따르지 않는 자를 좇아가 얽으며 자기를 따르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이미 백성의 신망을 잃은 왕이 해가 저물어 가는 서산에서 왕 자신의 영광스런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과도 같다. <천뢰 무망> '상구'와 연결하여 읽으면, 하늘이 제사를 드리듯 경건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덤을 알 수 있다.
그 외 <천뢰 무망> 괘를 말하면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내일 좀 더 해 본다.
5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로 말씀은 <마르코 10,28-31> "따름과 보상" 이다.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때문에 … 다른 까닭 없이>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마르 10,29)
믿음
때문에
믿습니다
다른 까닭 없이
희망
때문에
희망합니다
다른 까닭 없이
사랑
때문에
사랑합니다
다른 까닭 없이
따름
때문에
따릅니다
다른 까닭 없이
닮음
때문에
닮습니다
다른 까닭 없이
섬김
때문에
섬깁니다
다른 까닭 없이
살림
때문에
살립니다
다른 까닭 없이
6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을 버렸는지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하는 분이심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2026/5/26/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마르코 복음 10장 28-31절: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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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이유를 잘 알아야
사람들이 선물을 주는 이유는 제각각입니다.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사과하고 싶어서, 바라는 것이 있어서, 혹은 응원하기 위해서 등 다양하지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른 후에 이루고 싶었던 것이 서로 달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 때문에” “복음 때문에”라고 덧붙이십니다. 그 어떤 이유도 ‘예수님’과 ‘복음’을 넘어서지 않도록 완곡하게 타이르시는 이 말씀은 버린 것을 생각하기보다 ‘버림’을 통해 당신이 이룰 것을 생각하라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버렸으니 되었다’라는 생각, 모두 버렸다고 확신하며 당당할수록 위험천만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가 받을 것이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라고요. 좋은 것들과 함께 굳이 받고 싶지 않은 것도 함께 받습니다. 따뜻하고 눈부신 햇살과 메마르고 갈라지게 하며 태우기도 하는 열기가 같은 태양에서 나옵니다. 은총은 ‘내가 원하는 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세에서는 단 하나,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입니다. 그곳은 그 생명 하나로도 충분하고 넘치는 곳일 테니 말입니다. 받기 위해 버렸는지 따르기 위해 버렸는지, 우리는 곧잘 잊어버립니다. 버린 이유를 잘 알아야, 받은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김희경 성심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생활성서 2026년 5월호 '소금항아리'에서⠀
7
2026년 5월 26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오늘은 '기쁨의 성인'이라 불리는 성 필립보 네리 사제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는 16세기 로마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며, 엄격하고 딱딱한 형식이 아니라 유머와 웃음이 넘치는 신앙의 참맛을 전파했습니다. 오늘 전례의 말씀은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얻게 되는 거룩함과 보상이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님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강한 권고를 던집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1베드 1,15). 흔히 '거룩함'이라고 하면 세상과 단절된 채 엄숙한 표정으로 기도만 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 필립보 네리는 거룩함이란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일상의 기쁨'임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아이들과 천진하게 놀아주고 익살스러운 장난을 치면서도, 마음의 중심은 늘 하느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참된 거룩함은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미소와 친절한 말 한마디 속에 녹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재산 때문에 슬퍼하며 주님을 떠나갔던 부자 청년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위해 무언가를 기꺼이 포기한 이들에게 현세에서의 백 배 보상과 박해 그리고 내세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백 배의 보상은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를 뜻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선택함으로써 얻게 되는 새로운 영적 가족, 깊은 내면의 평화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풍요를 의미합니다. 비록 세상의 가치관과 다르게 살기에 박해가 뒤따를지라도, 주님 안에 머무는 기쁨은 그 박해의 무게보다 훨씬 더 큽니다.
예수님은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라고 경고하십니다. 이는 자신의 의로움이나 기득권에 안주하는 이들에 대한 엄중한 경종입니다. 성 필립보 네리는 화려한 고위 성직자들보다 거리의 아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먼저 챙겼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꼴찌처럼 보이는 이들을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가장 귀한 첫째로 대접한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단순히 나를 낮추는 것에 머물지 않고, 타인을 주님의 시선으로 소중히 여기는 데서 완성됩니다.
나의 신앙생활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아니면 의무감과 형식에 갇혀 있습니까? 주님을 따르기 위해 포기한 작은 것들을 아까워하기보다, 이미 받은 백 배의 은총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평화롭지 못한 성인은 가짜 성인이다"라는 성 필립보 네리의 말처럼, 하느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의 얼굴은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빛이 납니다. 오늘 하루, 거창한 고행보다 나를 짜증 나게 하는 상황 속에서도 한 번 더 웃어주는 기쁨의 거룩함을 실천해 봅시다. 주님께서는 그 작은 웃음 뒤에 숨겨진 여러분의 사랑을 기쁘게 받아 주실 것입니다.
“주님, 저희에게 성 필립보 네리와 같은 기쁜 마음을 주소서. 신앙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벼운 춤이 되게 하시고, 세상의 박해 중에서도 당신이 약속하신 백 배의 축복을 신뢰하며 담대히 걷게 하소서.” 아멘.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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