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산책
우린 공동체(커뮤니티)를 만들어, 관계를 다양화할 때 삶이 행복하다. 어젠 나를 내가 방심(放心)했다. 일부러. 그러나 이불이 주는 따뜻함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어났다. 이 문장을 스마트폰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키케로)
나는 최근에 인문운동가의 삶에 대해 묵상을 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영감을 주는 글이 배철현 선생이 매일 써서 공유하는 <배철현과 함께 가보는 심연>이다. 지난 주에 그가 <월든 호수>에서 쓴 헨리 데이빗 소로의 글을 소개했다. 여기서 철학자 대신에 그걸 인문운동가로 바꾸면 내 고민이 풀린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 삶의 명령에 따라서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철학(哲學)이라는 말이 나는 금방 와 닿지 않아 무슨 말인지 모른다. 철학을 영어로 하면 Philosophie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말은 사랑하다는 philo와 지혜라는 sophie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필로소피는 '지혜를 사랑하다'는 말이다. 소로는 지혜를 사랑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이 네 개를 말하고 있다. 이 말들을 갖고 다시 한 번 내 삶을 점검한다.
▪ 단순한 삶
▪ 자립하는 삶
▪ 타인에 관대한 삶
▪ 자신, 타인 그리고 자연을 신뢰하는 삶
'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 읽다: 겨울 비 (0) | 2025.12.15 |
|---|---|
| 백구과극(白駒過隙) (0) | 2025.12.15 |
| 熟, 成熟, 熟考에 대한 공학적 해석 (0) | 2025.12.14 |
| 혼술은 반항하는 것이다. (0) | 2025.12.13 |
| 반항은 "사막에서 벗어나지 않은채 그 속에서 버티는 것'이다. (0) | 2025.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