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12월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월요일 저녁이다. 원래 하루에 한 가지 일만 하려고 하는데, 오늘은 5건을 처리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아직도 두 건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를 저녁 식사 후에 공유한다. 이번 주와 다음 주까지 바삐 움직이면, 이젠 방학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자신을 숙고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인문운동가로 인문운동을 하면 할수록, 소크라테스의 존재가 커 보인다. 특히 그가 한 말, "숙고하지 않는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 인문정신의 핵심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숙(熟)' 자의 의미를 여러 번 되새겨야 한다. 익을 '숙'자이다. 삶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와인도 잘 숙성된 와인이 최고로 대접받는다. 사람도 성숙을 향한 과정이 훌륭해야 잘 사는 "웰-빙(Well-Being)이 아닐까?
문제는 무엇을 숙고하느냐 문제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숙고의 대상은 무엇인가?
▪ 그는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델포이에 신탁을 받으러 갔다가 탈레스의 '너 자신을 알라("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라는 격언을 보았다. 그는 이 격언을 통해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성찰하겠다는 삶의 자세를 다짐한다.
▪ 그리고 아테네 시민들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을 숙고하지 않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인문정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그리고 그 질문은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내가 나라면, 나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소크라테스의 답은 "나는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우리는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서 배우는 자세가 생기고, 죽을 때까지 숙고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숙고하는 삶은 내가 모른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시작된다.
그래 늘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배우는 것은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인격적 성장이다. 인생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의 이야기여야 한다. 그런데 실제 배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부 구경만 한다. 배움은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익힘'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익힘'은 그것을 다룰 수 있도록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어떤 강의를 듣거나 누군가 로부터 배우면, 그 배운 것을 글로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일상의 삶 속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익힘'을 반복하면 '나만의' 새로운 양식을 만들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그것을 두고 '자유(自由)'라고 불렀다. 그러니 배움의 목적은 결국 '자유'를 위해서이다. 사실 자유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때, 그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다. 그러니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 할 때,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배워 법칙을 알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활용해서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면, 그 때 나는 자유롭다.
그리고 '자유로운 나'는 누구인가?를 쉼 없이 또 성찰해야 한다. 왜? 뭐 좀 할 줄 안다면, 우리 인간은 오만에 빠지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의 제언』에서 제 17 제언을 겸손이라 정하고, 소제목으로 "당신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라고 덧붙인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며, 자신들의 문화가 인류 역사의 주축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겸손의 반대인 오만은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아니 착각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만을 그리스어로는 '휴브리스(Hubris)'라고 한다. 휴브리스의 정의는 자신의 처음 먹은 마음을 잃고 난 뒤, 반드시 뒤따라오는 극도의 자만심이자 과도한 확신이다. 사람은 오만에 빠지면 눈이 먼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직시해야 할 현실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오만을 경계하고 겸손해야 한다.
정리하면,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네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라''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진짜 무지'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 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 우리는 평생 자신이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안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알고 무리하지 않으며, 나를 배려하고 나를 돕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한계를 안다는 것은 곧 지혜를 뜻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절제를 할 수 있다. 즉 멈출 줄 알고, 현실을 잘 직시하고, 무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절제의 한도 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그만큼만 활용한다. 그러다 보니, 지혜롭고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배우고자 한다. 그리고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용기 있는 사람이다.
12월, 다시 시작한다. 인문정신을 키우는 인문운동을 위해. 지난 토요일 여수 오동도에서 동백꽃을 만났다. 철 모르는 것인지 모르지만, 가까이에서 만난 동백꽃의 색이 아름답다. "가장 눈부신 꽃은/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
동백/문정희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문정희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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