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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김치가 맛을 제대로 내려면 배추가 다섯번을 죽는다.

7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여기 저기서 김장을 한다. 겨울내내 먹을 김치가 된다. 그런 김치가 맛을 제대로 내려면 배추가 다섯번을 죽는다. 배추가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통배추의 배가 갈라지면서 또 한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면서 또 다시 죽고, 매운 고추가루와 짠 젓갈에 범벅이 돼서 또 죽고, 마지막으로 장독에 담겨 땅에 묻혀 다시 한번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낸다. 인생도 김치처럼, 성질을 죽이고, 고집을 죽이고 편견을 죽이면 김치인생이 된다.

와인도 그렇다. 와인도 사람처럼 태어나고 자라고, 또 병 속에서 숨을 쉰다. 사람이 그 와인을 마시면 생명을 다하는 것이다. 포도나무가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뒤 달콤한 포도 열매를 맺어, 그 포도로 만든 향기와 색깔 그리고 맛이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들의 삶에서 승리하는 것과 같다.

무엇이든지 이루어지게 하려면, 성질 죽이고 '엉덩이의 힘'으로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렇다고 '나'를 잃어서는 안 된다.

배추 절이기/김태정

아침 일찍 다듬고 썰어서
소금을 뿌려 놓은 배추가
저녁이 되도록 절여지지 않는다
소금을 덜 뿌렸나
애당초 너무 억센 배추를 골랐나
아니면 저도 무슨 삭이지 못할
시퍼런 상처라도 갖고 있는 걸까

점심 먹고 한번
빨래하며 한번
화장실 가며 오며 또 한번
골고루 뒤집어도 주고
소금도 가득 뿌려주었는데

한 주먹 왕소금에도
상처는 좀체 절여지지 않아
갈수록 빳빳이 고개 쳐드는 슬픔
꼭 내 상처를 확인하는 것 같아

소금 한 주먹 더 뿌릴까 망설이다가
그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제 스스로 제 성깔 잠재울 때까지
제 스스로 편안해질 때까지

상처를 헤집듯
배추를 뒤집으며
나는 그 날것의 자존심을
한입 베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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