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시이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신종 코로나19가 창궐해도 봄은 온다. 어제는 24절기 중 경칩(驚蟄)이다.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立春)을 거쳐,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우수(雨水)를 지나 땅이 햇빛과 바람으로 풀린다는 날이다.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는 찬 바람이 불지만, 어제 차 안은 햇빛이 따뜻했다. 경칩은 '개칩(啓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풀과 나무들에 물이 오르고, 겨울 잠을 자던 개구리 등 동물들과 벌레들이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아직 사회 분위기는 춘래불래춘(春來不來春, 봄은 왔으나 내 마음 속에는 봄이 오지 않는구나)이지만, 오늘 아침 공유하는 사진 처럼, 거리의 나무들의 '우듬지'와 '나무초리'에는 봄이 오고 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면서, 자연스럽게 자기를 변화시키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잠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나는 최근에 와인을 마시며 새로운 건배사를 한다. 내가 '스페로!(spero!)'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스페라(spera)'라 외치게 한 후 마신다. 그 뜻은 '나는 희망한다.' 그러니 "너도 희망하라!'이다. 이 말은 '나는 숨쉬는 동안 희망한다'는 라틴어 'Dum spiro, spero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라틴어 한 구절에 'Dum vita est, spes est'가 있다. 이 말은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는 뜻이다. "희망은 한 줄기 끈이다. 연약하지만 나를 과거라는 괴물에서 탈출하여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은 인간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수동에서 능동으로, 현상유지에서 혁신으로 인도한다."(배철현)
희망(希望, 프랑스어로는 espoir)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그리고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 또는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가장 마지막에 죽는 것이 희망이다"라는 독일 속담을 알고 있다. 희망의 손을 뿌리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것이다. "정의가 정의로워야 하고, 사랑이 사랑스러워야 하고, 문화가 문화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희망은 희망적이어야 한다." 언젠가 우리 동네 아파트인문학에서 하일선이라는 교수가 했던 말이다. 그 교수는 희망을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정의하고, 그 정의에 '누가' 와 '무엇'을 넣으면, 교육이 희망이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볼 수 있다고 했다. 누구의 자리에 내가 들어가면,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마음,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희망인 것이다. 그러면 희망을 이렇게도 정의했다. "희망은 '절망하지 않기'이기도 하다" 그 분은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나 아닌 외부의 모두에게도 희망의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하교수는 "희망의 자리"를 나 아닌 친구, 이웃, 학교, 직장, 국가로 넓혀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교육이 다음과 같이 희망인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 교육이 개인(나)이 희망의 자리가 되도록 하는 일: 학교교육, 평생교육
▪ 교육이 부모(가정)가 희망의 자리가 되도록 하는 일: 부모교육
▪ 교육이 교사(학교)가 희망의 자리가 되어야 하는 일: 교사교육
결국 나, 부모, 선생님(학교), 사회가 희망의 자리가 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다. 여기서 교육의 본질은 자기실현(자아완성)이다. 우리 인간으로서 자기실현은 "인간 다움"이 되는 것이고, 나(개인)로서의 자기실현은 '나 다움'이 되는 것이다.
이런 희망을 말하는 봄은 왔지만, 내 주변은 코로나19 사태로 절망에 휩싸여 있다. 특히 젊은 내 딸이 나보다 더 절망적이다. 딸하고 운영하는 복합와인문화공간 <뱅샾62>에 손님이 하나도 없고, 거리가 죽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절망이란 희망의 끈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문제는 이 절망감을 오래 방치하면, 그런 절망감이 우울의 늪이 되어 우리가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손 씻기와 기침 예절, 마스크 쓰기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과 함께 의도치 않게 주어진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일상을 어제 바빴던 삶과 비교해 보기를 권한다. 스스로의 충만감보다 다른 이들과의 과도한 연결에 의지하지 않았는지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갖으며, 자신의 삶을 점검하기를 권한다. 배철현 선생이 말하는 '자기 변모(自己變貌)'를 꾀해 보길 권한다. '자기 변모'를 위해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를 확인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배철현 교수에 의하면, 그건 우선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목표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온전히 헌신하게 만드는 자신만의 임무를 찾는 것이다. 그 임무의 특성을 배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 그 임무는 언제나 도전적이며 어렵다.
▪ 그 임무는 자신도 아직 확인한 적이 없는 잠재력을 일깨우는 일이며, 자신이 자발적으로 하루 종일 몰입할 수 있는 매력이다.
▪ 그 임무는 자신의 가능성이 발휘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일들을 찾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저 그런 일을 수년 간 지루하게 반복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변명만 하는 인간이 된다.
그런 자기 존재의 의미를 강화하여 자기 실현에 가까워질 때, 우리는 행복하다. 그래 나는 행복하다. 3년 전부터 아침마다 일어나 글을 쓰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인문운동가로 나선 것이다. 인문운동가는 '무엇'을 전하는 일보다 전할 가치가 있는 것을 생산해야 하는 사람이다. 인문운동가는 지식을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인문정신을 생산하여 이 사회를 인문적 높이로 올리고자 하는 사람이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의 높이는 자기가 처한 조건 속에서 일상의 잡다함이나 자질구레함 속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결정하고 지배할 더 높은 위치에서의 결정을 시도할 수 있는 높이이다. 그런 높이를 위해, 계속 무언가를 배우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성장 욕구'를 키우고, 공유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매슬로는 생리적 요구, 안전에 대한 요구,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요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라는 5단계 욕구를 말하면서, 자아실현 욕구를 가장 최상위 단계에 놓았다. 자기 실현, 가장 나 다움은 고단한 인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기 실현은,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도전적인 일을 지속하는 인내"(배철현)이기 때문이다. 배교수는 이를 위해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철학자"가 되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철학자는 "자신의 심오한 생각을 삶을 통해 실험하고, 그 성공과 실패를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람"이다. "철학자는 침묵을 실천하고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보충 설명을 한다. 그 때,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나는 '의도하지 않은' 나만의 많은 시간에 어떻게 자기 변모를 할까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변모는 위험한 야생(野生)에서 명함 없이 잘 견디며, 더 나아가 개선된 나를 끊임없이 추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는 일이다. 이재형이라는 분에 의하면, 이 희망은 "발가벗은 힘"에서 나온다고 했다. 어제부터 그의 책을 읽고 있다. 그의 주장을 잘 정리해 공유할 생각이다. 이재형 작가의 『발가벗은 힘』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발가벗은 힘'은 야생에서도 홀로서기 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이 힘을 키워야 아무 곳에서나 자신 있게 생존할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당신은/뽈 발레리(Paul Valéry 프랑스 시인)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머지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유성마을대학 #사진하나_하나 #뽈_발레리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0) | 2021.03.07 |
---|---|
토요일에 만나는 와인 이야기 로제 당주 (0) | 2021.03.06 |
To be good! (0) | 2021.03.06 |
"매화는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0) | 2021.03.05 |
"사회로부터의 도피, 책에 취하기" (0) | 2021.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