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시인데 웃퍼요. 글이 길다고 생각하시면 시만 보세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코로나19로 혼자 시간이 많아, 전에 써 두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 중 몇 가지를 공유하고 싶다. 숨죽여 신화 이야기에 집중하면 세상이 고요해지고, 평화를 얻는다. 내가 좋아하는 김영민 교수가 어제 좋은 글을 남겼다. "사회로부터의 도피, 책에 취하기"라는 제목이다. 여기서 그는 미국 작가 수잔 손탁(Susane Sontag) 말을 소개했다. "독서는 제게 유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독서를 많이 하고, 매일 아침마다 글을 쓰다 보니 언어와 이야기가 풍부 해졌다. 그것들을 <원노트>에 써 두고 머리에 넣어두면, 그것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부딪히고 발효되어 다양한 상상력으로 튀어나온다. 그래 굳이 문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인상이 지루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은 그리스 신화 속의 <용감하고 우애 좋은 형제 이야기>를 공유한다. 앞으로는 이야기를 좀 많이 공유하려고 한다. 이야기는 우리가 믿는 세상의 진리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메시지는 인간과의 약속은 곧 신과의 약속과 같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은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이다. 그리스 신들의 이름은 발음하기가 어렵다. 발음하려면 혀가 꼬인다. 그러나 자꾸 읽다 보면 익숙해진다. 이들이 누구냐? 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하여 레다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들이다. 백조가 낳은 두 개의 알 중에 한 알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이다, 또 다른 한 알에서는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헬레네와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나왔다. 또 다른 말에 따르면, 하나의 알에서 카스토르와 헬레네, 또 하나의 알에서는 폴리테우케스와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나왔다고 한다. 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트로이 전쟁 때의 그리스 연합군 사령관 아가멤논의 아내가 된다.
카스토르는 거친 말을 길들이는 솜씨가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폴리데우케스는 권투를 썩 잘했다고 한다. 이 둘은 우애가 얼마나 좋았던지 무슨 일을 하건 꼭 함께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초기 그리스 시인들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쓴 시인으로 알려진 시모니데스가 전해주는 이야기이다.
시모니데스가 테쌀리아의 왕이 살던 스코파스의 궁전에 초대 받아, 왕에 대한 위업을 찬양하는 시를 지어 술자리에서 낭독했던 것이다. 시모니데스는 신들에 대한 믿음이 지극한 사람인지라 주어진 시제를 다채롭게 할 생각으로 이 시에다 쌍둥이 형제 카스트로와 폴리데우케스 이야기를 인용했던 것이다. 허영심에 가득 찬 스코파스 왕은 시모니데스에게 약속했던 금액의 반만 주었다. “그대 시에 나오는 내 이름 몫이다. 카스토르와 폴리데우게스 이름 몫은 카스토르와 폴리데우게스에게 받아라.”
이 시에 나오는 두 쌍둥이 형제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 이 두 형제는 아르고 호 원정 때에도 함께 갔다. 항해 도중 폭풍이 일었을 때 오르페우스의 수금 반주에 맞추어 사모트라케 섬 신들에게 기도하자 폭풍이 멎으면서 이 형제의 머리 위에 별이 나타났다, 이 일로 이 형제는 뒷날 뱃사람이나 배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수호신으로 믿어졌다.
아르고 호 원정 후에는 이 두 형제가 이다스와 륀케우스를 상대로 싸움을 하게 된다. 이 싸움에서 카스토르가 죽자 폴리데우게스는 그 죽음을 몹시 슬퍼한 나머지 제우스에게 자기가 대신 죽을 터인 즉 카스토르를 살려 달라고 간청했다. 제우스는 이 소원의 일부를 받아들여, 이 형제가 생명을 번갈아 누리게 한다. 형제 중 하나가 하루를 지하 죽음의 세계에서 보내면 나머지는 하루를 천상의 집에서 보내는 것이다.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는 그리스인들은 물론 뒷날의 로마인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로마 시대 사람들은 이 둘을 통틀어 ‘게미니(Gemini), 즉 쌍둥이라고 불렀다. 제우스가 이들의 우애를 높이 사서 사후에 ‘쌍둥이자리(게미니 Gemini)’라는 하늘의 별자리로 박아주었다고 한다.
이 둘은 ‘디오스쿠로이(제우스의 아들들)’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신들의 예우를 받았다. 사람들이 믿기에는 뒷날에도 이 형제는 격전이 벌어지는 전장에 더러 나타나 어느 한 쪽 군사를 편들었다고 한다. 이럴 때마다 그들은 백마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1960년대에 시작된 미국의 유인 인공위성 계획 이름이 ‘제미나이 플랜’이다. 이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인공위성에 타는 사람 수가 딱 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코파스 왕은 이 거룩한 영웅들을 조롱한 것이다. 게다가 약속을 어기면서 신들을 조롱한 것이다. 시인은 왕의 처사에 당혹하여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후 얼마 되지 않아 시종 하나가 시인에게 다가와 밖에 말을 탄 두 젊은이가 ‘잠깐 뵙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시인은 급히 밖으로 나가보았으나 와 있다던 두 젊은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술자리를 빠져나간 직후에 지붕이 굉음과 함께 내려앉아 스코파스 왕과 술 손님 전부가 깔려 죽었다.
시인을 불러낸 두 젊은이가 누구일까? 시인은 카스토르와 폴리데우게스였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쌍둥이 형제는 이렇듯이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과의 약속은 신과의 약속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신들로부터 벌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을 믿고 안 믿고는 사람들의 자유이다. 그러나 신들을 조롱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곧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쌍둥이 형제 이야기로부터 유명한 두 단어가 나온다. 첫 번째가 ‘마라톤(Marathon)’이고, 두 번째가 ‘학교’, ‘학원’을 뜻하는 ‘아카데미(Academy)'이다. TMI(Too Much Information)이지만, 알아 두면, 머릿속에 발효되어 어떤 것을 상상할 때 도움이 된다.
쌍둥이 형제는 ‘마라토스’라고 하는 부하가 있었다. 한번은 쌍둥이 장군이 전쟁에서 군대를 지휘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신탁에 따르면, 쌍둥이 장군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군대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쌍둥이 장군의 부하 마라토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쌍둥이 장군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쌍둥이 장군은 마라토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벌판을 ‘마라톤’이라고 부르게 했다. 그리고 이 지역 이름인 마라톤 평야는 페르시아 군과의 전쟁 당시 아테나이 군대에서 달리기를 제일 잘하던 병사 페이디피데스 덕분에 유명해진 장소이다. 그가 여기에서 싸우다가 아테나이 성문까지 달려와 승리 소식을 전하고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아테나이 성문에서 마라톤 평야까지의 거리가 42,195Km가 된다. 여기서 육상 스포츠의 꽃인 마라톤 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두 번째 ‘아카데미’의 출발을 알아보자. 영웅 테세우스와 이 쌍둥이 형제(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하여 유부녀인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테세우스가 친구 페이리토스와 함께 이 쌍둥이 형제의 누이 헬레네를 납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헬레네를 꽁꽁 숨겨놓았다. 쌍둥이 형제는 납치범들이 누이를 숨긴 곳을 수소문했지만 도저히 찾아낼 수 가 없었다. 그런데 아카데모스라는 사람이 쌍둥이 형제에게 헬레네가 숨겨진 장소를 귀띔해주었다. 누이 헬레네를 되찾은 쌍둥이 형제는 아카데모스의 공을 기려 그의 고향을 ‘아카데모스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아카데메이아’라고 부르게 했다. 나중에 철학자 플라톤이 아테나이 근교에 있는 이곳에 철학학교를 세우고는 ‘아카데메이아’라고 부르게 했다. 여기에서 ‘학교’, ‘학원’을 뜻하는 영어 단어 ‘아카데미’가 나왔다고 한다.
너무 긴 글이라, 좀 웃기지만 슬픈 시를 공유하며, 감정을 촉촉하게 하자. 내가 좋아하는 김기택 시인이 이 시를 소개하며 덧붙인 글이다. "밥 뿐만 아니라 슬픔도 허기도 가난도 많이 먹으면 배가 나오는구나. 상처도 괴로움도 마음에 자꾸 쌓이면, 밥을 적게 먹어도, 밥 대신 물만 먹어도, 저절로 부어서 불편한 살이 되는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수많은 일들을 밥 먹듯이 참고 견디며 안으로 삭였는데도, 먹고 놀기만 해서 살찌고 배가 나왔다는 오해를 견뎌야 하는구나. 살도 배도 입이 없어 말은 못해도 할 말은 참 많을 것이다. 그 말을 생전에 다 하지 못하고 영영 떠난 이들의 무덤은 생전에 나왔던 배처럼 둥글게 부풀어 있구나."
배 나온 남자/유용주
특별하게 잘 먹는 것도 아니고
운동부족도 아니다 오히려
많은 날들을 배고픔에 시달렸고
어린 나이에 각종 일로 온몸 성한 곳이 없는데
이상하다 물만 먹어도 살이 오른다
밥 앞에 고개 숙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비굴하게 밥을 번 적은 없다
북한 어린이 돕기 성금보다 술값을 더 지출한 게 사실이지만
큰맘 먹고 하는 외식도
고작해야 자장면이고 특별히 탕수육을 곁들인 날은
밤새 설사로 고생했다
굶은 기억이 살찌게 하나
슬픔이 배부르게 하나
그 기억을 잊기 위해 얼마나 허겁지겁 살아냈는지
잊는다는 것이 병을 주었나
참는 것이 밥이었고
견디는 일이 국이었고
울며 걷던 길은 반찬으로 보였는데
배 나온 사람들을 보면
부황과 간경화로 먼저 간 식구들이 떠오른다
저, 좁은 땅 다 파먹고 말없이 누워있는
슬픈 무덤 덩어리들
#인문운동가_박한표 #유성마을대학 #사진하나_시하나 #유용주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To be good! (0) | 2021.03.06 |
---|---|
"매화는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0) | 2021.03.05 |
고통은 기쁨의 한 부분이다. (0) | 2021.03.05 |
순서/안도현 (0) | 2021.03.05 |
"최고의 하루를 사는 거다." (0) | 2021.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