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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는 출생을 묻지 않는다. 다만 행위를 물을 뿐이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어디선가 서리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겠습니다."(나태주, <11월>) 나태주 시인은 우리 동네 어른이시다. 그리고 시인의 모습과 내 모습이 거의 비슷하여, 사람들은 나보고 "나 시인님" 하면서 인사하는 경우도 있다. 더 웃기는 것은 나태주 시인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페이스 북에 오르면, 내 포스팅에 올라와 어제 함께 하신 사진이라고 뜬다. 11월이다. 시인은 11월을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라고 하신다. 그래 오늘 아침은 시부터 공유한다.  사진은 우리 동네 '유림공원'에서 찍은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어제는 할로윈(Halloween, hollow는 앵글로 색슨어로 '성인') 데이였는데, 코로나-19로 행사들이 대부분 취소되었다. 나는 동네 꼬마들이 분장을 하고 오면 줄 사탕을 사다 놓았다. 그런데 한 팀밖에 오지 않았다. 할로윈 데이는 매년 10월 31일에 기이한 분장이나 복장 갖춰 입고 미국에서 하는 축제이다. 오늘 11월 1일 만성절(죽은 모든 영혼들을 기리는 날)을 앞두고,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약령을 쫓는다는 것이다. 이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이웃집을 찾아 다니며 사탕과 초콜릿 등을 얻는다. 이 때 외치는 말이 "trick or treat!"이다. "과자를 안주면 장난칠 거야"라는 의미이다. 지금은 그 의미도 모르는 채 너무 상업적으로 변질 되었다. 그러나 이웃 사이에 다리를 놔주고, 지역의 문화 활동을 활성화 시키는 축제로 만들어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누리는 축제의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그렇지만 이번 한 주는 죽은 영혼들을 기리는 주간이다. 이를 우리는 만성절(萬聖節, 모든 성인 대축일)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All Saints Day, 프랑스어로는 Jour de Tous Saints(뚜쌩)이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오늘 11월 1일이 휴일이다. 많은 이들이 묘지를 찾아가 대리석을 닦고, 꽃을 갈아준다. 더 춥기 전에, 죽은 자를 위해 산 자가 시간을 내는 것은 도리라고 본다. 나도 내 부모님을 비롯하여, 먼저 하늘 나라에 간 내 처 그리고 먼저 간 친구들을 기억하는 한 주를 보낼 생각이다.

오늘은 11월 첫날 만성절이지만 일요일이다. 매주 일요일처럼, 오늘도 일주일동안 만났던 짧지만 긴 여운의 글들을 공유한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잡힌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글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같다. 이런 글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생각의 근육을 키워준다.

1. 11월이면 또 생각나는 시가 또 있다.
괜히 11월일까
마음 가난한 사람들끼리
따뜻한 눈빛 나누라고
언덕 오를 때 끌고 밀어주라고
서로 안아 심장 데우라고
같은 곳 바라보며 웃으라고
끝내 사랑하라고
당신과 나 똑같은 키로
11
나란히 세워 세워놓은 게지 (11월/이호준 (<티그리스강에는 샤가 산다?, 2018, 천년의 시작)

2. 지난 주에 유명을 달리한 고 이건희 회장 이야기를 한 번 더 한다. 그가 2104년에 했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담론이다. "지난 20년 동안 양에서 질로 대전환을 이뤘듯이 이제부터는 질을 넘어 제품과 서비스, 사업의 품격과 가치를 높여 나갑시다. 우리의 더 높은 목표와 이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지금 가치와 격(格)이 필요하다. 격이란 사람이 처한 환경 또는 처지에 어울리는 그것이다. '격'이란 말이 나오면,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을 이해 하여야 한다. "물건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사리를 통하여 그 먼저 할 것과 뒤에 할 것을 알면, 도(道, 머리를 밝혀가는 중에 만나는 그 길, 지혜)에 가까워진다." 중심과 부분, 근본과 말단, 일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아는 것이 격물(格物)이고, 이러한 격물을 통하여, 먼저 할 것(先)과 뒤에 할 것(後)을 정확히 하는 것이 치지(致知)이다. 여기에 격자가 나온다. 품격,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 고민하여, 격물치지를 이루며 일을 할 때 '격'이 나온다.

3. 『법구경』을 보면, "나는 출생을 묻지 않는다. 다만 행위를 물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품격이 있으려면 주어진 환경 때문이 아니다. 귀한 사람은 귀한 행동의 결과이고, 사람이 격이 없고 추해지는 것은 불우한 환경 때문이 아니라 추한 행동의 결과이다. 행동이 사람의 격을 만들지, 배경이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격을 갖추려면, 예쁜 겉모습이 다 아니다. 길에서 만난 예쁘거나 겉모습이 멋진 사람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 해보면, 다 예브고 멋진 사람이 아니다. 예쁘거나 잘 화장한 얼굴에 맞지 않는 못생긴 말솜씨, 그런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무서운 생각, 그런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 잘못된 습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예쁜 것에는 예쁜 것이 어울려야 한다. 나는 그걸 격이라 한다. 다른 말로는 조화라 한다. 격과 조화를 이루어야 진짜 예쁜 것이다.

4. 요즈음 검사들이 하는 것을 보면 역겹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장) 검사들의 티눈 뽑기가 한창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정치권력은 유한했지만 검찰권력은 영원무궁했다. 대한민국 검찰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수사권과 수사지휘권, 기소권을 독점하며 무한권력을 누려왔다. 검찰 개혁의 길에서 운전자가 폭주한다고 해서 그 길 까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검찰은 절대선의 리스펙트(respect)를 상실한지 오래고 일부는 진작에 악에 물들어 있다. '스폰서 검사' 김학의, 성접대를 받은 나의엽 검사 그리고  29일 "추 장관이 인사권, 지휘권, 감찰권을 남발하고 있다'고 비난한 이환우 제주지검 검사는 동료 검사의 약점 노출을 막기 위해 피의자를 구금하고 면회를 막았던 전력이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인 윤대진 검사장의 형인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수수 사건 무혐의 처리에도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자신의 들보는 바라보지 않으면서 남의 눈에 든 티만 뽑아내려 하기 때문에 검찰이 국민들에게 조직이기주의로 비판 받고 있는 것이다. 검사들의 집단반발을 표현하는 검난(檢亂)이라는 단어를 검찰에 대한 격려로 오역(誤譯)하지 않기 바란다. (CBS노컷뉴스 김규완 기자)

5. 『데미안』을 다 읽고, 나는 이렇게 정리를 했다. 자신과 하나가 되어,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이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한다. "나를 향해 쉽 없이 걷는 것이다."(최진석) 그래야 행복하다. 그게 안 되면 우울하다.  국민일보 이지현 종교 전문 기자는 자신의 칼럼에서  "지금 삶이 우울하고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라 말했다. 나 자신과 하나가 되지 않은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는 ‘당위적인 자아’와 ‘현실의 자아’가 충돌할 때 사람들이 우울과 불안을 느낀다고 말한다. 당위적인 자아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집을 사려면 돈을 벌어야 해’ ‘승진하려면 완벽하게 일해야 해’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출세해야 해’ ......  그런데 그 조건들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타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일수록 사회가 만들어준 신념에 맞춰 산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른 채 나이가 들어간다. 진정한 나와 사회적 역할을 혼동할수록 삶은 불만으로 가득해진다."

"매 순간 자신의 내면과 삶을 향해 진실한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던진 질문만 들여다보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멈추지 말아야 할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이 질문은 잠든 내면을 깨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과 거의 같다."

"지금 느껴지는 불안감을 ‘진정한 당신이 돼라’는 내면의 신호로 감지하자.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들을 빼고 나면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과 마주하고 지금까지 ‘거짓된 자기’를 깨닫는 순간 자신의 진짜 존재를 만나는 인생 후반기로 넘어갈 수 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만든 신념과 가치관은 미래의 나를 만드는 토대가 된다. 끊임없이 ‘나’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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