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22일)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도 노자 <<도덕경>> 제45장의 정밀 독해를 한다. 오늘 읽을 문장은 "躁勝寒(조승한) 靜勝熱(정승열): 바쁘게 몸을 놀리면 추위를 이길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요함으로 더위를 이기는 것이다. 淸靜爲天下正(청정위천하정): 맑고 고요함으로 천하를 바르게 한다"이다.
"조승한(躁勝寒)" "정승열(靜勝熱)"은 논란이 많은 문장이다. 추위를 이기려면 달리기를 할 때처럼 몸을 바쁘게 움직여 열을 발생시켜야 한다. 조급할 조(躁)는 그런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이런 조급함은 '도'와 거리가 멀다. 노자는 주로 고요한 상태를 지칭하는 '정(靜)'을 '도'에 더 가까운 상태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뒷문구인 "정승열", 즉 고요함으로 더위를 이긴다는 쪽에 메시지의 무게 중심이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렇게 봐야 마지막 문장인 "청정위천하정(淸靜爲天下正)"과 맥락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어쨌든 어색하다. 그래 많은 주석 가들은 이 문장을 '정이 조를 이기고(靜勝躁), 한이 열을 이긴다(한승열)'는 식으로 바꾸어 해석한다. 도올 김용옥이 그렇게 푼다. "빨리 움직임으로 추위를 이기고, 고요히 지냄으로써 더위를 이긴다."
박재희 교수도 문제 해결의 열쇠를 '거꾸로'로 본다. 겨울철 한파가 몰아 닥쳐 추울 때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 몸을 조급(躁)하게 움직여야 추위(寒)을 이길 수 있다. 가만있으면 추위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반대로 더운 여름철에는 조용히(靜) 있어야만 더위를 이길 수 있다. 덥다고 신경질 내고 몸을 움직이면 더욱 더 덥다. 도의 작용 방식이 약(弱)이듯이 청정(淸靜)은 천하를 움직이는 리더의 태도이다. 맑고(淸) 고요함(靜) 속에 천하를 운용하는 치세(治世)의 철학이 담겨 있다는 거다. 제국의 통치 방은 소박함, 청정함이 기본이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법률로 가능하지만, 천하를 다스리는 통치 방법은 무위(無爲)와 청정(淸靜)함만이 가능하다.
하상공은 "조급함이 승하면 추위가 오고, 고요함이 승하면 더위가 온다"고 새겨 본, 여름의 왕성함이 지나면 추운 겨울이 오고, 겨울의 고요함이 지나면 다시 땨뜻한 계절이 온다는 뜻으로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날뛰면서 부산을 떨면 열이 나서 추위를 이겨 내지만, 이렇게 열이 나고 더워진 것은 고요함(정)으로 이갈 수 있다는 것, 따라고 맑고 고요함이 최고이며 세상의 표준이어야 함"을 가르치는 것으로 푼다. 뭔가를 이룩해 보겠다고 쓸데없이 만용이나 허세를 부리며 설치지 말고, 도처럼 맑고 고요함을 지키며 의연하게 살라는 뜻으로 오강남 교수는 풀이한다.
큰 그릇은 흙이 많이 들어간 그릇이 아니라 빈 공간이 많은 그릇을 의미한다. 나는 이것을 '그릇 론'이라 부른다. 자신을 큰 그릇으로 만들려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모자란 듯이 보이는 것이 크게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빈 듯이 보이는 것이 오히려 가득 찬 것으로 생각하고, 구부러진 것이 오히려 크게 곧은 것으로 생각하고, 서툰 것이 오히려 크게 솜씨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더듬더듬 거리는 말이 크게 말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산을 떨면 추위를 이겨내지만, 이렇게 더워진 것은 고요함(靜)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맑고 고요함(淸靜)이 '하늘 아래 바름(모든 힘의 근원, The still point)'라는 것이다.
'상극의 일치(一致)'라는 말이 최근 나의 화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롭고 싶으면, 사물의 한 단면만을 보고 거기에 집착하는 옹고집과 다툼을 버려야 한다. 사물을 통째로 보는 것이 '하늘의 빛에 비추어 보는 것, 즉 '조지어천(照之於天)'이고, 도의 '지도리'(도추道樞, pivot, still point)에서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재를 있는 그대로 그렇다 함(인시,因是)이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마음(명,明)이다. 중세의 한 철학자가 말한 것처럼, 반대의 일치, 양극의 조화(coincidentia oppositorum)이다.
제45장의 정밀 독해를 마지면서, 나는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태도가 있다면 ‘머뭇거림’이 아닐까 자문해 보았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그 분잡에 휩쓸리다 보면 존재에 대한 질문은 스러지고 살아남기 위한 맹목적 앙버팀만 남는다. 숨은 가빠지고 타인을 맞아들일 여백은 점점 사라진다. 서슴없는 언행과 뻔뻔한 태도가 당당함으로 포장될 때 세상은 전장으로 변한다. 정치, 경제, 문화, 언론, 사법, 종교의 영역에서 발화되는 말들이 세상을 어지러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머뭇거림'은 다음을 내포한다.
• 알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않으려는 겸허함,
• 함부로 속단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
•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조차 수용하려는 열린 마음.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머뭇거림은 답답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머뭇거림 속에는 함부로 말하거나 판단하거나, 응대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다. 지나칠 정도로 단정적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도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다. 확신은 고단한 생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기둥이지만, 그 확신이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폐쇄성에 갇힐 때는 아집에 불과할 수 있다.
모든 틈은 깨진 상처인 동시에 빛이 스며드는 통로인 것처럼, 머뭇거림은 우유부단(優柔不斷) 함처럼 보이지만 나와 타자가 함께 숨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머뭇거림이 사람을 자기 초월의 방향으로 인도한다. 세상의 어떤 이론도 지혜도 인간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이해에 가까워질 수는 있겠지만 근사치일 뿐이다. ‘알 수 없음'이야말로 생명의 실상이다. 여기서 경외가 시작된다. 알 수 없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이다. 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지만 결국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허세 부리려는 욕구에서 해방된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평화가 시작된다. 그래 이장의 결론은 청정(淸靜)의 미덕이다.
최근에 얻은 활동 중에 오늘 아침 사진 속의 길을 맨발로 걷고 오면, 마음이 평화롭다. 지난 8월 초부터 시작한 맨발 걷기가 일상을 영위하는 데 큰 힘을 준다. 몇 일전에, <<50플러스세대>>의 저자 남경아의 글을 만났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적당히 벌면서 의미 있게 잘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저자는 이렇게 하였다. "‘적당히’의 기준은 각각 다르겠지만, 오랫동안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적당히 벌고 잘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활동과 관계 맺기가 선행되어야 한다"했다. 여기서 핵심은 ‘새롭다’인데, 이 단순하고 뻔해 보이는 말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가 지금까지 익숙했던 방식, 습관, 사고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발상의 전환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다. 이를 위해 서로 배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학습 커뮤니티부터 만들 것을 추천했다. 나는 도반들과 <노자 함께 읽기>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하고 있다.
실제로 이런 도전은 지금까지 학연, 혈연, 지연으로만 맺어왔던 관계망을 확장시키고, 더 큰 경험과 기회로 연결된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3년전 부터 <우리마을대학>을 만들어 '토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나의 바램은 취미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되고, 교육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커뮤니티를 만들고, 이 커뮤니티가 성장하여 소득과 보람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꽤 괜찮은 일자리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거다.
저자에 의하면, 현장에서 만났던 많은 50플러스 세대들의 성장과 좌절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어디에 살든, 경력이 많든 적든 그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친 자신감, 조급함, 소통 등 마인드와 태도가 더 걸림돌이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들이다.
1. 작은 거 하나 시작할 때도 가성비부터 따지고, 성취가 없을 것 같은 일은 아예 시작도 안 하는 사람.
2. 좋아 보이는 것에 휩쓸려 다니는 사람.
3. 푼돈에 연연해 체면을 구기는 사람.
4. 자신의 스펙을 알아봐 주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는 사람.
저자는 만고의 진리인 꾸준함과 항상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고 늘 흔들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함께’ 집단적 노력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늘 주문을 외운다고 했다. "함께 적당히 벌고 잘 살기! 그리고 삶의 의외성에 관대해지기!" 이는 오늘 아침 시처럼, "길 잃은 날의 지혜"이다. 오늘 아침 사진 속의 길을 걸으면, 나에게 희망이 솟는다.
길 잃은 날의 지혜/박노해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작은 일은 작은 옮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시십시오
작은 것 속에서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현실 속에 생활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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