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0월 27일)
요즈음 화두 중의 하나가 <오징어 게임>이다. 이 드라마는 인생의 막다른 곳까지 내몰린 이들이 스스로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을 선택하는 이야기이다. 탈락하면 죽음이라는 잔인한 게임 룰은 극한 경쟁으로 내몰린 현대사회를 직설적으로 풍자한다. 양극화와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를 꼬집어내 글로벌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오징어 게임>은 기존의 한류 드라마와 결이 다르다. <오징어 게임>을 보면 돈이 없는 사람과 돈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은 삶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살아남는다고 해서 행복한 삶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 화면에 등장하는 선혈이 낭자한 잔혹극은 물론 신자유주의적 우승열패, 약육강식, 승자독식을 형상화한 것이다. ‘쩐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사회적 낙오자가 된 약자들은, 그래도 승자의 대열에 합류해보려는 일념으로,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심정으로, 승산이 거의 없는 살인적 게임에 합류하여 그 비참한 죽음으로 지배자들에게 가학적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박노자의 글에서 많은 여감을 얻었다.
나는 이 대열에서 이탈하고, 그런 게임에 가능한 한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어제부터 사유하고 있는 '언제나 지실을 말하고,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 중 여덟 번째 rule(규칙)이다.
456명의 현대판 검투사와 그 살인 장면을 눈요깃감으로 삼는 6명의 브이아이피(VIP)로 나누어진 극중의 작은 그룹은 틀림없이 “1%에 의한, 1%를 위한” 신자유주의 사회의 어떤 극단적 형태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드라마의 이러한 상징성은, 2008년 대공황 이후 신자유주의 비판에 충분히 익숙해진 전세계 시청자들에게는 매우 쉽고 자연스럽게 다가왔을 것이다.
나는 이런 그룹에 가능한 한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 늘 깨어 있어, 그 전에 다 버릴 거다. 인생의 필연적인 고통을 감안하면,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는 모든 행위가 선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신념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거다. 이를 위해 나는 더 나은 삶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도덕적 가치 체계의 가장 높은 곳에 놓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고통을 완화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닥치는지 알기 때문이다.
몇 일전에 <인문 일기>에서 했던 말이다. 인간의 행동은 인격의 반영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우리 자신은 상반되는 두 인격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결과이다. 아벨과 카인, 그리스도와 사탄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근본적인 조건이다.
(1) 편의주의(便宜主義)는 '어떤 일을 근본적으로 처리하지 아니하고 임시로 대충 처리하는 방법'을 말한다. 편의주의는 맹목적인 충동을 따르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선택이다. 쉬운 길이다. 편의주의로 얻는 이익은 오래가지 않는다. 편의주의는 본능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자신을 속이는 행위이다. 편의주의는 어떠한 고귀한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유치하고 무책임하다. 편의주의를 분별력 있게 대체할 때 삶의 의미를 얻는다.
(2) 반대로 의미는 충동을 통제하고 조절할 때 생겨난다. 의미는 세계의 가능성과 세계의 가치 체계가 상호 작용할 때 생겨난다. 가치 체계가 더 나은 삶이라는 목표를 향할 때 생겨나는 의미는 삶을 지속하는 데 힘이 되어준다. 의미는 혼돈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해독제이다. 의미로 인해 삶의 모든 순간이 중요해지고, 삶의 모든 순간이 나아질 것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바르게 행동하면 심리적 안정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균형을 이룬다. 그로 인해, 올바른 선택을 하면서, 자신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자기 희생과 자신의 수고로 살아야 한다. 세상에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다. 포스터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어른들의 동심이 파괴된다."
질문의 책/파블로 네루다(정현종 역)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는 알까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왜 우리는 다만 헤어지기 위해 자라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을까?
내 어린 시절이 죽었을 때
왜 우리는 둘 다 죽지않았을까?
만일 내 영혼이 떨어져 나간다면
왜 내 해골은 나를 쫓는 거지?
<오징어 게임>의 중요한 메시지 또 하나는 바로 피해자들의 연대의 결핍, 그리고 피해와 가해의 복잡한 중첩이다. 검투사 노릇을 강요받게 된 고액 채무자들은 궁극적으로 살인 쇼를 즐기는 부자들 본위로 돌아가는 사회질서의 피해자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들도 동료의 죽음을 전제로 하는 코스에서 일단 자기 발로 승리를 향해 달리는 것이다. 연대해서 살인 쇼의 주최 쪽에 함께 맞서려는 시도는 거의 보이지 않으며, 동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 죽어주는 경우만이 드물게 보인다. 살인 게임 과정에서 희생된 456명의 등장인물 중에는 상당수가 자기 손에 동료의 피를 묻힌다. 가해자들이 운영하는 체제에 조직적으로, 연대적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은, 결국 불가불 스스로도 가해자가 된다. 어쩌면 이 부분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던져주는 메시지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잔인하고, 상업적이지만,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뭔가 마음에 남는 것이 이거다. 연대하여 기득권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에 저항해야 한다. 인문정신이 부족하면, 부자들의 세상에서 장기 판의 '말' 역할을 하다가, 자신의 삶을 마치게 된다. 아니면 연대와 협력을 하기보다 또 다른 약자들에 대한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실제 우리 사회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보면, 동료들을 도와주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많다. 같은 노동자라 해도, 입장이나 신분이 서로 약간이라도 다르기만 하면 연대라고는 없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연대가 불가능한 우리 사회의 민 낯을 극단적 모습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우리는 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꼼꼼하게 보고, 사유를 해야 한다. 즉 생각하지 않으면, <오징어게임>의 악몽 같은 세계에서, 살인 게임 참가자의 상당수가 사실 게임 조직자들의 세계관을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을 우리는 본다. 실제로 게임 참가자들은 VIP들의 세계관에 공유하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조직자들은, 참가자들의 ‘자발적’ 동의가 있는 이상 ‘인간 경마장’에서 참가자들에게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을 시켜 돈벌이해도 되는 걸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보아야 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그 대열에 우리도 쉽게 빠져든다. 실제로, 드라마 속에서, 한번 밖에 나왔다가 다시 제 발로 게임 현장으로 돌아가는 참가자들도, 동료들이 다 죽어야 최종 승자가 상금을 탈 수 있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일단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노자 교수는 자신의 글에서 이런 결론을 내고 있다. "만약 피해자들이 평등한 연대와 집단적 저항을 가능하게 하는 대안적 신념을 공유하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극소수에게만 이득이 되는 ‘오징어 게임’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배경이 된 지난 20여년 동안의 한국 신자유주의 역사, 피해 대중의 분열과 원자화의 역사야말로 이 사실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가 가끔 페이스북에서 만나는 윤정구 교수의 지적도 새겨 들을만 하다. "이 드라마는 땀과 노력이 아니라 돈을 놓고 논 먹기로 벌이는 과실 지상주의 대한민국을 풍자한다. 사람들은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서 과일나무를 통해 거두어들이는 과일의 맛을 체험하는 땀의 공정성(Sweat Equity)를 폐기처분하고, 땀흘리지 않고 과일을 얻어내는 게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땀과 노력을 통해 미래를 만드는 것에 희망을 잃은 결과물이다. 미래에 대한 건강한 희망의 상실이 대한민국이 부동산 투기, 가상화폐투기, 주식투기 등 각종 투기장으로 전락하게 만든 것이다. 무한경쟁, 일확천금, 승자독식이라는 자본주의 게임에 점령되어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는듯 보인다.
경제학 게임은 N번의 게임이지만 이 게임들이 연결되어 있지 않고 매번 리셋되어가며 End Game을 향해 진행되게 되어 있다. 마지막 게임은 진짜 고수가 동원 가능한 모든 마키아벨리 전략을 동원하는 혹독한 게임이다. 게임에 참여하는 '말'들은 앞에 그레이하운드 개 경주처럼 앞에 먹이감을 쫒아 달리지만 먹이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먹이를 가져가는 사람들은 VIP로 이미 정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이 진짜 이런 오징어 게임 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치가 미래를 어떻게 건강하게 복원할 것인지에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공정한 운동장에서 땀을 통해 얻어낸 결실에 대한 귀중한 체험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로 대한민국이 복원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오징어게임>에, 함께 무승부로 끝까지 가면 각자1억씩 받을수 있는데 더 가지려고 서로를 죽이게 된다.
1억씩 10번 참가하면 10억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게임' 등을 집어 넣는다. 그 조차도 서로에게 방법을 알려주면 모두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서로돕는 착한 사람인데 학교의 시스템은 경쟁속에서 이를 심화시키며 서로 도우라 가르친다. 모순이 생긴다. 똥밭에서 향기를 내는 꽃이 되어 나비와 꿀벌을 부르라 한다. 똥밭에서 자라는 것은 구더기. 그게 자라면 똥파리가 된다. 오징어게임은 스스로 개돼지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을 수록 상금은 커진다. 주인공은 나는 사람이야 라고 메세지를 전하고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모두를 살리려고 가는 것일까? 시즌2가 기대된다.
<오징어게임>을 보며, 생각나는 대사 몇 가지를 공유한다.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수 없지". "죽기 전에 꼿 한 번 다시 느끼고 싶었어. 관중성에 앉아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그 기분을 말이야." '원래 사람은 믿을만해서 믿는 게 아니야. 안 그러면 기댈 데가 없으니까 믿는 거지.""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뭔줄 아나? 사는 게 재미 없다는 거야." "잘 들어. 나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그래서 궁금해. 너희들이 누군자, 어떻게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난 용서가 안 돼. 너희들이 하는 짓이." 그래 <오징어 게임> 시즌2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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