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13일)
지금 우리는 감동을 주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 세상은 오로지 돈만 안다. 그 안에서 끊임없이 욕망을 확대 재생산하는 자본 논리에 따라 사람들은 소비자로 전락했다. 소비가 늘수록 존재는 줄고, 경쟁 논리를 내면화 하면서 심성은 더욱 거칠어져 간다. 숨은 가쁘고, 목은 마르지만, 멈추는 순간 넘어지거나 추월 당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멈출 수도 없다. 매주 금요마다 무궁화호 기차와 서울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젖어 든 이 시대의 험한 폭력에 흠씬 두들겨 맞은 상처투성이들을 가득 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세상은 눅진눅진했다. 역 앞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마이크로 소리쳤다. 하느님을 믿으라고.
이 시대는 경쟁 논리와 경제 논리의 지배를 벗어난 일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게 역 앞에서 소리치기 보다, 타자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그들의 일상에 연루되기를 꺼리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서울의 하늘은 잿빛이다.
자신이 비록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한발 짝 더 내디뎌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감동을 준다. 이것이 바로 어떤 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힘의 출처이다. 모든 창의적인 일이나 사회적인 공헌 등은 우선 자신이 확장되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공적인 역할로 자리잡은 경우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하나의 수고가 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수고가 있어야 세상은 더 나아지고, 동시에 자기 자신은 더 성숙해진다.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 한 개인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하나의 역할만을 담당하고 산다. 세상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우리는 '직(職)'이라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행위의 결과에 따라 성숙해 간다. 당연히 모든 행위는 사실 수행(修行)이며 거기에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특정'한 역할(職)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고 완성(業)한다. 이것이 바로 '직업(職業)'이다. 인간은 '직업'을 잘 수행함으로써 사회적이고 공적인 존재로 확장한다. 바로 '직업인'이다.
문제는 '업(業)'이다. 자신이 맡은 역할(職)을 전인격적인 태도로 대하느냐, 아니면 기능적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전인격적인 태도는,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정해진 일만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의 궁극적인 의미를 살펴서 거기에 온 마음을 두고 기꺼이 불편함과 수고를 받아들여 조그마한 확장성이라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자신의 역할을 하나의 수행처로 삼아야 한다. 그 역할을 통해서 자아가 완성되고 실현된다는 지속적인 각성을 하고, 항상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라도 마음이 떠난 상태에서 자신의 역할을 기능적으로만 대한다. '직'과 '업'이 분리된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직업인'이 아니라 그냥 '직장인'이라 한다. 한 사회의 건강성과 진보는 구성원들이 '직업인'으로 사느냐, '직장인'으로 사느냐가 좌우된다. 결국 '시민'이냐, '아직 시민이 아니냐'이다.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그 다음'을 살아야 한다. 자신이 맡은 기능적인 역할 '다음'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맡고 있는 것에 머물지 않고, 알고 있는 것 '다음'을 따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넘어가려고 시도한다. 지적인 상승과 확장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고 건너가려고 발버둥 치는 일에서 이루어진다. 그래 장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참된 사람이 있고 나서야 참된 지식이 있다(有眞人而後有眞知)." 여기서 참된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론이나 지식이나 관념이나 이념의 수행자에 제한 될 수 없다. 그것들의 생산자이거나 지배자일 때만 '참된 사람'이다. 그래서 '참된 사람'을 채우는 진실은 차라리 '모르는 곳'으로 덤벼드는 무모함에 있다. 탐험이고 모험이고 발버둥이고 몸부림이다. 이것을 우리는 용기라고 말한다. 이렇다면, 문명은 사람이 발휘하는 용기의 소산일 뿐이다.
오늘 사진은 산책 길에서 만난 어른(아마도 은퇴하신 과학자)의 모습이다. 세상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우리는 '직(職)'이라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행위의 결과에 따라 성숙해 간다. 당연히 모든 행위는 사실 수행(修行)이며 거기에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특정'한 역할(職)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고 완성(業)한다. 이것이 바로 '직업(職業)'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 리더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이것 만이라도 알았으면 한다.
MONEY MAN이 말하는 반드시 알아야 할 세상의 두 가지 법칙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나는 세상에 카르마(業)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죄 지으면 그 벌을 받는 게 순리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운이 좋아 이번 생에 죄값을 안 받았다면 후손이나 다음 생에 벌을 받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니 제 1법칙은 업보 안 쌓고 남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싫어하는 대상이 생기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왜냐하면 내가 벌하지 않아도 상대가 계속 죄를 쌓고 있다면 언젠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거다. 굳이 나서서 싸울 필요 없다. 그러나 갑자기 삶이 단순 해진다. 두번째 법칙은 세상의 모든 거래는 트레이드 오프(trade off, 어떤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하여야 하는 경제 관계)라는 것이다. 뭔가를 얻으려면 그만한 비용을 내야 한다. 내 스타일로 말하면, 세상에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다. 공짜로 얻는 건 없고 어쩌다 운이 좋아 뭔가를 쉽게 얻었 어도 신은 때가 되면 그 값을 받아 가기 마련이다. 이 두 법칙에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각자 자신만의 원칙들을 몇 가지 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착하게는 못 살아도 나쁜 짓은 하고 싶지 않다. 항상 정당한 비용을 내려고 노력한다. 친해지고 싶지 않은 상대에겐 사소한 부탁도 안 한다. 모든 은혜는 어떤 식으로든지 갚아야 하기에 마음의 빚을 함부로 쌓지 않는다.
업보/강민숙
그림자가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나는 내가 무거워
햇빛 쨍한 날
내 그림자를
먹어버렸다
내 속이
시커먼 까닭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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