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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삶은 고통이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0월 13일)

오늘은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 중 일곱 번째 rule(규칙)인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는 이야기를 한다.

삶은 고통이다. 분명한 사실이고, 반박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진실이다. 창세기 제3장 16절에서 19절까지 하느님이 내린 저주를 공유한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이러한 저주 앞에서 가장 간단하고 명확하며 직접적인 해법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내적인 충동을 따르고,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살며, 편한 것만 선택한다. 거짓말하고 기만하고 훔치고 조작하며 들키지만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아무런 의미 없는 짓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쾌락은 순간적이고 덧없을 수 있지만 그래도 즐거운 것이다. 한 때의 즐거움은 삶의 두려움과 고통에 견줄 만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것 말고, 설득력 있고 매력적인 대안을 없을까?

우리가 가진 지식은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습관적인 절차와 행동 양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 다른 사람들이 대체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우리는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습관적 절차와 양식이 어떤 이유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확립되었는지는 아무도 잘 모른다. 그런 양식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진화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우리가 뭔가를 하고 있었지만, 그제야 비로소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다음과 같은 절차가 일어났다.
(1) 우리는 도구를 통해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모방하고 극화하기 시작했다.
(2) 종교적 의식이라는 것도 만들어 냈다.
(3) 그 뿐만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연극을 꾸렸다.
(4) 살면서 관찰한 것, 깨달은 것을 이야기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행동에 스며들던 정보가 결국에는 이야기로 까지 만들어 진 것이다.

위에서 읽은 에덴동산과 추방 이야기도 우리의 집단 상상력이 수천 년에 걸쳐 만들고 다듬어 낸 것이다. 이 이야기는 존재의 본질을 깊이 설명하고, 그 본질을 개념화하고 거기에 어울리게 행동하는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는 거다. 그런 측면에서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되고, 하느님을 외면하면서, 죽음이 예정된 힘겨운 삶을 살기 시작했던 거다. 그러다가 인류는 적절한 제물을 통해 하느님의 분노를 피하고 은총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잘 읽어야 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제물로 하느님의 마음을 얻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나 제물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마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분노를 못 이겨 살인마저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조상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며 제물을 희생시켰다. "현재 제 손에 있는 가치 있는 것을 포기할 테니, 미래에 더 나은 것을 얻게 해 주십시오!"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며, 우리의 조상 아담은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었다. 그 깨달음은 자신의 미래를 발견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미래는 죽음이다. 그러니 죽음은 우리 모두의 미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때가 너무 빨리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죽음은 노동을 통해 늦춰진다는 것을 알았다. 노동은 '나중에' 얻을 이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행위이다. 낙원에서 추방과 함께 제물이 등장하는 데, 제물과 노동은 본질적으로 같은 거다. 제물과 노동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 동물도 노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본능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노동을 포함한 그런 희생을 '만족 지연(delay of gratification)'이라 한다. 여기서 만족을 늦출 수 있다는  발견은 시간의 발견이었고, 시간의 발견은 인과 관계의 발견이었다. 자발적인 인간의 행위가 특정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현실 세계를 상대로 흥정할 수 있다. 지금 올바르게 행동하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2) 충동을 자제하고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시간과 장소에서 보상을 받는다. 그래서 충동을 통제하고 관리함으로써 다른 사람이나 우리 자신의 미래에 악영향을 줄 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

사회도 이런 방식으로 틀을 잡아 왔다.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인과 관계의 발견이 사회 계약을 활성화했다. 사회 계약은 주로 사람들과 약속 형태로 존재하는데, 이를 통해 오늘의 노동은 안정적으로 미래의 보상이 되어 돌아왔다. '이해'는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하느님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은 만족 지연의 유용성이라는 개념을 정교하게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사냥에서 잡은 고기를 앉은 자리에서 모두 먹어 치우는 대신 고기 일부를 따로 떼어 현재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행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시 말하면, 무엇인가를 미래의 자신을 위해 따로 챙겨 두거나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행위의 유용성을 터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희생과 노동의 대가가 처음에는 단순한 기억이나 기록이라는 원시적인 단계에서 시작해 돈을 주고받는 단계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은행과 그 밖의 여러 사회 기관과 시스템에 의해 보장받는 단계로 나아가, 현재의 제물과 노동에 대한 관례와 견해가 만들어 진 것이다.

오늘은 노동과 희생의 중요성을 다른 각도에서 알게 되었다. 여기서 멈추고, 내일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10월은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제 때 <인문 일기>를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중단하지 않고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어제 소설가 백영옥의 글에서 만난 이야기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다만 매 순간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분명한 건 이제 나는 버리고 떠나는 사람보다, 남아서 버티는 삶을 더 존중하게 됐다는 것이다. 폼 나지 않고, 지질함에도 그 안에서 견디며 자기 색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 말이다. 어떤 이에게 용기란 투쟁이 아닌 수용이다. 삶에 오만해지지 않기 위한 수용 말이다." 오늘의 시 한 편을 공유하고 글을 마친다. 어제는 긴 하루였다. 지난 연휴에 보낸 제주도의 바다가 그립다. 그 때 찍은 사진이다.

하루​/이동하

해풍을 타고 밀물이 들어오자
갯벌가 밀려드는 시린 비린내

먹이감 찾는 갈매기떼 소리
호일 위 깔린 대하를 덮는다.

나전칠기처럼 빛나던 바다는
해거름 지나 해넘이로 물들고,

어둑발 내리는 항구 저멀리
홀로 떠있는 섬이 가물하다.

새벽이면 포구로 오는 뱃사람들
수평선 마루터기 향해 출항하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영혼들이
아침 햇살 되어 뱃길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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