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내가 좋아하는 카페는 대전 TJB 로비에 있는 <Goat & Bean>이라는 곳이다, 카페 옆에는 바로 GALLERY가 있다. 어제 오후는 임성희라는 만화 작가가 전시회 중이었다. 제목은 <Where Are You Heading?> '당신은 어디에 머리를 박는가?'로 번역해야 할까? 흥미롭다. 나는 무엇에 내 머리를 부딪치는가? 가을은 소리 없이 깊어만 간다. 그래 집에 가는 중에 이 카페에서 좀 시간을 보냈다. 정신 없이 보낸 한 주를 좀 되돌아 보았다. 그리고 필요한 메일도 보내고, 이번 달에 읽고 있는 헤세의 <데미안>을 꺼냈다.
지난 10월 12일자의 아침 글쓰기에 이어, 화자가 데미안을 만나 나누는 두 번째 이야기를 좀 다시 읽어본다. 데미안이 하는 말이다. "매번 아주, 아주 똑바로 그 분 눈을 들여다보는 거야. 그러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못 견디지. 다들 불안해져. 만약 네가 누군가 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고 느닷없이 아주 힘을 주고 똑바로 그의 눈을 쏘아보는데도 그가 전혀 불안해하지 않거든 포기해! 그런 사람게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결코 하지만 그런 일은 아주 드물어." 누군가 똑바로 본다는 것은 내 소망이 그에게 전달되게 하는 일이다. 내 의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의지가 소망이 되어, 그 소망은 그 대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해서 의지와 소망은 비례하게 된다. 누군가 똑바로 본다는 것은 내 소망이 그에게 전달되게 하는 일이다. 내 의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의지가 소망이 되어, 그 소망은 그 대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해서 의지와 소망은 비례하게 된다.
화자 싱클레어는 경건한 삶을 강조한다. '경건(敬虔)'이라는 말은 공경 경+정성 건 자의 합이다. 사전적 의미는 초월적이거나 위대한 대상 앞에서 우러르고 받드는 마음으로 삼가고 조심하는 상태에 있음'이다. 데미안으로 부터 영향을 받은 화자 싱클레어는 이렇게 쓰고있다. "경건한 사람이란 품위 없는 것도 허위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종교적인 것에 대하여 나는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 종교는 우리의 삶을 경건하게 한다. 그러면서 다른 이을 공경하고, 삼가고 엄숙하게 군다. 일상 속에서 늘 삼가고, 절제하는 것이다.
경건함을 이야기 하다 보니, 그리스 로마 신화가 생각난다. 사실 신화 속에서 올림포스 신들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신들은 당대를 살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꿈과 진실이었다. 그래서 신들에 대한 경건함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경건함, 그 시대 도덕률에 대한 경건함이다. 신화에는 이 경건함을 변함없이 지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바로 이들이 신들이 좋아하는 사람들, 즉 ‘호모 테오필로스(Homo Theophilos)’이다.
문제는 그들이 우쭐하여 상승하기도 한다. 신화에 이 상승의 정점에서 갑자기 오만해지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입에서 불을 뿜는 괴물 키마이라(Chimaera)를 퇴치하고 승승장구하던 영웅 벨레로폰(Bellerophon, 또는 벨레로폰테스 Bellrophotes)은 오만에 빠져 날개 달린 말, 천마(天馬) 패가소스(Pegasos)를 타고 올림포스까지 날아가려는 만용을 부린다. 신들의 분노를 산 그는 결국 제우스가 보낸 쇠파리에 찔려 낙마하여 절름발이에다 장님이 되어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외로이 방황하다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그런가 하면 공예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아라크네(Arachne)는 공예의 여신 아테나에게 도전하는 오만을 부리다가 여신에 의해 거미로 변하는 처벌을 받는다. 길쌈하는 재능을 좀 가졌다고 오만하게 굴다가 거미로 평생 허공에 매달려 온몸으로 길쌈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오만에 빠진 인간은 이처럼 예외 없이 신의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오만은 신화시대 영웅들이 잘 걸리는 난치병이었다. 이 난치병 환자들은 바로 신들이 싫어하는 사람들, 즉 ‘호모 테오미세토스(Homo Theomicetos)’이다. 그들은 정점으로 날아오르게 한 바로 그 날개 때문에 추락한다. 그리스인들은 그것을 '신의 처벌'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만에 대한 처벌은 부메랑과 같은 것이다. 재산이든, 재능이든, 권력과 명예든 간에 남들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오만에 빠져 추락하는 것은 그것 때문에 상처받은 주변 사람들의 질투와 원한이 복수의 화살로 뭉쳐 자신에게 다시 되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다. 오만의 반대는 겸손이다. 겸손은 비굴과 구별해야 한다. 겸손은 남 앞에서 자신감 없이 굽실거리는 것이 아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이 받을 상처를 미루어 짐작하고 오만을 떨지 않는 것이다.
어제는 우리 동네 마을 계획 수립 프로젝트 보고서를 직접 제출했다. 시원하다. 오늘부터는 우리 동네 커뮤니티 공유공간 운영안을 마련한다. 다음 주부터는 여기저기 인문학 강의가 시작된다. 나는 힐링 인문학보다 필링(peeling) 인문학을 강의할 생각이다. <데미안>에서 화자는 데미안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생각을 한다. "가장 나 다운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얼마나 깊이 거대한 사유의 영원한 흐름에 관여되어 있는 가를 보고 갑자기 느끼게 되자 두려움과 경외심이 나를 압도했다." 일상에서 방심(放心)하면, 우리는 생각을 당한다. 그리고 '가장 나 다운 삶'을 생각하면 두렵다. 의존에서 독립으로 건너가려면, 두려워도 의존을 걷어차야 한다. 그리 화자는 "그 통찰은 즐겁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통찰은 즐겁지 않았다. 확인해 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었는데도 왠지 즐겁질 않았다. 그 통찰은 가혹했다. 맛이 떫었다. 그 안에는 일말의 책임의식이, 이제는 어린애일 수 없다는, 홀로 서 있다는 울림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생각을 당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자각하려 하지 않는다. 의존에서 독립으로 건너가기는 늘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권력은 생각한다. 고로 나는 생각 당한다'고 말하는 것이 '필링 인문학'이 시작된다. 필링 인문학은 생각을 지배하는 모든 권력, 구조, 자본주의의 관계를 문제 삼아 내가 진짜 생각하는 지를 성찰하는 것이다. 필링 인문학은 실존적 나가 생각 당하는 나인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성찰하는 나'가 '필링 하는 나'라고 주장한다. 필링 인문학은 나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생각하는 나인가, 생각 당하는 나인가, 이 질문을 하면서 내 생각의 제작자를 찾아내 맞서자는 것이다. 그 다음은 나는 행복한가라고 현실을 살아가는 있는 그대로의 실존적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불안한 세상에서 행복하지 않은 나와 공동체를 만나 그 원인을 파헤치자는 것이다. 사실 생각 당하는 나는 어두운 세상의 뒤안길에서 행복하지 못하다. 실존적인 나는 생각 당하며 살고 있다. 필링 인문학은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는 가라는 질문을 하며, 상상과 함께, 근거는 없지만, 희망 찾기를 시도한다. 그 희망은 우리가 각자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침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란 제목으로 글을 쓰며 생각한다. 그리고 공유한다. 생각을 당하지 말자는 의미이다.
오늘 아침도 류사회 시인이 묶은 <마음챙김의 시>에서 시 한편 골라 읽고, 공유한다. 사진은 어제 오후 <고트 & 빈> 카페에서 보이는 갤러리에 전시된 한 벽면을 찍은 것이다. <너는 머리를 어디에 부딛치는가(헤딩 하는가)?>란 제목의 전시회이다. 당신은 주로 무슨 생각을 하는가? 다들 먹을 것만 생각한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저 멀리 있는 높은 산을 꿈꾸기 보다. 아름다운 그림은 아니지만, 생각하게 하는 그림이다. 생각을 당하지 말고, 생각하라는 것으로 읽었다.
하지 않은 죄/마거릿 생스터(캐나다 시인)
당신이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일이 문제다.
해 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잊어버린 부드러운 말
쓰지 않은 편지
보내지 않은 꽃
밤에 당신을 따라다니는 환영들이 그것이다.
당신이 치워 줄 수도 있었던
형제의 길에 놓인 돌
너무 바빠서 해 주지 못한
힘을 복돋아 주는 몇 마디 조언
당신 자신의 문제를 걱정하느라
시간이 없었거나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사랑이 담긴 손길
마음을 어루만지는 다정한 말투.
인생은 너무 짧고
슬픔은 모두 너무 크다.
너무 늦게까지 미루는
우리의 느린 연민을 눈감아 주기에는.
당신이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일이 문제다.
해 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디지털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머거릿-생스터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금 우리는 감동을 주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0) | 2025.10.16 |
|---|---|
| 삶은 고통이다. (0) | 2025.10.16 |
| 앞으로, 점점 낯선 것이 '새로운 기본(new normal)'이 될 것이다. (0) | 2025.10.16 |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 (0) | 2025.10.16 |
| 주도권이 “우리”에서 “나”로 넘어갈 때, 노자가 있다. (1) | 2025.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