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9월 12일)
'인의예지신'은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고, 그 실천을 지혜롭게 그리고 겸손하게 꾸준히 하라는 것이다.
3년전 부터, 내 삶의 목표는 지금-여기에서 보람 있는 일을 하며, 구체적으로는 유교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불교의 '육 바라밀'을 실천하면서 인성(人性, 인간성)을 고양시켜 우주가, 자연이, 즉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다가, 자연의 순리(順理)처럼 때가 되면 후회 없이 퇴장하는 것이다. 지난 것은 잊고, 다가올 미래에 두려워 하지 말고, 지금-여기에서 가진 것에 만족하며 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어제는 코로나-19 이후, 거의 1년 만에 서울 영등포에 갔다. 기차에 내려 역을 빠져나오자, 이곳은 지옥이었다. 가장 먼저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높은 볼륨으로 들려오는 찬송가였다. 왜 길에 나와 에너지를 사용하며, 그렇게 노래를 불러 대는 걸까? 교회를 다니라는 걸까? 아니면 하느님을 믿으라는 걸까? 다시 일정을 마치고, 역에 오니, 멀쩡하게 보이는 한 중년 남자가 힘겹게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그 깃발에는 "예수 천국"인가 하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자기처럼 하여야 죽어서 천국을 간다는 것인가? 또 어떤 허름한, 아니 거의 거지 같은 차림으로 마스크도 제대로 쓰지 않고, "천국을 다녀온 이야기"라는 제목이 붙은 책을 공짜로 주겠다고 애처롭게 눈길을 보냈다. 난 외면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집에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건널목 빨간색이 바뀌고, 길을 건넌 후 그를 까마득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머니즘을 장착한 지인 에바 황의 따뜻함에 대전에 내려온 후로는 피곤이 다 사라졌다.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믿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힘들어한다면 그건 잘못된 믿음이다. 알라의 뜻이라며 죄 없는 사람을 죽음으로 모는 사람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하라고 하면서 신분을 만들고 '선비 놀음'이나 하는 사람들, 일주일을 개같이 살다가 주일만 천사처럼 사는 사람들, 모두가 부처라고 떠들면서 모두를 축생 취급하는 사람들이 이 잘못된 믿음에서 나온다. 오직 내 말만 들어주고 오직 나만을 위한 신이 있다면 그건 우상이다. 이젠 진리가 아닌, 잘못된 종교나 이념이다, 사람들은 그 때문에 다툰다. 그 다툼이 사라졌으면 하고 난 바란다.
이번 기회에 다시 "인의예지신"이야기 한 번 더 반복한다.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 이야기이다. 성장하려면, 엄격한 자기관리와 기회를 포착하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엄격한 자기관리는 이런 것들이다. 건강하기 위해 적게 '자연적인 것'을 먹고, 적게 마시려는 노력/청결하게 잘 씻고, 몸 관리를 하는 것/신용관리/적게 말하고 남의 말을 잘 듣는 태도/'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실천 등이다
- 인: 남과 나를 동일시하고, '사무량심'이라고도 하는 '자비희사(慈悲喜捨)'를 실천한다. '자'는 다른 이를 즐겁게 해주는 일이다. 내가 즐겁고 기쁜 일을 좋아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나처럼 즐겁고 기쁘게 해주는 일이 '자'이다. 그것이 사랑, 즉 '인'의 시작이다. 그리고 '비'는 남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일이다. 다른 이와 함께 슬퍼해주며 함께 울어주는 것이다. '희'는 남이 즐거워 하는 것을 같이 기뻐해주는 마음이이다. 배 아파하지 않는 마음이다. '사'는 모든 다른 이들을 평등하게 대하려는 마음이다.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 사랑 외치며, 구체적으로 무슨 행동을 하여야 하는지 막연하다면, '자비희사'를 되 뇌여 본다.
- 의: 정의의 문제이다. 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다른 이에게 하지 않는 일이다.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누군가가 당하고 있으면 분노해야 하고, 내가 그런 짓을 하고 있다면 수치스러워해야 한다.
- 예: 겸손하며, 다른 이와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 지: 무지와 아집을 버리고, 자명한 것만 받아들이며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그렇게 자기 관리를 하다가 기회가 오면 포착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용기'이다. 그리고 '인의예지신'은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고, 그 실천을 지혜롭게 그리고 겸손하게 꾸준히 하라는 것이다. 5행이다. 5가지 삶의 방향을 말하는 거다. 그것은 아름다움이고, 선이고, 진실된 것이다. 진선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종교가 의무감만 강조하고 자연스러움이 아닌 고의성이 담긴 교회는 종교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좀 슬픈 시를 공유한다. 그렇지만, "그들 만의 세상"이라 할지라도 나는 내 방식 대로 살 생각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난 것은 잊고, 다가올 미래에 두려워 하지 말고, 지금-여기에서 가진 것에 만족하며 순간을 행복하게 말이다. 오늘 사진은 커피문화와 바리스타를 강의하는 우리마을 3대학 <커피 1011>이 펼치는 대전 청년 작가 <윤유진 개인전> 작품 중 하나이다.
그들만의 세상에선/임영준
두리번 거리지마
꼬치꼬치 캐묻지도 마
어차피 꽉 짜여진
각본의 세상이야
아무리 발버둥쳐보았자
뱅뱅 제자리만 돌게 될 뿐이야
한번 꺽이면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거야
대대손손 물려줄
우물안의 장삼 이사인거야
더 이상 궁금해 하지도 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꿈꾸는 우리 사회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1) 공동체의 힘을 잃지 않는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공공 질서를 지키고, 나누는 마음들이 있었기에 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우리는 막아낼 수 있었다. 언택의 삶은 지속되지 못한다. 사람은 만나야 한다. 그래 작은 마을 공동체 속에서, 로컬택(동네 사람들끼리 만남)이 대안이다. 이를 위해 공동체를 만들고, 회복하여 그 힘을 길러야 한다.
(2)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들은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몸을 가볍게 하며, 변화를 준비하고 변화해야 살아남는다. 그렇다고 이 위기를 피해 가기도 어렵다. 설사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고 해도 새로운 기회가 저절로 찾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정부나 정치권은 위기의 시대에 리더십과 분권의 의미를 되물을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상대적으로 극복한 국가들의 공통점은 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충성과 가용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한편 이를 시스템화 하는 리더십의 기획설계(top level design) 능력이었다. 새로운 거버넌스를 준비해야 한다. 작은 지방 정부나 시민 공동체에 회복력을 갈러 주어야 한다.
(4) 경제적인 면에서, 지구 화되고 긴밀하게 연결된 곳일수록 오염이 심화한다는 점에서 유동성을 최대한 줄이고 미래를 과감하게 수용할 수 있는 스마트 도시에서 기회를 창출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 깔린 사회 신경망인 온라인이 이를 충분히 연결해줄 것이다.
(5) 사회적인 측면에서, 시장과 공공성을 동시에 보는 안목을 틔우는 일이다. 지방정부와 시장 맹신주의의 결합은 공공의 가치를 몰아내면서 최악의 조합을 만들 수도 있다. 이탈리아 남부의 황폐한 공공의료현장이 바로 그 사례이다. 정치와 민주주의의 질을 높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가 미래로 가는 열쇠를 쥐고 우리에게 길을 묻고 있다. 백신이 개발되고 치료제가 생산된다 해도 미래로 열린 창은 닫히지 않을 것이다. 바이러스는 면역력이 떨어진 몸에 기생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중증 기저질환을 도려내고 관행과 습관이 지배한 시대정신을 바꿔야 한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임영준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 #인의예지신_실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0) | 2025.09.13 |
|---|---|
| 인간 3.0과 정치적 인간, 자본주의 3.0 (0) | 2025.09.13 |
| 아이들은 문자 그대로 '작은 아이'이다. (1) | 2025.09.13 |
| 누가 부자인가? 자신의 몫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2) | 2025.09.13 |
| 미래를 만드는 건 운명이 아니라, 꿈이고 도전이다. (0) | 2025.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