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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간 3.0과 정치적 인간, 자본주의 3.0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9월 13일)

우리 동네 안오성 박사의 글에서 "인간 3.0과 정치적 인간, 자본주의 3.0"이라는 말을 배웠다. 인간 1.0은 소유지향성 인간을 말한다. 인간 2.0은 전문화와 자기자율공간 구축에 성공한 자유인으로 깨어난 개인이라 본다면, 인간 3.0은 사회속에서의 자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의 자신을 찾아가는 인간으로 나는 그를 '위대한 개인'으로 정의한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님비(공공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에는 이롭지 아니한 일을 반대하는 이기적인 행동)의식, 유체이탈 화법은 주로 인간 2.0 모형에 충실한 이들에게서 발견된다. 3.0 인간은 자기와 무관한 일에도 함께 울고 웃을 뿐 아니라, 자기와 무관한 일과 이해관계에 대해 의식하고 배려하고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는 인간이라 정의해 볼 수 있다.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독립적이고 윤리적 정체성 형성에 성공한 뒤, 사회와 관계속의 자신을 재발견하고 더 큰 자아로 '도약'을 꿈꾸는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 '도약'이란 거창한 사회참여가 아닐지라도, 타인을, 아니 타인의 입장과 주변인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있는 그대로' 의식할 줄 아는 '정치성', 기교가 아닌  '신사 다움'의 진화를 의미할 것이다.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 특히 '신사 다움'' 어원인 Gentleman도 알고 보면 지주나 귀족 자손의 안정적 토대위에서 학식과 교양을 쌓은 부유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공동체적 가치 속에서 '사람 다움'을 정의하는 전통이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따라서 그러한 '정치성'은 부유층의 전유물일 수 없으며, 인간 2.0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속성에 가까울 것이다.  인간 2.0과 인간 3.0의 또다른 두드러진 차이는 공동의 가치, 사회적 가치에 대한 태도이다. 인간 2.0에게 있어 그것은 자기집 거실에 걸어 두고 싶은 '멋진 그림'과 같다. 인간 3.0에게는 그것은 깨어지기 쉬운 유리병이고, 지켜내야 할 무엇이다. 더군다나 인간 2.0 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 3.0을 지향하는 이들은, 외부의 도전 (오해와 무관심)와 내부의 도전 (도덕적 우월주의, 자기 의도에 매몰되어 타인의 해석적  오해에 부주의한 태도)를 넘어서야 한다.

1620년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102명. 배에서 내리기도 전에, 41명의 어른들이 갑판위에서  "자유-윤리-법치-교육" 이라는 네가지 가치를 서로 서약하며 "우리가 저 땅 위에 살 때 이 네 가지를 공동가치로 하고 살 것을 함께 맹세" 한 뒤 배에서 내렸다고 한다. 그들은 인간 3.0 이었고, 미국 사회는 광활한 국토와 기술력이 아닌, 인간 3.0이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 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구에서는 자본주의가 시장경제에 내어 맡기는 기제에서, 시장에서 소외된 가치 , 즉  가격과 이윤 외의 가치인 환경, 인권, 소수자, 미래세대, 공동체 가치 등을 지키기 위해 정부의 적정 개입수준에 관한 지속적인 제도개혁과 정책담론을 생산하면서 자본주의 3.0으로 진화해 왔다. 즉 자본주의의 진화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려 할 때마다 거기에 질문을 던지고 시스템을 보수하는 인간 3.0 들의 개입과 의식의 힘이 있었다. 그들에게 발달한 정치지능은, 새롭게 부상하는 가치유실, 독식, 외면 기제를 방임하기 보다는 미세한 균열(틈)을 통해 미리 경종을 울리고, 재발방지를 고뇌하는 집단윤리의 힘을 가져다 준 것이다.

반면, 아시아 권에서 민주주의가 헤매는 이유는 인간 3.0 으로 진화한 개인들이 충분치 않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근본원인을 다음 같은 2가지에서 볼 수 있다
- 인간 2.0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문법),
-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적 전환을 위해 씨뿌리는 사람들의 부재.

달리 말해, 인간 3.0을 지향한 사회적 리더십과 담론의 부재, 혹은 이러한 이들의 활약 공간에 투자할 자본가 3.0 (인문학에 투자한 메디치 가문과 같은)또는 리더십 3.0 (당장의 과업목표 충족과 속한 집단의 이기주의를 넘어선)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의 글은,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기에, 안오성 박사의 글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인간 3.0이 되도록 공부하는 하루를 살고 싶다. 오늘 아침 글은 너무 무거워 시를 좀 가벼운 것으로 공유한다. 사진은 어제에 이어 커피문화와 바리스타를 강의하는 우리마을 3대학 <커피 1011>이 펼치는 대전 청년 작가 <윤유진 개인전> 작품 중 하나이다. 흑(黑)도 다 다르고, 백(白)도 다 다르다. 그냥 흑백이라고 하면, 그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명함/함민복

새들의 명함은 울음소리다
경계의 명함은 군인이다
길의 명함은 이정표다
돌의 명함은 침묵이다
꽃의 명함은 향기다
자본주의의 명함은 지폐다

명함의 명함은 존재의 외로움이다

인간 3.0이 되려면, 장자가 말하는 진인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지난 9월 2일에, 오늘 마지막으로 <<장자>>의 진인(眞人), 즉 인간의 참모습 아니 참된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공유한다. 이제까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진인은 쉽게 자신의 모습이 흩트려져 무너지지 않고, 무엇을 구걸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고집스럽지 않고, 겉치레가 없이 진실한 사람이 진인, 인간의 참모습이다. 다시 요약해서 말하면, 진인은 마음을 지어서 도(道)를 저버리지 않고, 인위로써 하늘을 조장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진인은 좋아하는 것도 한가지로 여기며,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한가지로 여기며,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이 일치되는 것도 한가지로 여기며,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이 일치되지 않는 것도 한가지로 여긴다. 한가지로 여기는 것은 하늘과 같은 무리가 되는 것이고, 한가지로 여기지 않는 것은 사람과 같은 무리가 되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이기지 않을 때 이런 사람을 일러 진인이라고 한다."

진인, 참된 인간은 무엇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대립, 상극, 이원론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이것도 저것도' 하는 하나 됨의 경지, 막히고 걸리는 것 없는 통전적(統全的)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한마디로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누가 무엇을 주장한다는 것은 수많은 의견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여긴다. 그러니 진인의 태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선악도 구분이 아니라, 양의 정도로 보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누가 어떤 일을 실수하여도 그의 존재 전체의 실수가 아니다. 그저 수많은 존재의 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하늘의 것과 사람의 것이 서로 이기려 하지 않는 경지'라는 것은 자연과 인위를 대치시켜서 자연만 따르고 인위는 배격해야 한다는 식의 이분법 마저도 승화한 경지,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이 서로 감싸 안은 절대적 초분별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이런 양극의 조화를 터득한 경지가 진인이 다다른 경지임을 말한 셈이다. 원문을 읽으려면 나의 블로그로 옮겨 가야 한다.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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