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3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9월 2일)
1
'니체가 말하는 삶에서 반드시 끊어야 하는 관계 4가지'를 스마트폰에 읽었다. 니체는 인간의 삶을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힘으로 서는 것'에 가치를 두었다. 잘 알려진 기린에 관한 이야기를 오늘 아침에 다시 써본다. 새끼 기린은 태어나면서부터 일격을 당한다. 키가 하늘 높이만큼 큰 엄마 기린이 선 채로 새끼를 낳기 때문에 수직으로 곧장 떨어져 온몸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이다. 충격으로 잠시 멍 해져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는 순간, 이번에는 엄마 기린이 그 긴 다리로 새끼 기린을 세게 걷어찬다. 새끼 기린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났고, 이미 땅바닥에 세게 부딪쳤는데 또 걷어차였다. 아픔을 견디며 다시 정신을 차리는 찰나 엄마 기린이 또다시 새끼 기린을 힘껏 걷어찬다. 처음보다 더 아프게 찬다.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진 새끼 기린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흔든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계속 걷어 차이 리라는 것을. 그래서 새끼 기린은 가늘고 긴 다리를 비틀거리며 기우뚱 일어서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엄마 기린이 한 번 더 엉덩이를 세게 걷어찬다. 충격으로 자빠졌다가 벌떡 일어난 새끼 기린은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발길질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제야 엄마 기린이 달려와 아기를 어루만지며 핥아주기 시작한다. 엄마 기린은 알고 있는 것이다. 새끼 기린이 자기 힘으로 달리지 않으면 하이에나와 사자의 먹잇감 이 되리 라는 것을, 그래서 새끼 기린을 무조건 걷어차는 것이다. 일어서서 달리는 법을 배우라고.
'어려울 때는 스스로 행복해지라'는 티베트 속담이 있다. 우리는 희망하고, 절망하고, 희망한다. 이것이 우리의 날개 짓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여우숲 생명학교> 김용규 교장의 말이 소환된다. 우리들의 삶에 필요한 단 두 가지의 능력, 더 나아가 온전한 삶을 사는 데는 다음과 같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나도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 "제 스스로 삶을 감당할 수 있는 힘"
-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 갈 힘"
2
니체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의지를 억누르는 관계는 파괴적이라고 보았다. 겉으로는 친밀해 보이지만 내면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관계들이 존재한다는 거다. 그런 관계를 끊어내는 용기가 결국 자기 삶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니체가 말한 경고는 단순한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이다.
끊임없이 타인을 지배하려는 관계가 그 첫 번 째이다. 상대방의 자신의 뜻대로 통제하려는 사람은 결국 자유를 빼앗는다. 니체는 자기 의지를 지키는 것을 삶의 본질로 본다. 지배적인 관계를 받아들이면 결국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관계는 끝내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올가미가 된다.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다. 자기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다. 그런 사람은 자유롭다. 거꾸로 자유로워야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이 된다. 우리가 심사숙고한 후 자유로움 속에서 내린 결정은,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이든 상관없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고, 성공과 실패는 때로는 우리의 의지와 실력과는 상관없이, 운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은, 우리가 내린 결정이 최선인가 묻는 것이다. 여기서 최선이란,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그 당면한 문제를 심사숙고해 그 핵심을 간파하고, 지금 당장 괜찮을 뿐만 아니라, 내일에도 괜찮은 결정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해, 실패하든 성공하든 내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고 괜찮다는 것은, 그 해결 과정이 다른 사람에게도 정정당당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의미가 있고 아름다워야 한다.
3
새롭게 시작하는 9월이다. 이젠 은퇴를 하니, 9월도 새롭지 않다. 원래 9월은 프랑스 말로, '랑트레(Rentree)'라고 해서 개학이란 말이다. 다시 입구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1) 과거와의 매정한 단절, (2)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 (3) 지금-여기에 대한 확신과 집착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를 온전한 '나'로 인정해 주는 것은 둘이다. 하나는 ‘지금’이라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라는 장소다. ‘지금’과 ‘여기’가 없다면, 나로 존재할 수 없다. 이 둘은 만물을 현존하게 만드는 존재의 집이다. 과거를 삭제하고 미래를 앞당겨 이 순간을 종말론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지금’이라면, ‘여기’는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나’를 생경한 '나'로 전환시켜주고 더 나은 '나'로 수련 시키는 혁명의 장소다. 이 '지금'은 과거와 미래가 하나 되는 시간이다. 내일은 가장 무서운 단어이다. 마귀가 내일이라는 영어 단어 tomarrow를 가장 즐겨 쓴다고 한다. 내일은 내 인생이 아니다. 그러니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일이든지 가장 어려운 것이 시작이다. 9월이 오면 늘 기억하는 시이다.
9월이 오면/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을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4
두 번째로 끊어야 할 관계는 무기력과 불평만 퍼뜨리는 관계이다. 항상 세상 탓만 하며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은 주변의 기운을 앗아간다. 니체는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힘으로 여겼다. 불평만 늘어 놓는 관계는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들고 성장의 의지를 꺾는다. 곁에 두면 삶 자체가 어두워진다.
윈스턴 처칠은 “비관론자는 매번 기회가 찾아와도 고난을 본다. 낙관론자는 매번 고난이 찾아와도 기회를 본다”는 명언을 남겼다. 긍정적인 태도와 자세가 도약의 원동력이라는 메시지가 함축된 말이다. 스페인에 사는 115세 할머니는 장수 비결에 대해 말하며 “독 같은 사람과 멀리 하라"고 조언했다. 이런 정치인을 멀리하고, 표를 주지 않으면 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게 장수 비결이기 때문이다. 모레라는 장수 비결에 대해 “운과 좋은 유전적 특성도 장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며 “규칙적인 일상과 가족, 친구와의 좋은 관계, 자연과의 교감, 정서적 안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후회하지 말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독 같은 사람과 멀리 하라"고 조언했다. 걱정도 후회도 하지 마라.
매사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더 오래 건강하게 사는데 도움이 된다. 게리 스몰 박사에 의하면, "낙관주의자들은 신체적, 정서적 어려움이 적어 고통을 덜 겪으며 에너지 수준이 높고 삶에서 더 행복하고 차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낙관주의는 또한 신체의 면역 체계를 강화해 감염 등 염증 반응에 신체가 더 잘 대응한다"고 말했다. 긍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감사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도움이 된다.
5
나를 끊임없이 평가 절하하는 관계가 끊어야 할 관계의 세 번 째이다. 친구나 동료라는 이름으로 나의 가치를 낮추는 사람들이 있다. 니체는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깎아 내리는 관계를 계속 받아들이면 자존감이 무너진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고 허무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끊어야 할 관계는 진정성이 없는 위선적인 관계이다.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이익만 계산하는 사람들이 있다. 니체는 진실을 외면하는 위선을 가장 큰 타락으로 보았다. 위선적인 관계는 신뢰를 무너뜨리고 결국 삶을 공허하게 만든다. 진정성 없는 관계는 붙잡을 가치조차 없다.
니체가 말한 끊어야 할 관계는, 지배하려는 관계, 불평만 가득한 관계, 평가절하는 관계, 위선적인 관계이다. 이런 관계는 삶의 힘을 빼앗고 자기 자신을 잃게 만든다. 결국 진짜 자유는 해로운 관계 끊을 때 시작된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 보다 누구를 끊어내느냐로 더 선명해 진다. 삶의 무게를 줄이고 스스로를 지키려면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식물과 나무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한 계절의 모습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0) | 2025.09.11 |
|---|---|
| 우리는 삶을 누리고, 재미있는 놀이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0) | 2025.09.11 |
| 아이에카(ayyeka)와 마아트(maat) (3) (0) | 2025.09.09 |
| <아이에카(ayyeka)와 마아트(maat)> (2) (0) | 2025.09.09 |
| 걸으면,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된다. (0) | 2025.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