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내일 부터 이른 추석 연휴이다. 어제는 "8월이 담장 너머로 다 둘러메고/가지 못한 늦여름" 날씨였다. 그래도 추석은 가을을 데리고 올 것이다. 가을이 온다고 하니 내 마음은 급하다.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흘러가다니. 올 여름은 개인적으로 알찼다. 작년 가을보다, 올 가을의 결실이 더 많으니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주말농장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주말농장에서 찍은 '목화나무 꽃'이다. 꽃이 지면 목화 열매가 매달린다. 그 열매들은 태양과 비바람에 자신을 내맡긴 믿음의 결과이다. 나는 가을이 모면, 햇빛과 비를 당분으로 바꿔 풍요와 결실을 이뤄 내는 작물과 나무들의 연금술에 깊이 감동한다. 우리는 풀과 나무의 한 계절에만 해당하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적으로 틀리지 않지만, 전적으로 옳지도 않다.
식물과 나무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한 계절의 모습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사람은 모든 계절을 겪은후에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계절만으로 인생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한 계절의 고통으로 나머지 계절들이 가져다 줄 기쁨을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 겨울만 겪어 보고 포기하면 봄의 약속도, 여름의 아름다움도, 가을의 결실도 놓칠 것이다.
타인에 대한 판단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각자 우리는 연약한 움을 틔운 시기에는 그 연약함이 오므려 쥔 기대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이 한 그루의 나무이다. 어떠한 계절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나누는 잘 안다. 어떤 겨울도 견디고 남을 만하다는 것을 나무는 잘 안다. 나무는 계절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여행의 시작이다. 한 시기의 모습으로 타인의 존재 전체 혹은 삶 전부를 판단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범하는 오류이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꽃 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무더기 속에서도 돌 더미 속에서도/어떤 눈길이 닿지 않아도."(라이너 쿤체) 인내는 단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인내는 아를 내다 볼 줄 알고 살아가는 일이다.
내일부터 나는 긴 쉼에 들어갈 것이다. 오늘 아침에 공유하는 시에서 "지나가던 새 한 마리/자기 그림자를 묻어버리고/쉬"는 것처럼 말이다. 만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물 깁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틈나면 고향 친구들을 만날 것이다. '한가위'를 좀 즐길 것이다. '한가위'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음력으로 8월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란 말이다. '추석(秋夕)'은 어원이 확실하지 않고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어서 '한가위'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다.
TMI(too much information)이지만, 한가위 대표음식인 송편의 원래 이름은 '오려송편'이다. '오려'란 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올벼를 뜻한다. 송편이란 이름은 떡 사이에 솔잎을 깔고 찐다는 의미로 소나무 송(松)과 떡 병(餠)을 붙여 부르던 데서 나왔다. 송편이 반달인 이유는 점점 기울어지는 보름달보다 앞으로 가득 차오를 반달을 중시한 우리 조상들의 우주관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추석에는 달도 둥글고, 과일도 둥글고, 마음도 둥글어진다.
요즈음 들어, 우리는 송편 빗느라 밤잠을 설치지 않는다. 대신 밥상머리에 술을 놓고 대화의 시간이 늘어난다. 그 대화는 먹고사는 문제이다. 일자리가 늘고 벌이가 좋아져야 가계소득이 증가하고 분배지표도 호전된다는 이야기 뿐이다.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그저 '희망고문'에 불과한 말들만 넘친다고 투덜댄다. 난 그런 말 대신, 어떤 가치를 갖고 살고 있는지, 어떤 재미를 가지고 사는지, 무슨 책을 읽는지 등등 사는 기술에 대해 밥상 머리에서 대화하고 싶다.
오늘은 수요일이므로 아침 일찍 나간다. 그리고 서울 강의까지 다녀와야 한다. 다행히 표를 예매했다.
9월과 뜰/오규원
8월이 담장 너머로 다 둘러메고
가지 못한 늦여름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뜰 한 켠
까자귀나무 검은 그림자가
퍽 엎질러져 있다
그곳에
지나가던 새 한 마리
자기 그림자를 묻어버리고
쉬고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오규원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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