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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

341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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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곤경에 빠지면, 제대로 생각할 수 없다. 그때 누군가 호의로 잡아주면 큰 힘이 된다. 나도 누군가 도움을 원하면 호의로 도와 줄 테다. 감정적일 때,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혜경(智慧鏡)'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 용어이다. '지혜의 맑고 밝음을 거울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지혜가 맑고 밝게 만물을 비추는 것을 거울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장자>> 제5편 <덕충부> 초반에 이런 말을 우리는 만난다. "人莫鑑於流水(인막감어류수) 而鑑於止水(이감어지수) 唯止能止衆止(유지능지중지)" 이 말은 "사람은 흐르는 물에  자신을 비쳐보지 않고, 멈춰 있는 물에 바쳐본다. 이처럼 멈춰 있는 것만이 능히 다른 것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흐르는 물에 제 모습을 비춰 볼 수 없고, 고요한 물에서만 비쳐 볼 수 있다. '고요함만이 고요함을 찾는 뭇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거울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래 우리는 '명경지수(明鏡止水)'라는 말도 한다. 말 그 대로 하면,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지만, 집념과 가식과 헛된 욕심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말한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가까이 한다. 이런 거울같이 맑은 마음에 자기들의 참모습을 비추어 보기 위해서 이다. 우리가 지혜를 가까이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장자>의 "덕충부"에 나오는 첫 번째 인물 왕태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형벌로 발 하나가 잘린 <장자>에 나오는 불구자 제1호이다. 그는 물론 가공의 인물이다.  그는 생사에 초연한 사람이다. 그는 사물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아 설령 천지개벽 같은 상황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꿈쩍 하지 않는 의연하고 의젓한 사람이다. 그는 운명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간디가 말한 진리파지(眞理把持)를 실현한 사람, 궁극적으로 여실(如實), 진여(眞如), 실상(實相), 살재(實在), 타타타(Tathata)를 실현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의 입장에서 보아 만물에 경계가 사라지므로,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본문의 표현을 쓰면 "마음을 노닐게 하는", "유심(遊心)"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마음이 제1편 소요유의 주제이다. "노닌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발 하나 떨어져 나간 것쯤은 흙덩어리 하나 떨어져 나간 것"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말하는 자유를 아는 사람이다. "나는 두려워하는 것이 적기를 바란다. 나는 적게 원한다. 그래 나는 자유이다." 묘비명을 내가 다르게 해석했다.

2
그리고 이어지는 글에서 장자는 이런 말도 한다. "聞之曰(문지왈) 鑑明則塵垢不止(감명즉진구부지) 止則不明也(지즉불명야) 久與賢人處(구여현인처) 則無過(즉무과) " 이 말을 해석하면, 듣건 대 거울이 맑음은 먼지가 끼지 않았기 때문이요,  먼지가 끼면 흐려진다고 했네. 또한 어진 이와 오래 사귀면 허물이 없어진다고도 했지"이다. 다시 말하면, 거울이 맑으면 먼지가 끼지 않고, 먼지가 끼면 정말로 맑은 거울이 아니다. 현인과 오래 지내면 잘못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거울을 늘 닦아 맑아야 한다. 그런 사람과 함께 오래 지내면, 내 잘못도 사라진다.

거울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에피소드를 공유한다. 배연국 세계일보 논설위원의 글에서 얻어 왔다. "중국의 당 태종이 좋은 사냥용 매를 얻었다. 매와 장난치며 놀던 황제는 위징이 들어오자 얼른 매를 품속에 감췄다. 낌새를 눈치챈 위징은 일부러 보고시간을 질질 끌었다. 위징이 물러간 뒤 태종이 품속에서 매를 꺼냈으나 이미 질식해 죽었다. 간의대부인 위징은 하루에도 몇 번씩 황제에게 간언을 올렸다. 그가 최고 권력자에게 ‘노(NO)’라고 외친 것은 300번이 넘었다. 이런 명신이 있었기에 태종은 명군이 될 수 있었다. 훗날 위징이 죽자 태종은 사흘 동안 곡기를 끊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구리 거울로써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아 흥망의 이치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알 수 있다. 위징이 없으니 짐은 거울을 잃은 것이다.'" 최근 특검이 벌이는 수사들이 밝혀지며, 이런 생각들을 했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나의 '지혜경'이다. "누가 그랬다./'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그저 덜 아픈 사람이/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 

누가 그랬다/이석희

누가 그랬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가끔은 이성과 냉정 사이
미숙한 감정이 터질 것 같아
가슴 조일 때도 있고
감추어둔 감성이 하찮은 갈등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쁜 숨을 쉬기도 한다
 
특별한 조화의 완벽한 인생
화려한 미래
막연한 동경
 
누가 그랬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

3
오늘 사진은 내가 저녁 산책 길에서 만난 여름 장미이다. 뜨거운 열기에도 자기를 드러내고 있다. 장미를 만나면, 나는 <<어린 왕자>>의 다음 문장을 기억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다. 기적이라 말의 사전적 정의는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또는 "신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런 기적은 정말 기이한 일일까?

어느 날, 어린 왕자가 사는 작은 별에 씨앗 하나가 날아왔고 꽃을 피웠다. 장미꽃은 어린 왕자를 길들이려고 했지만, 어린 왕자는 장미꽃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것이 사랑이라 고는 더더욱 눈치채지 못했다. 장미꽃도 어린 왕자를 길들여 소유하려고 했지만, 그것을 깨닫기에는 그가 너무 어렸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잘 몰랐으며 바라는 바도 달라 마침내 헤어지고 만다.

실제로 어린 왕자는 장미꽃 씨앗이 처음 날아온 그날부터 장미를 잘 돌보았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봐주었고, 정성껏 물과 바람막이를 제공해주었다. 장미 역시 갓 세상에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인지 표현과 방법이 상당히 서툴렀다. 그래서 둘, 어린 왕자와 장미는 마음이 서로 통하지 못하고 차츰 어긋나 버리고 만다. 꽃들은 원래 자기 마음을 정직하게 말하지 않는데, 어린 왕자는 너무 어려서 그 꽃을 사랑할 줄 몰랐고, 꽃을 사랑하지만 또 마음의 한 구석에서는 꽃도 나를 사랑하는지 의심을 했다. 또한 장미꽃은 어린 왕자가 떠나던 날에게 당신을 사랑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자존심이 강한 장미는 자신이 우는 모습을 어린 왕자에게 보이기 싫어 빨리 가라고 했다.

떠난 후, 어린 왕자는 후회한다. 꽃은 그냥 바라보고 향기를 맡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으며, 꽃이 하는 말로 판단할 게 아니라, 꽃의 행동으로 판단 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장미가 자신에게 투정부린 것은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고 후회를 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평온하고 안정된 삶에 불현듯 찾아와 마음을 어지럽힌 장미 꽃 한 송이 때문에 자신의 소중하고 자그마한 별을 떠나 머나먼 지구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 왕자>>의 저자 쎙떽쥐뻬리는 서로 길들여지려면, 서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길들여 짐'은 서로 관계를 맺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말해 준다. "우선 참을성이 많아야 해. 처음에는 나랑 좀 멀리 떨어져서 이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그러면 내 널 곁눈질로 힐끗 보겠지.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이란 오해를 낳기도 하니까. 그러다가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앉는 거야." 

길들이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경계를 풀고 서로에 대해 알아는 시간만큼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다. 어린 왕자는 조급했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관계가 가까워 지기를 원했다. 그는 더딘 속도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후에 여우를 만나 진정한 의미의 '관계'를 배웠다. 

여우는 어린 왕자가 오는 날을 손꼽으며 그를 기다렸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4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갑진 것인지 알게 되겠지." 하루는 '함께 여서' 특별해 졌다. 헤어지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눈물이 날 만큼 그들은 가까워졌다. 여우의 눈물에 어린 왕자는 마음을 아프게 할 생각이 없었다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진정한 '장미'의 존재에 대해 전한다. 수백 개의 장미가 피어 있어도 결국 어린 왕자에게 소중한 '특별한 장미'는 소행성에 두고 온 장미라는 사실을 말이다. 여우의 조언을 통해 어린 왕자는 비로소 장미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작별을 앞둔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중요한 비밀을 하나 가르쳐 준다.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그리고 여우는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 란다." 정말 그렇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거다. 그러니까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특히 지금은 내 공간, 내 시간, 내 취향이 중요해진 시대이기 때문에 더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아닌 '너'를 위해, '나'를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어야 한다. 그러면 사랑의 역설이 이루어진다. 생전 먹지 않던 음식을, 고치지 않던 습관을 바꾸게 하는 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헌신을 통해 내 변화를 목격하고, 내가 가진 한계를 확장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의 가장 큰 역설이며 기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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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 이야기를 하나 더 한다. 대한민국은 SNS 공화국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제기되는 선정적인 의혹만이 사실이다. 그 의혹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외로움을 달래 주고 부러움을 경감해주면 굳건하게 진리가 된다. 이게 IT공화국의 역설이다. 그 사실의 진위와는 상관 없이, 대중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정의이고 진실이다. 그런 일에 휘말린 당사자는 자신이 그런 의혹에 비춰진 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번거롭게' 증명해야 한다. 우리는 좀처럼, 자신이 경험한 인간을 신뢰하지 못하고, 남들이 제기한 소문을 진리라고 착각한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판단보다는, 대중이 떠드는 그것이 정의라고 믿는다. 우리는  좀처럼, 어떤 사안에 대해 숙고하지도 않고, 숙고를 통해 자신만의 의견을 도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예수가 제자들의 정신적인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던진 질문은 이것이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 하느냐?" 다른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예수에 관한 소문을 말하지만, 베드로는 자신만의 확신을 말한다. 베드로만 예수라는 육체에 숨겨져 있는 신성을 발견했다.

난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었다. 산전수전은 동물과 같은 인간을 비로소 신적인 인간으로 개조하는 스승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항상 오해와 질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순간 같은 인생을 살면서, 자신에게 의미가 있고, 타인들에게 아름다움이 되게 하면서 사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언제나 오해의 대상이다. 

이때 남들보다 앞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 타인은 자신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기에 앞선 자들은 언제나 불안하고 외롭다. 세상은 오해 받는 사람들이 진보 시킨다. 오해 받는 인간이 자신의 원대한 꿈과 열정을 자신의 몸으로 실천하면, 그것이 수용되던지 혹은 수용되지 않던지 상관 없다. 그것이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거리낌이 없다면, 그 진실은 통하기 마련이다. 

5
나는 '상식이라는 대패질'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상식을 뛰어 넘어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것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견해이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비약할 수 있는 것이다. 선견지명의 힘을 키우고 싶다면 자신의 속에 있는 작은 예감, 바보 같은 의견, 사소한 영감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상식은 다수결이지만, 진실은 다수결이 아니다. 숫자가 많으면 상식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곧 진실은 아니다. 

세상에 갑자기 찾아오는 재앙은 없고, 졸지에 다가오는 행복도 없다. 일이 커지기 전에 미리 서둘러 해결했으면 큰일이 아니었는데 무시하고 방관하다가 결국 큰일로 번져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분들은 조그만 조짐과 징조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세상에 어떤 큰일이든 작은 일에서 시작되고, 풀기 어려운 문제도 결국 쉬운 문제를 방치하는 데서부터 발단이 된다. 노자는 이것을 '반(反)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어떤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 작은 일들이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 거꾸로(反) 뒤집힌다는 것이다. 쉽다(易)고 생각하여 방치했던 일이 뒤집혀 풀기 힘든 어려운(難事) 일이 되고, 작다(細)고 무시했던 것이, 어느 순간 뒤집혀 해결할 수 없는 큰일(大事)로 번진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렵고 큰일이 닥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면 한결 수월하다는 것이다. 노자의 '반의 법칙'은 조직의 몰락을 설명하는 거다. 조직이 무너지기 전에 작은 징조들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 크지 않았을 때, 아직 어려운 상황이 아닐 때 빨리 손을 써서 미리 해결하는 것이 리더의 능력이다.

우주와 세상이 구동하는 원리인 '도(道)'는 우리의 상식과 반대로 움직이고, 멀리 가면 다시 돌아오고, 극에 다다르면 뒤집힌다는 거다. 그걸 바래고, 희망할 뿐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반대로 강하고 센 것을 이기고, 비우고 낮추는 것이 결국 채움과 높음으로 돌아온다. 군림과 강요는 결국 뒤집히게 되고, 섬김과 모심은 복종과 존경을 얻게 된다는 노자의 철학이 모두 '반(反)의 역설'이다. 아름다움 뒤에는 추악함이 있고, 행복 뒤에는 불행이 엎드려 있음은, 결국 '반'의 원리가 세상 만사에 깊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인문 일지>이 화두가 역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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