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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너무 쫓기면, 밥도 안 넘어가. 쌀도 물 좀 불려야 맛이 나는 거야."

341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9일)

1
일이 진척이 안 되고, 힘들 때면 다음  말을 기억한다. "너무 쫓기면, 밥도 안 넘어가. 쌀도 물 좀 불려야 맛이 나는 거야." 무엇을 하든 일도 잠깐 불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 아침에 일어나면 잠깐 시간을 내어 생각을 해야 한다. 그건 쌀이 물을 먹는 시간과 같다. 살다 보면 마음이 쉽게 흔들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한 문장의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짧은 말 한 마디가 오래 머리에 남아 삶의 방향을 잡아줄 때가 있다. 다음 말들은 우리들에게 마음을 불릴 시간을 준다.

2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살아 있으면 상황이 달라질 여지가 있다. 특히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이 사실만 기억해도 하루를 버틸 힘과 이유가 생긴다. 어려운 시간을 견디는 힘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세상에 끝은 없다. 내가 끝이라고 해야 끝이다. 사람은 빵보다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희망을 갖자. 'Dum vita est, spes est(둠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라는 라틴어 문장을 나는 좋아한다. 이 말은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건배사로 내가 자주 쓰는 것이 "스페로(spero), 스페라(spera)"이다. 이 말은  "나는 희망한다. 그러니 너도 희망하라"라는 말이다. 이 말은 '나는 숨쉬는 동안 희망한다'는 라틴어 'Dum spiro, spero(둠 스피로, 스페라)'에서 나온 말이다.

루쉰의 단편 <<고향>>의 마지막 구절은 공유한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희망이란 여러 사람이 함께 길을 만드는 것과 같다.

3
"산다는 것은 치열한 전투이다." 매일 아침 알람에 일어나고, 해야 할 일을 해내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전투이다. 이 전투는 누군가를 쓰러뜨리는 싸움이 아니라,  포기하고 싶은 마음, 미루고 싶은 습관, 불안을 이겨내는 과정에 가깝다. 오늘 하루 무사히 보냈다면 이미 충분히 잘 싸운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작은 괴로움 들과의 무수한 전투이다. 우리는 온갖 괴로움들 앞에서 때로 비겁하고, 때로 회피하려 들고, 때로 눈 감으려 들기도 하지만, 궁극에는 정면으로 응시하고, 깊은 원인을 찾아보고, 정면 승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힘을 기르는 것은 결국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산다는 것은/오세영


산다는 것은 
눈동자에 영롱한 진주 한 알을 
키우는 일이다.
땀과 눈물로 일군 하늘 밭에서  
별 하나를 따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가슴에 새 한 마리를 안아
기르는 일이다.
어느 가장 어두운 날 새벽
미명(未明)의 하늘을 열고 그 새 
멀리 보내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손 안에 꽃 한 송이를 남몰래 
가꾸는 일이다.
그 꽃 시나브로 진 뒤 빈주먹으로 
향기만을 가만히 쥐어 보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그래도 산다는 것이다.


성공은 선불이다. 성공은 10년 전에 뭔가를 선불로 지불했을 때, 10년 후에 성공이 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 전에 지불을 안 했는데 내 앞에 어느 날 갑자기 성공이 찾아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파부침선(破釜沈船)'이란 말이 있다. 초나라의 항우가 진나라와 일전을 위해 전군을 끌고 황하를 건넜을 때 모든 배를 침몰시키고 가마솥을 부숴 못 쓰게 만들었다는 고사성어이다. 산다는 것은 치열한 전투라는 것은 '파부침선'의 마음이다. 전투에서 지면 타고 돌아갈 배도, 밥을 해먹을 가마솥도 없으니 결연한 의지를 낼 수밖에 없다.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은 그렇게 된다. 상승하기 위해서는 높게 생각해야 한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삶의 전투에서 승리는 언제나 더 강하거나 재빠른 인간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다. 승자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기 믿음이 중요하다. "마음이 가는 곳을 믿어라."

4
"언제나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과거의 실수나 미래의 불확실함은 현재를 흐린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시선을 맞추면 마음이 한결 편안 해진다. '오늘 해야 할 한 가지'를 정해 그것만 마무리해도 하루의 만족감은 달라진다. 현재에 집중하자면서, 언젠가 써 두었던 글이다. 다시 공유하며 다짐한다.

세상과 맞서 싸우면 세상이 항상 이긴다. "세상이란 우연이 없어. 지금 내가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에 있는 거야"라 말하자마자 세상 일이 술술 풀려나가게 된다. 언젠가 내 노트에 적어두었던 글이다.

마음에 두지 말자
흐르는 것은 흘러가게 놓아두라
바람도 담아두면 나를 흔들 때가 있고
햇살도 담아두면 마음을 새카맣게 태울 때가 있지
아무리 영롱한 이슬도 마음에 담으면  눈물이 되고
아무리 예쁜 사람도 지나고 나면 상처가 되니
그냥 흘러가게 놓아 두자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세상은 엉망 진창'이라고 보는 거다. 이런 생각은 자기 자신도 불행하게 만든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을 판단하는 건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다. 상황이 나아지도록 무언가를 하는 건 다른 종류의 문제이다. 어쨌든 고민만 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 나아가 행동하여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살 만 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라. 만물은 순리대로 흘러간다. 세상이 평화롭기를 바라기 전에, 자신이 속한 세상의 조그마한 부분부터 평화롭게 만들어 나가는 거다. 

그러나 우리는, 살면서 늘 걱정 거리를 찾는다. 걱정에도 계급이 있어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실부터 걱정한다. 예컨대, 집에 불이 나는 문제에 비하면 코 고는 남편은 괴로운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생각을 조정해야 한다. 관점을 바꾸는 거다. 어떻게? 우리 머릿속에 있는 규칙이 스트레스를 만든다. 그러므로 규칙을 느슨하게 만들거나 다 버린다면 더 이상 세상이 우리의 규칙을 무시한다고 짜증 부릴 일이 없을 것이다. 화를 내지 않고 즐겁게 사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삶이 이래야 한다고, 또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법칙을 정하지 않는다면 더 즐겁게 살 수 있다. 걱정과 생각은 다르다. 생각은 인과관계를 따져 내일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은 흔들의자 같아서 계속 움직이지만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 할 수 없는 일을 걱정할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왜 생각을 조절하는 방법, 관점 바꾸기를 배워야 할까? 그 이유는 두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환경, 날씨,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조정할 수 없다. 우리가 완전하게 조절할 수 있는 데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자신의 생각 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외부 상황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생각을 바꾸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 또한 생각이 바뀌면 감정 역시 달라진다.

생각을 바꾸어 마음의 평화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는 균형이고 평정심이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마음을 편히 먹고 일상적인 습관을 형성하려는 태도에 달려 있다.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들은 무언가 다르다. 그들 각자는 매일 평정을 유지하는 훈련을 한다. 그건 안식처와 고요함을 찾아, 내면에 집중하는 거다. 그리고 무언가를 시작하기전에 세상에 맞서는 일부터 멈춰야 한다. 세상은 늘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하고, 사람들을 밀어붙이며, 투쟁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버려 두어야 저절로 풀리는 일들도 있다. 다만 현재에 집중하는 거다.

현재를 사는 일은 줄타기와 같다. 줄에서 떨어지는 건 당연하지만, 연습하다 보면 더 오랜 시간 줄 위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현재에 전념하는 전략이, 서두르면서 살지 않는 거다. 그리고 모든 일에 필요한 만큼 시간을 들이는 거다. 필요한 일을 하는 동안 온 정신을 거기에 집중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말이다. "필요한 만큼 시간이 걸리겠지. 서두르지 않겠어." 현재라는 줄 위에 오래 견딜수록 삶은 더 나아진다. 

5
진정으로 웃으려면 고통을 참아야 하며, 나아가 고통을 즐길 줄 알아야 해." 이 말을 한 찰리 채플린은 1977년 12월25일 스위스 자택에서 잠을 자다 영면했다. 천수(天壽)를 누린 채플린은 어떻게 죽는 순간까지 그런 천복(天福)을 누렸을까? 나는 세상 사람을 웃게 해준 채플린에 대해 신이 보여준 최소한의 감사 표시라고 조성관 작가는 생각했다. 다른 이를 웃게 하는 것은 복 받는 일이다.

좋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디킨스가 1861년에 발표한 작품이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에서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인물은 조 가저리(Joe Gargery) 이다. 허영에 물든 신사의 세계를 동경해 신사를 흉내 내는 필립 핍(Philip Pip)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조 가저리는 누나의 남편이다. 평생 성실한 대장장이로 살아가는 우직한 소시민이다. 그런데 런던 신사의 세계에서 한때 잘 나가던 핍이 나락으로 떨어져 그를 찾아온다. 가저리는 그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도와준다. 디킨스는 말한다. 잘 사는 인생이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성실하게 직분(職分)을 다하는 것이라고. 이를 파블로 피카소는 조금 근사하게 변형시킨다. "삶의 의미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이고, 삶의 목적은 그 재능으로 누군가의 삶이 더 나아지게 돕는 것이다."

자신이 비록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한발 짝 더 내디뎌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감동을 준다. 이것이 바로 어떤 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힘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모든 창의적인 일이나 사회적인 공헌 등은 우선 자신이 확장되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공적인 역할로 자리잡은 경우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하나의 수고가 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수고가 있어야 세상은 더 나아지고, 동시에 자기 자신은 더 성숙해진다.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 한 개인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하나의 역할만을 담당하고 산다. 세상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우리는 '직(職)'이라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행위의 결과에 따라 성숙해 간다. 당연히 모든 행위는 사실 수행(修行)이며 거기에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특정'한 역할(職)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고 완성(業)한다. 이것이 바로 '직업(職業)'이다. 인간은 '직업'을 잘 수행함으로써 사회적이고 공적인 존재로 확장한다. 바로 '직업인'이다.

문제는 '업(業)'이다. 자신이 맡은 역할(職)을 전인격적인 태도로 대하느냐, 아니면 기능적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전인격적인 태도는,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정해진 일만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의 궁극적인 의미를 살펴서 거기에 온 마음을 두고 기꺼이 불편함과 수고를 받아들여 조그마한 확장성이라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자신의 역할을 하나의 수행처로 삼아야 한다. 그 역할을 통해서 자아가 완성되고 실현된다는 지속적인 각성을 하고, 항상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라도 마음이 떠난 상태에서 자신의 역할을 기능적으로만 대한다. '직'과 '업'이 분리된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직업인'이 아니라 그냥 '직장인'이라 한다. 한 사회의 건강성과 진보는 구성원들이 '직업인'으로 사느냐, '직장인'으로 사느냐가 좌우된다. 

인생을 살아보면 깨닫게 된다. 평생 직분을 다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직책이 부여하는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다하는 일. 소방대원은 사람들이 내려오는 길을 거꾸로 올라가는 직업이다. 소방대원의 직분은 내려오는 계단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다. 소방대원이 연기 자욱한 계단을 올라가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어떤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회 각 부분에서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 덕분이다. 한 번 뿐인 인생에서 잘 사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아침 공유하는 사진처럼, 한여름의 격정을 다 떨궈버린 겨울 산을 볼 때마다 자문하곤 한다. ‘메멘토 모리", 당신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지금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아닐까?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만큼 인생에서 명확한 답은 없다. 죽음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면 우리의 삶은 새로운 방향으로 한 걸음 전진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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