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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잔소리하지 않으며, "아름답게 나이"들고 싶다.

339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7월 21일)

1
대화는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주고 받는 것이다.  대화법 용어에 '전환 반응'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상대가 꺼낸 말에 호응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초점을 자기 자신에게로 전환시켜 더 이상 상대가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대화 속에서 '전환 반응'을 통해 자기 쪽으로 이야기의 화제를 돌리는 상황을 사회학자 찰스 더버는 '대화 나르시시즘'이라 한다.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우리는 대화를 할 때 말하는 시간의 약 60%가량을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쓴다고 한다. 게다가 나머지 40% 또한 대화 상대방이 아닌 제3자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니, 정작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져버리고, 대화는 일방적으로 흐르고 만다. 이건 본능적인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더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 나르시시즘에 빠져 지속적으로 전환 반응을 보이게 되면, 대화는 더 이상 진전되고 힘들고, 진전되더라도 일방적이거나 갈등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상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전환 반응이 아니라, 지지 반응을 보여야 한다. 이건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것이다. 이는 상대의 말을 그대로 받아 상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거다.  대화를 할 때, 상대가 말한 것과 비슷한 내 경험을 말하려 하지 말고, 그저 상대의 말에 박자를 맞추고 그 말에 호응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관계는 훨씬 생산적이고, 발전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2
오은 시인은 '팝콘처럼 말한다'고 했다. "말할 때 나는 이리저리 기웃 거리기를 좋아한다. 갈래갈래 뻗어 나가는 길 중 하나를 골라 진득하게 걸어가면 좋으련만, 거기서 도중에 맞닥뜨린 광경에 마음을 내주기 일쑤다. 조약돌 하나, 꽃 한 송이, 교통 표지판이 또다시 샛길을 낸다. 샛길이 마치 새길이라도 되는 양, 그 안에 선뜻 발 들이고 신나게 누빈다. 팝콘처럼 말할 때는 무엇보다 귀환이 중요할 텐데, 강연할 때 청중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번번이 내 발목을 잡는다. “제가 어디까지 했었죠?” 팝콘이 너무 멀리 까지 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팝콘 부스러기를 단서 삼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여정이 늘 수월하지 만은 않았다." 옥수수 알갱이를 튀기면 팝콘이 튄다. 튀김과 튐의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는 거다

팝콘처럼 말하는 과정에서 미처 터지지 못한 알갱이, 너무 익어서 타버리고 만 알갱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디로 어떻게 튈 줄 몰라 튀겨 지기를 거부한 알갱이도 있었을지 모른다. 새 길에 매혹된 나머지, 원래의 길에서 이탈하고 마는 때도 잦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저기로 건너가는 다리를 마련하지도 않은 채 왜 얼른 따라오지 않냐 고 채근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도 된다. 빵 하고 튀어 오르는 팝콘에 온 신경을 기울인 나머지, 팝콘의 재료가 옥수수임을 까맣게 잊었던 적도 많았을 것이다.

말이 튀김이라면 글은 찜에 가까울 것이다. 어쩌면 나는 타오름과 뭉근함, 그 사이를 바지런히 오가다 쓰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오은 시인은 묻는다. 옥수수를 팝콘으로 먹기도 하지만, 그것을 쪄 먹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천천한 상태와 기꺼이 가까워질 시간이다. 천천히 생각하고 그 생각을 천천히 받아 적어야 한다. 급히 말하느라 미처 꽃을 피우지 못한 팝콘이 아니라,  알갱이가 알맹이가 될 수 있도록 천천해 져야 좋은 글이 된다.

3
한숭희 교수가 말하는 교육부 장관에게 필요한 능력이 정리가 된다. 교육의 대규모 구조 변화가 필요하며, 이러한 교육개혁은 검찰개혁, 연금개혁, 사회 양극화 해소만큼이나 시급하기 때문이다. 다음 네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사유하여야 한다.
▪ 교육부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겸하고 있다. 지난 정부까지 교육부 장관은 단순히 학교와 교사 정책을 총괄하는 위치로만 이해됐고, 교육과 함께 사회정책 전반을 융합적으로 조정하는 기능은 간과됐다. 반면, 지금 당면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복잡한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범 부처 간 장벽을 허물고 융합적이고 복합적으로 문제를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은 교육부 안에 갇혀 있었고, 그사이 교육 문제는 안으로 곪아가면서 옴짝달싹 못하는 지경이 됐다. 이런 한계는 고용정책이나 복지정책도 마찬가지였다. 교육 문제의 대부분은 내부의 교육 상황을 얽매는 외부 지형의 맥락적이고 외연적 특성 때문에 나타난다. 실타래를 풀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육이 놓인 사회맥락적 제한성을 간파하고 여기에 얽혀 있는 관련 정책들, 예컨대 입시 문제, 고용구조, 복지제도, 사회 양극화 문제 등을 동시에 풀어갈 포괄적 지혜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 두 번 째는 미래 교육을 장착한 새로운 한국형 학교 체계, 즉 학교 중심 교육체제를 넘어 새롭게 정착시켜야 하는 평생학습 기반의 새로운 한국 교육체제가 필요하다. 그 안에는 학교나 대학 차원의 문제 이외에도 학교와 노동시장, 사회 양극화, 4060세대의 대규모 경력 전환, 역사교육과 민주주의 학습, 인공지능 디지털 학습 등 전 사회적 문제들이 함께 포함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육-노동-복지-과학의 복잡계를 연결하는 ‘미래적으로 확장된 교육 생태계’를 교육개혁의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지혜가 요청된다.
▪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부터 이런 일을 하라고 준비한 것이 국가교육위원회이지만 그 조직 체계와 기능 방식에서 볼 때 정파성을 떠나 합의된 미래를 구성하기는 어렵다. 구조적으로 실패작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히려 교육부 안에 실질적 싱크탱크를 내장하고 조금씩 현안을 밀고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래서 교육부 장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 대학 총장 출신을 지명하는 것은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 대학 총장 경험은 주로 대학 시스템을 유지 관리하는 데 집중돼 있으며,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자신의 몸에 칼을 대려고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막중한 역할을 맡기에는 국립대 총장의 경험이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계획이 지역거점국립대들의 이익이 직결된 사업이라는 점과 동시에 바로 그 대학들을 철저하게 해체하고 다시 디자인하는 사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검찰이 자기 조직을 스스로 개선하기 어렵듯이 지방 국립대 총장 출신 장관은 지역거점대학에 대해 제대로 된 수술을 하기 어렵다.

3
맹자와 쌍벽을 이루었던 순자는 신하를 넷으로 나눴다. 태신(態臣), 찬신(簒臣), 공신(功臣), 성신(聖臣)이 그것이다. 그는 군주가 성신을 등용하면 존귀해지고 공신을 등용하면 영예로워진다고 했다. 백성들을 잘 단합하게 하고 외환을 잘 막으며 군주에게 충성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데 지치지 않는 신하가 공신이고, 이에 더해 예기치 못한 일이나 변화에 잘 대처하고 기존 시스템을 넘어서는 것에 기민하게 대응해 법제도를 빈틈없이 마련하는 신하가 성신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군주가 찬신을 등용하면 위태로워지고 태신을 등용하면 망한다고 했다. 찬신은 백성을 단합시키지도 외환을 막아내지도 못하건만 아첨으로 군주의 총애를 얻는 데는 단연 최고인 자다. 태신은 찬신의 못남에 더해 백성들에게 인기나 얻으려 하고 공정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작당하여 군주를 미혹하게 하고 사리사욕을 도모하는 데만 힘쓰는 자들이다.

한마디로 찬신과 태신은 관리로서 직무 역량이 태부족하고 도덕 역량도 형편없지만 사리사욕을 취하는 데는 발군인 자들이다. 공신과 성신은 백성 상호 간에, 백성과 위정자 간에 단합을 잘 일궈내며 외환도 잘 막아낸다. 의사소통 역량이 뛰어나고 외교, 국방 역량이 강하다는 것이다. 특히 성신은 예기치 못한 사건, 재난 등에 대한 대처 능력이 빼어나고, 제반 변화에 필요하다면 법제도를 새로 마련하면서 능동적으로 대응해간다. 갈등 조정 역량을 갖췄고 국제정세에 밝으며 미래 대처 능력도 남다르다는 뜻이다. 새로운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법제도를 만들어 필요한 변화를 추동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인사권자의 눈이 높다고 하려면 못 돼도 공신 급 인물 정도는 등용해야 명실상부한 말이 된다. 실정법을 어기고도 사과만 하고 넘어가려 하고, 표절 같은 도적질을 하고도 오히려 떳떳해 하는 인사를 장관에 앉히면 작게는 대통령에게 해가 되고 크게는 나라에 손해를 끼치게 된다. 내가 믿고 읽는 김월회 교수의 글에서 얻은 생각이다. 다시 한번, 네 부류의 신하를 열거해본다. 성신(聖臣)-공신(功臣)-찬신(簒臣)-태신(態臣).

4
이번 정부의 이름인 "국민주권정부"는 다음 세 개의 커다란 과제를 갖고 있다. 게다가 이 '삼중의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층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내란 극복, 
▪ 민주주의 복원, 
▪ 개혁의 동력으로서의 최대 민주연합 형성과 유지

이 세 과제는 상호 긴장 관계를 이루며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삼중 딜레마(trilemma)’적 성격을 지난다. 새 정부는 빠른 내란 수습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민주적 절차와 제도를 통해 이를 수행해야 하는 이중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동시에 제21대 대선 과정에서 성취하지 못한 민주주의 다수 연합의 정치적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난제가 있다. 이러한 복합적 과제는 촛불정부의 사례가 보여주듯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지지나 소통에 기대어 달성하기 어렵다. 이 복합 과제에 대한 시민들의 중간 평가는 제23대 국회의원 선거(2028년 4월)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에 대한 심판에 기초해 집권했으며, 문재인 정부의 공약대로 ‘나라다운 나라’ 구축에 대한 비전과 실행을 통해 지지 기반을 확장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 다수 연합 구축에 실패했다. 결국 적폐청산의 도구였던 검찰 조직의 총장 출신 야당 후보에게 21대 대선에서 패배하며 정권을 내주었다.

5
나이 먹어 자꾸 잔소리를 한다. 왜 그럴까? 쓸데 없는 노파심이다. 나이가 들수록 잔소리가 많아지는 건 경험이라는 빅데이터가 쌓여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 잘될 것이고, 저렇게 하면 망할 것이라는 그 나름의 데이터 말이다. 하지만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 하는 좋은 말은 잔소리일 뿐이다. 이걸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끝까지 경청하는 것이 어렵고,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자주 노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노자는 "말을 아끼라"(제17장)고 말한다. 바로 '잔소리'를 줄이라는 말이다. 잔소리는 지켜야 할 것을 부과하는 이념이나 기준이다. 이것을 줄이는 일은 잘못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잔소리하지 않으며, "아름답게 나이"들고 싶다.

아름답게 나이 든다는 것/김한규

그것은 끝없는 내 안의 담금질
꽃은 질 때가 더 아름답다는 순종의 미처럼
곧 떨어질 듯 아름다운 자태를 놓지 않는 노을은
구름에 몸을 살짝 숨겼을 때 더 아름다워
비 내리는 날에도 한 번도 구름을 탓하는 법이 없다

우아하게 나이 든다는 것
그것은 끝없이 내 안의 샘물을 길어 올려
우리들의 갈라진 손마디에 수분이 되어주는 일
빈 두레박은 소리 나지 않게 내려 내 안의 꿈틀거리는 불씨를
조용히 피워내는 불쏘시개가 되는 일.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것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욕망의 가지를 피를 토하는 아픔으로 잘라내는 일
혈관의 동파에도 안으로 조용히 수습하여
갈라진 우리들의 마른 강물에 봄비가 되어주는 일.

살다가 문득 홀로 거닐다 바라본 높은 하늘이 너무 청아해
누군가에게 꼭 하늘을 마주 바라보자는 그 말을 전하고 싶어
문자를 보내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너 혹은 나의 처진 어깨를 펴 주고
가끔은 나를 버려 우리를 사랑하는 일이다
추하지 않게 주름을 보태어 가는 일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낸 날들이 다만 슬펐을 뿐


셰익스피어가 말한 노년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다짐하며, 그의 충고를 다시 한 번 적어 가며 마음을 추스른다. 
▪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는다.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몸이 늙어도 마음은 청춘일 수 있지만, 마음이 늙으면 몸은 반드시 늙는다. 단순하게 아파서 청춘이라기 보다는 아픔을 통해서 배우니까 청춘인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매일 매일 <인문 일지>를 쓰면서, 많이 읽고, 많이 배운다.
▪ 과거를 자랑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자랑은 흘러간 옛 노래만을 반복하고 사는 성장을 멈춘 사람들이 쓰는 신세 타령이다. 옛날 이야기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실제로 자신은 처량한 구세대가 된 것이다. 처량함을 광고하지 말아야 한다.
▪ 젊은 사람과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과 함께 즐긴다. 삶의 지혜를 나눠주고 대신 기술적 진보를 배운다. 또한 적절한 시점에 젊은 이들에게 자신의 의자를 물려주는 지혜를 배운다.
▪ 부탁 받지 않은 충고는 굳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잔소리가 늘었다는 것은 자신의 성장이 멈춰 자신의 허물보다 남들의 허물이 커 보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지금도 성장해 가는 사람들은 현재의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탓하거나 아들을 간섭하지 않는다. 
▪ 젊은이들을 '개인적 철학'으로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특수한 경험치에 갇힌 세상과 소통이 안 되는 개인 철학을 조심하여야 한다. 또한 자신의 나이가 자신이 주장하는 철학이 맞다는 것을 다 보증해준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철학도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고 성장하게 만들 수 없다면 다 자신에게 감옥이다. 먼저 이 감옥 속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긴다.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즐기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이 좋다. 세상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최대한 화음을 맞추는 삶을 디자인한다. 인간의 병은 세상과 자연과의 화음이 끊어지는 곳에서 생긴다. 화음은 또다른 울림을 만들어 인생을 장대한 한 편의 교향곡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 늙어 가는 것을 불평하지 않는다. 
▪ 젊은 사람에게 세상을 다 넘겨주지 않는다. 특히 물질을 그들에게 다 주는 순간 천덕거리가 될 수 있다. 물질적인 것을 남겨 주기 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성장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는 삶의 유산을 남겨주도록 한다.
▪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빨리 죽어야 되는데"를 노래가사처럼 애창하지 않는다. 확실히 오는 죽음을 일부러 맞으러 갈 필요는 없다. 죽음 앞에 도달하는 그 순간까지는 그냥 삶을 즐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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