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23일)
오늘도 스캇 팩(Scott Peck)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꼼꼼하게 읽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훈육의 도구로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알려 주었다.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 것, 진리에 대한 헌신 그리고 균형 잡기이다. 여기서 훈육이란 인간의 정신적 발달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 훈육에 관심을 갖게 하며 또한 훈육할 원동력을 주는 힘은 사랑이다. 사랑은 신비롭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사랑에 대해 참으로 만족할 만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스캇 펙은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 했다. 나는 "확대"라는 말보다 '확장'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사는 맛은 관계이고, 거기서 일어나는 활동의 폭이 확장될 때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계와 활동 속에서 일어나는 수렴하고 발산하는 순환 가운데 내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다. 이걸 우리는 성장이라 한다. 소유 욕망에 사로잡혀 집착하기보다 존재 자체로 건너가기를 하며, 자유를 확장해 나갈 때 발산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관계와 활동이 작동된다. 이런 순환을 나는 좋아한다. 이러한 행동의 힘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어쨌든 스캇 펙의 사랑에 대한 정의로 다시 돌아 온다. 사랑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이다. 그는 이 정의를 몇 가지로 나누어 언급하였다.
(1) 사랑이 목적론적 정의라는 거다. 사랑의 행위가 지향하려고 하는 목표나 목적의 관점에서의 정의로, 그 목표는 영적 성장이다.
(2) 사랑이 신기한 순환적 과정이라는 것에 주목했다는 거다. 자기 자신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이란 진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기 한계를 성공적으로 확대시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이전보다 더 큰 존재로 성장할 것이다. 따라서 사랑의 행위가 타인의 성장을 목적으로 할 때도 역시 그 또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는 진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순환된다는 거다.
(3) 남을 위한 사랑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고 있다는 거다. 나도 인간이고 다른 사람도 인간이므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똑같이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을 훈육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돌볼 때 절제된 행동을 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자신의 힘을 키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힘의 원천이 되어줄 수 없다.
(4) 자기 자신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거다. 사랑은 노력 없이는 안 된다.
(5) '의지'라는 단어로 욕망과 행동을 구분한다는 거다. 욕망이 반드시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지는 행동을 유발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욕망이다. 흥미로운 분별(分別)이다. 사랑하려는 욕구 자체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행위로 표현될 때 사랑이다. 사랑은 의지와 행동이며, 다시 말해서 의도와 행동이 결합된 결과이다. 의지 또한 선택을 내포한다, 우리가 반드시 사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를 선택한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생각할지라도 실제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한편 정신적 성숙을 목적으로 실제로 노력할 때는 항상 그렇게 하겠다고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겠다는 선택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신비 때문에, 그리고 사랑에 대한 오해 때문에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기기가 쉽지 않고, 어렵다. 그래 저자는 사랑이 아닌 것을 살펴 보면서, 사랑의 본질을 밝히는 작업을 했다. 그 문제는 내일로 이어간다.
다음은 언젠가 <인문 일기>에 썼던 말이다. "고통을 사랑하라!" 『스포츠를 위한 강인한 정신 훈련』인 책을 낸 짐 로허의 말이다. 이 말을 소개한 팀 페리스는 이런 말도 소개했다. 고통을 사랑하면, 어지간한 고통에 우리는 의연(毅然)할 수 있다. '의연'이란 '의지가 굳세어 당당함'을 말한다. 고통 앞에 당당하고, 초조해 하지 많으면, 다른 기회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고통이 아니라, 이길 수 없는 적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라 했다. 이게 이길 수 없는 적을 다루는 삶의 지혜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생의 실세는 아무 에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이다.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에 담긴 이야기를 어떻게 경청할 것인지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 다음 말도 멋지다. '내가 내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수준이 곧 나의 현재 모습이다.'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사랑하라는 말이 자신에게 가하는 째칙질이 아니다. 모든 성장에는 불편이 따른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메시지일 뿐이다. 그러니 고통을 이길 수 없다면, 고통을 사랑하는 편이 낫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에서 출발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들어 보자. "고통은 필연적이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당신은 달리면서 '너무 아파. 더 이상 못 달리겠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아픈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더 견딜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고통(pain)과 괴로움(suffering)은 다르다. 고통은 어떤 경험이다. 주로 다양한 감각들로 구성된다. 괴로움은 어떤 경험들, 특히 고통에 의해 촉발되는 정신적 반작용이다. 괴로움의 본질은 실체의 거부이다. 다시 말하면 실체의 부정이 모든 괴로움의 뿌리이다, 예컨대, 고통을 경험 할 때는 그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쾌락을 경험할 때는 그 쾌락이 강해지고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진 않는다는 데서 괴로움이 시작된다. 괴로워 하지 않으려면,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훈련해야 한다. 이게 며칠 동안 이야기하고 있는 훈육이다. 이 훈육에 관심을 갖게 하며 또한 훈육할 원동력을 주는 힘은 사랑이다. 사랑은 신비롭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사랑에 대해 참으로 만족할 만한 정의를 내기 쉽지 않다.
그래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거대한 태풍의 눈에 들어선 돛단배와 같다. 거친 바다를 지나 적막한 태풍의 눈으로 진입하면 이성이 마비되고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감정이 솟아오른다. 그러면 Vita nuova(비타 누오바,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새롭다는 것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자신의 상식과 정반대되는 것, 상상할 수 없는 저 너머의 무엇을 꾸며주는 말이다.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도, 사랑이란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그 가치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자신의 가슴에 있는 영혼에서 찾을 때의 조건이 붙는다. 자신과 유리된 이념에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자신의 최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상대방과 나와의 간격을 소중하게 여기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더불어 자신의 고결한 품위를 유지하는 절제이다.
사랑은 절제이다. 상대의 경계를 무단침입하고,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강요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색욕(色慾)이다. 색욕은 무절제하다. 단테는 무절제를 이탈리어로 인콘티넨차(incontinenza)라 불렀다. 이 말의 원래 의미는 '요실금'이다. 인간이 자신의 정신을 다듬지 못하고 영혼을 돌보지 않으면 요실금처럼 품격을 망치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게 된다. 현대인들은 성적인 방종, 과도한 음식 섭취, 쇼핑중독, 과도한 분풀이 그리고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이라는 요실금에 걸려 있다.에리히 프롬도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기술이라고 했다. 그는 "사랑에 빠진 감정이 사랑인가' 질문하기도 한다. 사랑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황금률처럼 진정한 겸손, 용기, 믿음 그리고 훈련 없이는 소유할 수 없는 보물이다. 사랑은 한순간에 빠지는 동사가 아니라, 상대방을 내 몸처럼 아낄 수 있도록 수련으로 도달하는 마음의 상태, 즉 형용사이다. 상대방을 존재가 아니라 소유물로 여기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그래도 사랑은 안부하는 것"이다.
그래도 사랑은 안부하는 것/김철현
잘 있는 거니?
잘 지내는 거 맞지?
아픈 데는 없는 거니?
혹시 날 잊은 건 아니겠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니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대답인 줄 알면서도
습관처럼 안부한다.
허공에 쌓인 궁금증이
벌써 얼마인지.......
그래도 여전히 안부하는 건
사랑하기 때문이야.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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