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오늘은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다는 날,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夏至)이다. 24절기 중 열 번째 날로 망종(芒種)과 소서(小署) 사이에 있다. 이 날 지표면에 닿는 태양빛이 가장 많기 때문에 이날부터 점점 기온이 올라가, 삼복때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게 된다. 농촌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이전에 모두 끝난다. 그리고 햇감자를 캐어 쪄 먹거나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 먹는 시기가 바로 이 때이다. "하짓날은 감자 캐 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이라는 말이 있다. 농촌에서는 이 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오늘 아침에 나는 크게 위안이 되는 문장을 만났다.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떤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와도 이것을 이용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항해의 본질이다."(윤정구) 이렇게 생각했더니, 여기 저기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또 소개받았다. 사람을 만나는 관계의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이젠 아무나 만날 생각이 없다. 아침에 유안진 시인의 방향이라는 시를 알게 되었다. 이 시를 소개한 <매경>의 허연 기자는 "결국 모든 운명은 방향이 결정한다. 내가 어느 방향을 보고 있었는지, 어느 방향으로 걸어갔는지가 나의 운명을 결정한다. 방향이 곧 운명이다"라 말하면서, "'가슴 쓰라린 쪽 노을이 더 붉다'는 시인의 절창은 육중하게 다가온다. '당신 쪽에 매달린 과일이 더 잘 익는다'는 아포리즘도 오랫동안 가슴을 흔든다"고 덧붙였다. 요즈음 내 삶이 그렇다.
방향/유안진
한 포기에서도 먼저 피는 꽃이 있다
볕바른 쪽이다
한 나무에서도 더 잘 익는 과일이 있다
당신 쪽이다
한 하늘의 노을도 더 붉은 쪽이 있다
가슴 쓰라린 쪽이다
절두산 부활의 쪽
그러다가 윤정구 교수의 담벼락을 여러 개 읽었다. 거기서 이승철 가수의 소통법에 대해 올린 글을 만났다. 언젠가 윤 교수로부터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운 적이 있다. "날줄과 씨줄의 원리"라고 나는 혼자 명명했다. "소통의 본질은 남들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의 텍스트를 이해하고 이것을 날줄로 삼아, 여기에 자신의 스토리를 씨줄로 끼워 넣어 새로운 맥락의 더 참신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다."(윤정구) 소통과 소음은 다르다. "남의 이야기에 개념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가 답이라고 규정하고 일방적으로 들려주는 스토리는 소통이 아니라 소음일 뿐이다."(윤정구)
언젠가 윤교수의 담벼락을 보고 적어 둔 것이 있다. "흔히들 새로움이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무에서 유를 만들려고 맨 땅에서 헤딩하다 결국 실패하면 눈을 돌리는 것이 벤치마킹이다. 남의 것을 빌려 오면 유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벤치마킹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원리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새로운 것이 조직에 발 못 붙이게 만드는 원리다."
새로움을 만드는 근원적 변화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있는 것을 날줄로 삼고 또한 날줄로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 이유인 목적을 씨줄로 삼아 새 맥락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유인 존재이유에 대한 성찰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힘들다." 좀 정리를 하면, 이미 있는 것을 날줄로 삼고 또한 날줄로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 이유인 목적을 씨줄로 삼아 새 맥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유인 존재 이유를 버리지 않는 일이다.
가수 이승철은 누구에게서 곡을 받으면, 자신의 목소리 지문을 곡에 넣어 부르기 전에 곡을 1000 번 정도 듣는다고 한다. 1000번 정도 듣고 나면, 자신의 목소리 지문을 이 곡의 날줄에 어떻게 씨줄로 끼워 넣어 새로운 태피스트리를 만들어야 하는지 감이 온다고 한다.
윤정구 교수는 비틀즈 이야기를 통해, 모든 것이 살아 있는 생명으로 인식될 때, 다른 이들과 소통되면서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여기서 소통의 기술을 배우고, 삶의 통찰력도 얻었다. 예를 음악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음색과 기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음악에 영혼과 철학을 담아 시대에 따라 스스로 자기 조직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영혼과 철학을 담는 일이, 이승훈의 경우, 1000번 받은 음악을 듣는 것일 게다. 혁신이 여기서 나온다. K-POP이 성공한 것도 서양의 날줄에 자신만의 목소리가 담긴 철학의 씨줄로 끼워 넣어 새로운 테피스트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같은 날줄의 곡을 수 만 번씩 들었을 것이다. 이게 소통의 원리이다. 화자 이전에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청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려면서 자신만의 영혼과 철학을 담기 위해 고독한 시간을 갖고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지름길이라 여기며 걷던 길이 느닷없이 뚝 끊기기도 한다. 길이 막혔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예기치 않은 길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이 나온다. 요즈음 겪는 일이다. 그러나 모호함을 견딜 수 없는 이들일수록 확고하고 단정적인 답을 제시하는 이들에게 매력을 느낀다. 회의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고 단호하게 답을 제시하는 사람을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칭찬하며 추종하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따르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특정한 사람을 숭배에 가까운 감정으로 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세상에는 다름을 용납하려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차이를 무질서와 혼돈으로 보기에, 차이가 해소되지 않으면 불편해 한다. 정신의 무르익음은 차이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MZ 세대들과 소통이 안 되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그들의 처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김기석 목사님이 잘 하고 있다. "청년들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촘촘하게 직조된 사회 그물망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보다는 그 속에서 포획된 것처럼 옴짝달싹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 그 그물망을 찢을 엄두를 내지는 못하기에 비애감은 더 깊어 간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문법 구조 속에 갇혀 살지 말고, 새로운 문법을 만들라는 말은 옳은 말처럼 들리지만 그들이 처한 질곡을 반영하지 못한다."
그래도 필요한 것은 주인 의식을 키우는 일이다. 노인이든, MZ 세대이든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을 내가 주인으로 사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주인의식을 잃게 만드는 사례이다. (1) 오래간만에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좀 하려고 나섰는데 부모님이 "너 요즈음에 공부를 왜 그렇게 게을리 하는 거야? 다른 데로 빠지지 말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 좀 해라." 이렇게 말씀 하시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날 것이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당연히 도서관으로 향하던 걸음을 돌려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2) 오래간만에 집안 청소 좀 하려고 빗자루를 찾고 있는데 부인이 빗자루를 들고 나오면서, "청소 좀 하세요"하고 빗자루를 건넨다.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날 것이다.
주인의식을 말소시켜주는 모든 이야기 속에는 공통의 전제가 들어 있다. 공부든 청소든 일을 시키는 사람은 어른이고 상대는 항상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아이이니 잘 감시하고 '신상필벌'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주인의식은 어떤 과제를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려는 의지를 통해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지는 글은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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