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6월 20일)
1
어제는 우연히 네플릭스로 영화 하나를 보았다. 드라마 영화 <벼랑 끝에 서서(straw)>’였다. 그 영화는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압박에 시달리는 싱글맘이 하루 동안 겪는 절박한 위기를 스릴러 장르로 풀어냈다. 주인공 자니야 윌킨슨 역은 <히든 피겨스>, <엠파이어>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배우 타라지 P. 헨슨(Taraji P. Hanson)이 맡았으며, 타일러 페리(Tyler Perry)가 각본, 연출 그리고 제작을 총괄했다. 영화는 총 105분 러닝타임으로, 하루 만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한 여성의 삶을 조명하였다.
주인공 저나이어는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마트 매니저를 찾았다. 무장 강도와 얽힌 것에 이어 자녀의 과학 발명품을 폭발물로 오인한 은행원의 신고로 테러범 누명까지 쓰게 된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이고, 본질은 조산으로 태어나 약한 몸으로 병원을 자주 오갔던 딸을 혼자 책임져온 싱글 맘 저나이어는 병원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교사가 욕실에서 넘어진 아이의 멍을 보고 아동복지국에 신고한 것을 시작으로, 집주인의 월세 독촉, 공권력으로 협박을 했던 경찰과 밀린 월급을 제때 주지 않은 마트 매니저, 도움보다 절차만 따졌던 은행원으로 저나이어는 의지할 사람 없는 고립으로 내몰려 망가진 것으로, 결국 현실을 비관한 자괴감으로 주인공은 희망을 잃고 벼랑 끝에 내몰린다. 도움을 주려는 노력보다 자신들의 관점으로만 바라본 사람들의 편견과 외면으로, 주인공은 세상과 단절되어 점차 망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영회의 후반부로 가면, 인생은 함께 하는 것이라는 어설프지만 긍정의 메시지를 보낸다. 주인공 저나이어의 모습에서 자신의 엄마를 떠올린 형사 케이를 비롯해 저나이어의 딱한 사정을 듣게 된 은행지점장과 사람들의 응원이 더해지게 되면서, 저나이어가 부정해온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어디에도 의지하지 못하고 망가진 주인공의 내면을 상징했던 은행을 벗어널 수 있었다.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이 있다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저나이어가 변한 것처럼, 우리도 변할 수 있다.
2
이 영화를 본 후, 마야 안젤루 미국 흑인 시인이 소환되었다. 마야 안젤루(Maya Angelou, 1928~2014)는 토니 모리슨, 오프라 윈프리와 함께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이자 인권 운동가이고 시인이다. 이혼한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실어증에 걸렸으나 시 낭송을 하며 자동차 정비공을 전전하다가 자전적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안다>>를 발표해 문학사에 획을 그었다. 시적 묘사와 특유의 입담으로 이 책은 2년 연속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며 전세 계에 번역되었다.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25센트(쿼터·사진) 주화에 모습이 새겨졌다. 동전에는 좌우로 두 팔을 뻗은 채 상공을 응시하는 안젤루의 모습을 담았다. 그녀 뒤로는 쭉 뻗은 두 팔보다 길이가 긴 날개를 가진 새가 날고,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도 형상 화했다. 동전에 새긴 이미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말을 되찾았다. 16세에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식당 조리사, 웨이트리스, 나이트클럽 가수, 자는 안젤루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그녀가 살았던 방식을 상징한다.
나는 배웠다/마야 안젤루
나는 배웠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이 오늘 아무리 안 좋아 보여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내일이면 더 나아진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궂은 날과 잃어버린 가방과 엉킨 크리스마스트리 전구
이 세 가지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당신과 부모와의 관계가 어떠하든
그들이 당신 삶에서 떠나갔을 때
그들을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과
삶을 살아가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삶은 때로 두 번째 기회를 준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양쪽 손에 포수 글러브를 끼고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무엇인가를 다시 던져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열린 마음을 갖고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대개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 고통이 있을 때에도
내가 그 고통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날마다 손을 뻗어 누군가와 접촉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따뜻한 포옹,
혹은 그저 다정히 등을 두드려 주는 것도
좋아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여전히 배워야 할 게 많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 당신이 한 행동은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 가는
결코 잊지 않는다는 것을.
3
낮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주문한 샐러드를 먹으며 영화를 한 편씩 본다. 내 일상의 기쁨이다. 행복한 삶은 일상에 기쁨을 잘 배치하는 데서 출발한다. 나는 '배치 또 배열'이라는 말을 일상의 문법으로 삼고 산다. 삶의 기술(l'ars vitae, the art of life)은 선택과 배치를 통해 예술적으로 다듬고, 그 일상이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게 만드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는 과거의 선택이 쌓인 결과이다. 현재 네 모습이 부족한 이유는 냉정하지만 과거의 내가 부족한 선택을 내렸기 때문이다. 지금 바뀐다고 현재가 달라지지 않는다. 대신 미래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미래를 바꾸려면 지금부터 바꿔야 한다. 단순한 미래가 아니라,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에게 지금 더 많이 투자할수록, 더 많이 잘 선택하고, 그걸 아름답게 배치하고 습관이 되도록 실행할수록 현재의 나는 힘이 더 모아지고, 풍요롭고 강력한 삶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예술’에 해당하는 라틴어 단어 ‘아르스(ars, 그리스어 테크네, 기술)’의 의미가 ‘우주의 질서에 알맞게 만물(萬物)을 정렬시키다'가 되는 것이다. 이 정렬 시키는 일이 '배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을 지배하며, 몇 가지 삶의 규칙을 가지고 '지금-여기'의 삶을 정돈하는 사람은 모두 예술가이다. 그냥 충동적으로, 감각적으로 살면서 무질서한 사람은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가는 시간 있다고 TV만 보거나 잠을 자지 않는다. '저 너머'를 꿈꾼다. 생존만을 위한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이 정렬, 다시 말하면 배열 혹은 배치를 우리는 문법이라고 한다. 이 문법을 그리스어는 '그라마(gramma)'라 한다.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카드모스(Cadmos)라는 페니키아인이 그리스에 최초로 알파벳을 전달했다고 기록한다. 그는 이 페니키아 문자를 ‘그라마티케 테크네(grammatike tekhne)'라고 표현하였다. 이 말의 의미는 ‘글자를 배치하는 기술’이라는 뜻이다. ‘그람마’란 단순히 단어들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그 단어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기술이다. 그런 배치에는 순서가 있고 강조를 위한 침묵의 공간도 있어야 한다. '그람마'란 최적의 배열이다. 그래야 그 문장이 감동적이며 아름답다. 고대 그리스에서 새로운 언어의 체계를 ‘그람마(gramma)’ 라고 불렀고, 그걸 동양에서는 '문법'이라고 한다. '문법'은 어떤 언어가 소통의 수단이 되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갈고 닦은 원칙이다. 문법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그 언어만의 내공이며 무늬다. 단어들은 문법을 통해 언어로 완성되어 우리에게 ‘희노애락’이라는 감정을 전달한다. 나는 내 삶의 문법이 있는가? 그리고 ‘아르테스(artes)’는 ‘최선, 예술, 기술’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르스(ars)'의 복수형이다. ‘아르스’는 하찮아서 잘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솜씨 있게 엮어내는 기술이다. 마치 그 솜씨가 어머니가 담근 김장 김치 맛처럼, '아르스'는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경험이 만들어준 최적화된 간결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실패라는 경험들이 굴복하지 않는 의지와 결합할 때, 슬그머니 나오는 감동이다. L'ars viate를 우리는 '삶의 예술'이라 말하지만, 더 쉽게 와 닿는 해석은 "삶의 문법"이다. 특히 최근에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노년은 수렴하고 비우는 시기라는 생각이다. 그런 문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 문법을 아는 사람이 예술가이다.
4
좋은 삶을 위한 '일상의 배치'로 칸트는 다음 5 가지를 말하면서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시간 관리법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규칙적인 일과: 칸트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산책하고, 같은 시간에 연구했다. 루틴은 생산성을 높이고 정신적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돕는다.
▪ 단순한 생활: 단순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추구한다. 쓸데 없는 일이나 복잡한 일을 벌이지 않고 생활을 단순하게 유지하며 연구에 매진한다. 중요한 일에 집중하려면 불필요한 일을 덜어내야 한다.
▪ 꾸준히 배우고 사유: 매일 일정 시간 동안 공부에 몰두하는 습관을 유지했다. 이러한 시간 덕분에 그는 자신만의 철학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 자기 절제: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절제된 생활을 실천했다. 김정 기복에 흔들리지 않고,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 노력했다. 목표에 집중하려면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 성찰하는 시간: 하루를 마무리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계획대로 일과가 이루어졌는지, 어떤 점에서 개선할 수 있을지 확인했다. 성찰은 더 나은 일상을 설게 하도록 돕는다.
5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판단하지 않으며 내 삶에 대해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 말하든 그것은 내 삶이기 때문에 타인의 말은 내게 의미가 없다. 내가 무엇을 얻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매일 하는 일에 나만의 의식을 더한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산다. 아침에 만난 문장이다. <인문 일지>를 쓰며 보내는, 지적 활동은 개인이 고통으로부터 피신하고 성찰 할 수 있게 해주는 인간의 핵심, 즉 내면의 삶을 길러낸다. 배우고, 알아가고, 연구하고, 관조 하는 삶이 중요하다. “지적인 삶은 고통으로부터 도피처가 되어주고, 개인의 존엄을 상기시키며, 통찰과 이해의 원천이자 인간의 열망이 자라나는 정원이다. 지적인 삶은 벽의 움푹 파인 공간과 같아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눈앞의 논쟁에서 잠시나마 한 발짝 물러나 시야를 넓히고, 자신이 상속받은 보편 인류의 유산을 기억해낼 수 있다. 이 모든 사실로 미루어볼 때, 배움은 유일한 미덕은 아니더라도 핵심 미덕인 것이 분명하다.”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제나 히츠 지음, 박다솜 옮김)
그리고 못 가진 것에 부러워하지 않고,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산다. 나 스스로 행운을 만들기로 마음먹으며 산다. 지금껏 내가 이룬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것에 감사해 한다. 건강, 딸의 사랑, 나 자신의 재능에 고마워한다. 그러면 불행에 괴로워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자신에게 찾아오는 행운의 분명한 유형을 알게 되고 더 많은 행운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고 거기에 주력하게 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면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한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게 된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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