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모르니 멍청하다’가 아니라, 모르니 알고 싶다'는 말로 말이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어제 <우리마을대학>이 주관하는 <신성 우리마을 토요학교> 2주차 강의와 1인가구를 위한 반려식물 만들기 프로젝트 토요 클래스가 있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우리마을 4대학(차 문화 티 소믈리에)의 <오후사이>에서 "차曲차曲 음악회"(LP로 듣는 그리스 음악 편)를 가졌다. 충만한 하루였다. 하리스 알렉시우(Haris Alexiou)의 <파토마(Patoma)>를 공유한다.
https://youtu.be/JaArlOKlVIM


우리마을대학은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 시대에 꼭 필요하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과거의 말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100세 시대를 맞아 직업을 5~6가지 가지게 될 것이란 미래학자들의 예견은 이제 현실이다. 우리는 이제 'N 잡러' 시대라 한다.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성’이 이 시대의 경쟁력이라 했다. 예측 불가능한 현재를 적확하게 정의한 것이다. 코로나-19가 촉발한 변화 속도에서 우리는 ‘물만큼’ 유연해져야 생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모른다’는 말을 이렇게 자주 하게 될 줄 몰랐다. ‘모른다’는 말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모르니 멍청하다’가 아니라, 모르니 알고 싶다'는 말로 말이다. 숭산 스님도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말미에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말을 쓰곤 했다. 이제 ‘일한다’는 ‘배운다’는 말과 동의어다. 예측이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 그래 주말이면, 새로운 세계를 배우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쏟아야 한다. 그래 준비한 것이 우리마을 대학의 <토요학교>이다. 보람차다.

그래 요즈음 나는 늙는다는 것을 잘 모른다. 늙는다는 것에 초연해서 그럴까? 그냥 하루를 살기 때문이다. 오늘만 그리고 지금-여기에서만 살겠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쉽게 바뀌고 편안해 질 수 있다.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 내일이 없으니 오늘 있는 힘을 다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때 나를 옭아매던 어떤 한계에 갇힐 이유가 없다는 생각과 감정을 다시 갖는 것이다. 그러면 훨씬 자유롭고, 일상이 귀찮지않다. 실제적으로는 가끔 게으름 피우고 싶은 마음을 각성하게 하게 한다. 그리고 어떤 상대가 나를 괴롭히면 내일은 내가 없을 테니 그가 원하는 대로 다 받아주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 편안하다.

이럴 때일 수록 체력을 위한 운동을 해야 한다. 누가 말했다. 체력이 떨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주름이 생기고, 머리가 빠지는 것이 낫다고. 그래 그는 피부나 두피 관리보다 운동이 백 배 더 중요하다고. 나이가 들수록 운동을 해 체력을 키우는 일이 세월을 이겨내는 일이다. 김영식이라는 분의 페북 글을 여러 편 읽었다. 거기서 만난 사자성어, "좌탈입망(座脫立亡)"이 한 주간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네이버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단정(端正)히 앉아서 해탈하고, 꼿꼿이 서서 열반(涅槃)함" 두 개의 키워드가 있다. '단정'과 '열반'이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한 최고의 경지인 열반으로 본다. 이는 죽음마저도 마음대로 다룬다는 것이다.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리고 ' 단정하려면, 체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늘 운동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법력이 높은 고승들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인물인 헤라클레스도 그냥 죽음을 기다리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웰-다잉(Well-dying)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헤라클레스는 장작더미에 올라 불타 죽는 것으로 '떠밀리는' 죽음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헤라클레스는 장작을 쌓게 하고는 몸소 직접 그 위로 올라가서 이렇게 말한다. “이 장작더미 밑에는 내가 쌓아 놓은 불쏘시개가 있다. 그러나 내가 그대들에게 불질러줄 것을 청하여도, 그대들은 불을 지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나를 모르는 사람이 이곳을 지나게 되면, 내가 쓰던 이 활을 주고, 그 대가로 불을 질러 달라고 부탁해라.” 한 이방인이 나타나자, 신관들이 헤라클레스의 뜻을 전하자, 헤라클레스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별 어려움 없이 불방망이를 장작더미 밑에 던지고, 헤라클레스의 활을 받아 가지고 사라졌다. 올림포스 신들은 헤라클레스가 땅 위의 삶을 마감하는 광경을 슬프게 내려 보고 있었다. 그 때,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올림포스로 불러들인다.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죽지 않는 신이 되어 올림포스로 올라 간 영웅이 된다.

물론, 망치에 구부러지는 못처럼, 인생은 세월에 구부러져 간다. 몸으로 쿵쿵 세상을 울리는 일은 힘든 노릇이다. 세월을 두드리며 세월에 구부러져가는 생이지만, 바라는 것이 없고, 두렵지 않다. 그래 자유다.

못을 박으며/고창환

몸으로 세월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온몸을 다해서 구부러지기도 하며
쿵쿵 세상을 울리는 일은

녹슬어 가는 지난 세월을 두드리다 보면
만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보통의 사람들은 신체의 장기들이 망가져서 절명하는 것을 죽음이라고 여기지만 저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만 생계가 가능하거나, 맑은 의식이 유지되지 않는 것을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주의 역사 또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한 사람의 인생은 찰나입니다. 그 찰나의 삶에서 10-20년을 더 산다고 하여 별 다르지 않습니다."(김영식)

"사람의 의식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서, 무의식과 섬망의 힘에 좀비가 되거나, 의식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면", 더 살 필요는 없다. 더 남아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미련한 집착이거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다. 참고로 섬망(譫忘)은 '헛소리 섬, 망령될 망'이라는 뜻의 한자로 이뤄진 말이다. 일시적으로 매우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혼란한 정신상태를 일컫는다. 의식과 지남력(指南力, 날짜, 장소, 사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기복을 주된 특장으로 하는 질환이다. 지남력이란 현재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능력을 말한다. 올바른 지남력을 갖기 위해서는 의식, 사고력, 판단력, 기억력, 주의력 등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때가 되어, '좌탈입망'하면, 김영식의 상상처럼, 모든 일이 끝났다는 환희심을 나도 볼 수 있도록 수련을 할 생각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끈질기게 달라 붙는 삼겹살의 고기 냄새를 떨쳐내는 환희를 맛보도록 수련할 생각이다. 의식이 빛나고 있을 때. 수련은 우리를 어떤 생각에도 쫄지 않게 하는 것이다. 쫄지 않으면 하공에도 발을 뻗을 수 있다. 그게 자유이다.

또 하나의 기억하고 싶은 문장. "인체의 70%는 물로 구성되어 있는 데다가 대략 6리터의 허파 공간이 있고 아무리 숨을 내뱉어도 1 리터 이상의 공기가 폐에 남아서 사람의 몸이 물 속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부력으로 작용합니다." 난 이 사실을 알고도 물에 들어가지 못한다. 물에 던져지면 몸이 경직되거나 웅크려서 얼굴이 물에 잠기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안다고 바로 물에 뜨는 것이 아니다. 이것도 훈련을 해야 한다.

수련도 마찬가지이다. 이 현상계가 생각으로 만들어진 세계이고, 실존적인 주체로써의 '나'는 착각이며, 모든 사물과 사건들은 질서 정연한 연기의 법칙이 저절로 진행되는 과정임을 체득하는 일이 수련이다. 이 수련은 무아와 연기라는 이론을 몸에 베게 하는 훈련이 아니라, 내려놓아 보는 것이다. 생각, '나', 살고 죽는 마음 등을 놓아 보는 일이다.

이어지는 글은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으로 옮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디지털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고창환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