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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거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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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16일)

오늘로 마티아스 뇔케의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이야기를 마친다. 맨 마지막 장의 제목이 '드러내지 않아도 빛나는 현명한 삶의 방식'이다. 절제된 표현은 한마디로 '태연할 수 있는 용기'라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해질 수 있다는 것은 어렵고 두려운 순간을 좀 더 수월하게 견디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자성어들 중에 태연자약(泰然自若)을 좋아한다.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여리게 피어 있는 풀꽃들은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태연자약(泰然自若) 하다. 이 꽃은 스스로에게 몰입(沒入)하여 만족하고 있다. 누구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초연(超然)하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에게 할당된 땅의 한 구석에 뿌리를 내려, 자연이 주는 공기, 햇빛 그리고 이슬로 떳떳하게 자기 변화를 하고, 핀 것이다. 이 꽃은 그저 핀 것이다. 이 꽃은 자신이 아름다운지 모른다. 왜 피었냐고 물으면 답이 없다. 그런 실없는 질문을 받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란 시간의 흐름에 알맞게 자신에게 몰입할 때 슬그머니 나오는 아우라이기 때문이다.

태연자약한 절제된 표현으로 절제된  유머가 있다. 그건 공포나 두려움, 당혹감의 순간을 웃음으로 받아들이게 해준다. 도저히 평정심을 갖기 어려울 것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가 과장된 평정심을 보일 때 코미디가 되는 것이다. 이 코미디가 보여주는 태연함은 어렵고 두려운 순간을 좀 더 수월하게 견디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준다.

여러 연구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농담을 할 때보다 암시와 공감을 통해 연결될 때 더 자주, 그리고 진실하게 웃는다. 그 자체로 웃기거나 재미있는 일보다 사람들과 어떤 것을 함께 느낄 때 더 의미 있는 유쾌함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절제된 유머로 이루어진 과소표현은 어떤 사안에 대해 내적인 거리감을 확보하는 태도가 된다. 최소한의 표현을 함으로써 긴장을 풀고 일종의 놀이를 하듯 편안하게 해당 주제에 접근한다. 과소표현은 말하는 사람의 부담을 낮춰주고 더 쉽게 이야기 나누도록 해준다. 이런 절제된 표현의 과소 표현은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재미있으면서도 쉽게 쓰는 것, 독자를 가르치고자 하는 과도한 열정을 버리는 거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서도 적절한 겸손으로 표현된 담백한 스타일, 이것이 바로 고소 표현의 미학이 아닐까?

그리고 셀프 아이러니의 유머도 있다. 자신의 약점 혹은 부족한 점을 소재로 삼고 이를 낮춰서 표현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오물을 끼얹는 행위와 비슷하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호해 주게 되어 있다. 반대로 스스로를 띄우면서 좋은 점만 잔뜩 늘어놓는 것은 따분하고 지루할 뿐더러 낯간지럽기까지 하다.

이번에는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관계 기술 이야기를 좀 해 본다. 모든 관계는, 상대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심지어 요구하지만 그것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본인만 상처받았다고 느끼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이다. 나와 상대가 서로를 얼마나 다르게 이해하는지 알면 우리는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 나는 늘 상대를 위해 시간을 내주었고 노력했으며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내가 거절했던 몇 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경우였고, 그럴 수밖에서 없었던 이유가 항상 있었다고 생각한다.
- 반면에 상대는 그런 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감정만 앞세우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과거에 자주 거절한 건 기억도 못한다고 탓한다.

대부분의 관계가 그렇다. 모든 사건은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준다. 모든 사건이 한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었던 반면에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은 일로 보일 수 있다. 게다가 내가 하는 행동에는 늘 합당한 이유가 있다. 특히 뭔 가가 잘못되거나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그건 외적인 요인 때문이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상대의 행동은 전부 특정한 의도가 있다고 여긴다. 그럴만한 사정이나 이유가 있어 서가 아니라 일부러 나쁜 마음으로 혹은 알면서도 무성의하게 그렇게 행동한 걸고 단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 자신은 지극히 정상인데, 상대는 그렇지 않다고 결론 내리고 기뿐 나쁘게 받아들이게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거다. 상대가 나를 위해 이러저러한 일을 해주기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흔히 상대에 대한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건 상대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 서가 아니라 나의 기대감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기대감 대신 양보하는 마음에 바탕을 둔다면 실망보다 감사할 일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친구의 고통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데는 정말 훌륭한 천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가 성공을 거두었을 때 이를 가장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안타깝게도 친구일 때가 많다. 왜냐하면 나와 가장 대등한 존재이자 가까이에서 때로는 본보기가 되고, 때로는 비교 대상이 되는 존재가 바로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자랑을 떠벌리는 것은 좋지 않다. 친구가 늘 곁에 존재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친구보다 더 낫다는 인상을 절대 풍기지 않는 것이다. 우정 같은 눈높이에서 더 깊어진다. 서로 다를 수는 있지만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 취미나 공통된 관심사, 비슷한 환경 혹은 과거의 경험 등이 여기에 속한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탁구시합을 하는 친구가 있다. 이기고 지는 것은 관심 없다. 함께 땀을 흘리고, 저녁에 술 마시며 맛있는 저녁을 함께 하고 헤어진다. 한 번은 대전에서, 한 번은 천안에서 모인다. 어제는 대전 경기였다. 그렇게 늙어 간다.

쓸모없는 친구/김광규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무슨 용건이 있어서
만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빚 갚을 돈을 빌려 주지도 못하고
승진 몇 전보에 도움이 되지도 못하고
아들 딸 취직을 시켜 주지도 못하고
오래 사귀어 보았자 내가
별로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는 오래 전에 눈치챘을 터이다
만나면 그저 반가울 뿐
서로가 별로 쓸모없는 친구로
어느새 마흔다섯 해 우리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신을 친구와 연결해 주는 것, 관계를 지탱해 주는 것에 절대 우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내가 더 잘 아는 분야가 있을 수 있고, 내가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지만, 그게 중요해서는 안 된다. 달리 말하면, 그렇더라도 겸손해야 한다. 겸손이 자신과 친구를 같은 눈높이에 머물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내 능력을 특별히 증명해 보일 필요 없이 동등하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 우정으로부터 얻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는데, "가장 안정적인 우정은 젊은 시절에 만난 친구"(아돌프 크니케)이다. 어릴 때 만난 친구와 나를 연결해 주는 것은 공유한 과거의 경험과 오래 알고 지낸 시간이다. 사람은 묵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가깝게 사귄 벗을 우리는 친구(親舊)라 한다. 친(親)은 친할 친이고, 구(舊)는 예부터 친하게 지내온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말로는 '벗'이라 한다. 한자어로는 붕(朋)이라는 말이 있는데, '함께 공부한 벗'을 말한다. 반면 우(友)는 뜻을 함께 하는 동지(同志)로 붕 이외의 친구를 말한다.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보다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다. 아픈 이야기 힘든 이야기들을 허물 없이 그리고 서슴없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친구, 이런 이야기나 저런 이야기 그리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친구, 나의 속내를 가식없이 들어내도 괜찮은 편안한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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