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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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5월 26일)
겸손은 다른 사람에게 매우 친화적인 태도이며,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긴장하지 않는 자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달성하기 힘든 계획을 주변에 말하거나 알리지 않는 거다. 미래에 대한 목표는 순간적으로 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머릿속으로 이미 성공을 한 사람들은 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겸손이라는 미덕을 가진 사람은 거의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 목표를 선택한다. 그리고 나서 그 목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실제로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웬만하면 그 목표에 대해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나도 배울 일이다. 그동안 너무 떠벌렸던 아픈 기억들이 있다.
성공을 위해 과도한 목표를 바라보며 달리는 사람은 충만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 오히려 삶을 살면서 기진맥진해 버리기 쉽다. 그래서 겸손하게 사람을 사는 사람은 외적인 성공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는다. 한 인간의 가치는 성공과 목표로 측정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 가신 고려 후기 고승인 나옹 선사의 시를 공유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 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 놓고 욕심도 벗어 놓고 강같이 구름 같이 말없이 가라 하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이 말은 불필요한 말을 삼가라는 거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비우라는 말은 꼭 필요한 것만 담겠다고 다짐하라는 말로 들린다.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이 말은 맞서지 말라는 말로 읽는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 않고, 덧없이 살라는 말은 남에게 상처주는 일 없도록 하라는 말로 들린다.
항상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과 관련된 일이나 성취에 대해 실제보다 낮춰서 말하는 것이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이다. 그것은 구구절절 하소연하거나 투덜거리나 푸념하지 않는 거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삶의 모토로 다음 두 가지를 실천하려고 다짐을 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 잘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늘 부터라도 대신 말을 아낄 생각이다.
▪ 세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투덜거리거나 푸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행복을 주는 관계 만들기에 주력하자.
그러려면, 피해의식을 버려야 한다. 그 피해의식은 차별 받는다고 생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다름이 피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다름이 다양성으로 존재하여 그 조직을 더 생기 있게 한다고 믿어야 한다. 다양성은 서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만들어 더 경쟁력 있게 만든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다."(<<불편한 편의점>>) 소통은 마음을 나누는 거다. 그러려면 내가 불편해야 한다. 내가 불편함을 감수하고 손님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거다. 나 외의 모든 타자는 손님이다. 가족도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이다. 상대를 손님으로 대하면 서로 상처 주는 일은 없다. 그 손님으로 대하는 것이 소통의 첫 번째 기술이다. 좋은 매너는 자신의 불편을 자초(自招)하는 일이다. 이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는 일, 잘 사는 방법은 스스로 불편을 자초하는 일과 같다. 그래서 다양한 수행의 모든 과정은 사실 '불편'한 것들로 짜여 있다. 편하고 자극적인 기능에 갇히지 않고, '불편'의 상태를 자초하면서 성숙은 시작된다. 오늘도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더 불편한 하루를 살고 싶다.
▪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하소연 하지 않는다.
하소연이란 나의 억울한 일이나 잘못된 일, 딱한 사정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한테 하소연 하는 것은 만나는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차리리 침묵하자. 일보다 투덜대거나 하소연을 들어주는 데, 에너지를 사용하면 그만큼 일하는 데 에너지를 덜 쓰게 된다. 사람 사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잘 배분하는 일이다. 쓸데 없는 곳에 자기 자신의 에너지를 쓰는 것이야 괜찮지만, 내 하소연이나 투덜거림으로 상대의 에너지를 빼앗는 것은 잘못이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상 만사는 다 양면성이 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그러니 그걸로 인해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 또 무언가를 얻었을 때는 '이걸로 인해 잃을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질문해 보는 것도 좋다. 그럼 시선이 높아지고, 거기서 시선이 높아지면, 시야를 다양하게 바꾸어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나는 늘 평온하면서도 겸손하며 강인하고 재치 있는 나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뭔가 성공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놀라운 성과를 냈거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을 때도,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를 가진 사람은 스스로를 낮추며 자신이 이룬 성과는 결코 자신이 대단해 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겸손한 사람들에게 그런 태도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동기와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라고 저자(마티아스 뉠케)는 말한다.
1. 예의 문제와 연관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상대가 불편함을 느끼거나 부족함을 느끼는 걸 원치 않는다. 때문에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상대가 편안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또한 늘 상대와 같은 눈높이에서 말하려 한다. 자신의 불행에 대해 구구절절 얘기하거나 자신의 운명이 얼마나 가혹한지 한탄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늘 중심에 두고 생각할 뿐 다른 사람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하다. 그래 그런 사람과 대화를 하려면 불편하다.
2. 알 사람은 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춘 표현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를 '낮춰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거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춰서 표현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진실을 이해할 수 있다. 모두가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동시에 만일 상대가 자신의 성과, 의미, 가치를 낮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이는 상대뿐 아니라 자신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3. 겸손은 독립되어 있다는 표시라는 말이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최고라는 평가를 수집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잘 가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인의 평가가 마음에 든다면 그건 마음 속에 품고 있을 뿐,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겸손함은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인 동시에 자의식을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인 것이다.
오늘은 시 대신에 언젠가 노트에 적어 두었던 글을 공유한다. 화장실에 붙은 교훈 처럼 진부한 것 같지만, 한 번쯤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작자 미상이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이다.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고,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입니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습니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합니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입니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삽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습니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릅니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는 누구나 모릅니다.
지옥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 미워하면 됩니다.
천국 만드는 방법도 간단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 사랑하면 됩니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됩니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합니다.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합니다.
상처를 지킬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합니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입니다.
산고를 겪어야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고,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옵니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 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 지고,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 집니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일 겁니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관련 그림은 블로그에서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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