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내가 아는 곡인무영 스님의 담벼락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만났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어" "대신 … 애써 해", 콩나물을 다듬으시면서 할머니가 하신 말이라 한다. 그래 실 같은 봄비가 내리는 한적한 월요일 오후였던 어제, 나는 황산벌에 있는 선배님의 별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각자 와인을 한 병 씩 가지고 와, 주님을 모셨다. 밭둑의 검은 비닐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귀를 간지럽게 했다. 황산벌은 논산시 연산면 산양리 일대이다. 영험한 계룡산 줄기가 연이어 둘러싸고 있다 하여 연산(連山)이라 부른다. 우리는 봄비를 '먼지잼' 또는 '는개비'라 부른다. 겨우 먼지가 날리지 않을 정도의 비라는 표현이다. 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라는 뜻이다. 함께 하신 교수님은 한시를 두 개나 읊으셨다.
중국 당시인인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 "반가운 비가 시절을 알아(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봄이 되니 내리네(當春乃發生, 당춤내발생)/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만물을 적셔주며 아무런 소리도 없네(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 우리는 "윤물(潤物)하며, 세무성(細無聲)하는 봄비의 모습을 느껴보았다. 비가 너무 가늘어 소리가 없는 듯하지만 귀를 간지르며 들려왔다. 봄비의 특징이다. 만물을 적시되 소리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세상에 생명수를 주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는 것을 우리는 봄비로부터 배워야 한다.
계룡산 줄기가 이어지는 연산들은 안개 모자를 쓰고 위엄(威嚴)하게 우리들을 굽어 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해동공자 최충의 시를 이어 하 편 더 읊으셨다. "뜰에 달빛 가득하다 촛불 켜지 마라(滿庭月色無煙燭,만정월색무연촉)/자리에 산경치 들어오니 손님 청하지 마라(入座山光不速賓, 입좌산광불속빈)/거기에다 솔 거문고 멋대로 타니(更有松弦彈外譜,경유송현탄외보)/내가 누리는 이 소중함 남에게 알릴 일 없네(只堪珍重未傳人, 지감진중미전인)"
봄비 이야기를 좀 더 해본다. 봄비는 봄철에 오는 비이지만, 특히 조용히 가늘게 오는 비를 말한다. 빗방울의 크기는 온도와 습도에 좌우된다고 한다. 기온과 습도가 높은 여름에 내리는 장대 비와 달리 봄비는 새순을 촉촉하게 적시는 보슬비로 주로 내린다. 빗방울 크기가 작다 보니 땅으로 떨어지는 속도도 느려지면서 소리도 거의 나지 않는 것이다. 농사를 중시했던 우리들에게 봄비는 아주 귀한 손님이었다. 몇 가지 봄비와 관련된 속담들을 나열해 본다. (1) 봄비는 쌀 비이다. 건기인 봄철에 비가 넉넉히 오면 그 해 벼농사 짓는데 수월하여 풍년이 든다는 뜻이다. (2) 봄비가 많이 오면 아낙네 손이 커진다. 봄에 비가 많이 오면 풍년이 들게 되므로 씀씀이가 커지고, 특히 아낙네들도 헤프게 쓴다는 뜻이다. (3) 봄비는 일 비이고, 여름 비는 잠 비고, 가을비는 떡 비고, 겨울비는 술 비이다. 봄에는 비가 와도 들 일을 해야 하고, 여름에는 비교적 농한기 이므로 비가 오면 낮잠을 자게 되고, 가을비는 햅쌀로 떡을 해먹으며 쉬고, 겨울에는 술을 먹고 즐긴다는 뜻이다. (4) 새싹을 기르는 봄비는 꽃들의 부모라고 한다. (5) ‘볼열갈결’(사계절)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 같은 것이다. 봄비는 볼비이다. 봄비에 만물이 잘 보이고, 열비에 튼실한 열매 열리고, 갈비에 나뭇잎 보내고, 졸가리 훤한 나목에 결비 내린다. 친구 김래호에게 배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무 시인은 <봄비>를 공유한다.
봄비/이재무
1
봄비의 혀가
초록의 몸에 불을 지른다
보라, 젖을수록
깊게 불타는 초록의 환희
봄비의 혀가
아직, 잠에 혼곤한
초록을 충동질 한다
빗 속을 걷는
젊은 여인의 등허리에
허연 김 솟아오른다
2
사랑의 모든 기억을 데리고 강가로 가다오
그리하여 거기 하류의 겸손 앞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게 해다오
살 속에 박힌 추억이 떨고 있다
어떤 개인 날 등 보이며 떠나는 과거의 옷자락이
보일 때까지 봄비여,
내 낡은 신발이 남긴 죄의 발자국 지워다오
3
나를 살다간 이여, 그러면 안녕,
그대 위해 쓴 눈물 대신 묘목을 심는다
이 나무가 곧게 자라서
세상 속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가지마다 그리움의
이파리 파랗게 반짝이고
한 가지에서 또 한 가지에로
새들이 넘나들며 울고
벌레들 불러들여 집과 밥을 베풀고
꾸중 들어 저녁밥 거른 아이의 쉼터가 되고
내 생의 사잇길 봄비에 지는 꽃잎으로
봄비는, 이 하염없는 추회
둥근 열매로 익어간다면
나를 떠나간 이여, 그러면 그대는 이미
내 안에 돌아와 웃고 있는 것이다
늦도록 봄비 싸돌아 다닌 뒤
내 뜰로 돌아와 내 오랜 기다림의 묘목 심는다
오늘이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있은 지 41주년이 되는 해이다. 내가 대학교 3학년 때이니.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다. 올해 기념식 슬로건은 "오월, 시대와 눈 맞추다, 세대와 발 맞추다"이다. 불평등과 양극화, 팬데믹 등 시대와 눈맞춘 오월 정신으로 위기를 타개하고 다양한 세대와의 조화를 추구하고 발맞춰 오월 정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41년 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아픈 역사가 시공간을 넘어 군부의 쿠데타에 저항하며 미얀마에서 재현되고 있다. 나는 5,18 기념일을 맞아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고 미얀마 시위에 대해 지지를 보낸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노래를 바친다.
이젠 황산벌 이야기를 좀 한다. 선배님 별장이 있는 곳이 옛날 황산벌이다. 그 별장에는 선배님의 성품 답게 잘 정리된 텃밭과 정원이 함께 자리했다. 정원에는 온갖 봄꽃들이 시기하지 않고 자기 모습들을 뽐내고, 이곳 저곳에 말로만 듣던 나무들이 여러 종류였다. <인문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그 향기가 몸에서 나올 정도이다.
황산벌 전투를 좀 그려본다. 김유신은 신라군을 이끌고 백제 사비성(현재 부여) 향하여 진격하였다. 지금 추정하는 것으로는 남천정(지금의 이천)까지 무열왕을 수행한 김유신은 다시 남하하여 삼년산성(지금의 보은)을 경유하여 지금의 옥천-대전-두마 지역을 거쳐 백제의 심장부로 들어갔을 것으로 본다. 백제의 최후 방어 요충지라 할 수 있었던 탄현은 대략 지금의 대전과 옥천의 경계에 있는 마도령(馬道嶺)으로 본다. 다행히 별다른 충돌 없이 탄현을 지난 신라군은 황산벌에 도착하였다. 이 황산벌이 어제 오후를 지낸 선배님 별장이 있는 충남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와 신암리 일대의 너른 들판이라고 본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블로그로 옮긴다.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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