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7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5월 11일)
1
어제 오후에는 약하게 비가 내리는데, 나의 채마밭에 다녀왔다. 오늘 아침 사진은 그 길에서 만난 아카시아 꽃들이다. 하나는 하얀 색, 다른 하나는 옅은 분홍색이다. 입하 절기에는 대부분의 꽃들이 하얀 색인데, 특이하게 분홍 빛 아카시아 꽃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분홍빛 아카시아는 향이 없고, 낮은 곳에도 꽃들이 매달려 있다. 그러나 하얀 아카시아는 향기가 좋고 높이 매달려 있다. 세상 다 공평하다. 주말 농장 가는 길의 식물들과 꽃들은 정말 다양하다. 그런데 절묘하게 공생한다. 아침 뉴스를 보니, 인간들 만이 서로 죽이는 경쟁에 다들 죽어가는 모습들이다. 언젠가 배연국의 글에서 적어 둔 것이 생각나 다시 불러온다.
그에 의하면, 생명체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했다. 포식(捕食), 기생(寄生), 경쟁(競爭), 공생(共生)이 그것이다. 포식과 기생은 상대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기 이득을 취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필연적으로 타자의 반격을 부를 수밖에 없다. 포식을 생존 수단으로 삼는 호랑이나 늑대가 멸종위기에 처하고, 기생의 대표 격인 칡덩굴이 인간의 손에 의해 제거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자원이 유한한 환경에서 생명체들은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모두에게 해가 된다. 공생이 완전히 배제된 파멸적 경쟁은 종의 번성에 기여하기는 커녕 쇠락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성공적인 생존전략은 공생이라고 할 수 있다. 어젯밤에 떨어져 나간 몇몇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벼, 밀, 옥수수, 과일, 가축 등이 지구상에 번성한 것도 공생 전략을 생존 수단으로 삼은 덕분이다. 인간은 이들에게 열매와 고기 등을 얻는 대가로 이들이 서식할 환경을 마련해준다. 식물들이 곤충들에게 꿀을 주고 곤충들이 꽃가루를 옮기는 것 역시 공생원칙에 충실히 따른 행동이다. 식물들은 생존을 위해 동물과의 동맹도 불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었다.
▪ 서부옥수수잎벌레가 옥수수 뿌리에 알을 낳으면 옥수수는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뿌리에서 가스를 방출하는 방식으로 비상 사이렌을 울린다. 주변에 있던 미세한 선충들이 이 가스 냄새를 맡고 옥수수에게 달려간다. 선충들은 애벌레의 입과 기공으로 침투해 체액을 빨아먹는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생존전략이다.
▪ 북아메리카 ‘가짜 아카시아’와 ‘사탄 개미’의 공생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아카시아는 개미에게 주거 공간과 달콤한 식량을 공급한다. 개미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초식동물이 아카시아 잎을 뜯어 먹으면 입으로 물고 독침을 쏜다. 아카시아가 두둑한 보수와 집을 개미에게 제공하고 용병으로 부리는 셈이다.
▪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의 세포 내에서도 똑같은 전략이 동원된다. 15억년 전 세균이 생명체의 세포에 침투했다. 생명체는 침입자를 죽이는 대신에 세포 내에 주거 공간과 식량을 제공했다. 세균은 그 대가로 체내의 영양분을 에너지로 만드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 세균이 바로 미토콘드리아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외부의 침입자이므로 세포의 유전자와 완전히 다르다. 인간의 몸에는 이런 미토콘드리아가 10경 개나 살고 있다. 미토콘드리아와의 공생이 없다면 인간은 한순간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공생은 생명 활동의 기본 원리이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오늘의 인간은 타자를 해치는 일에 진력한다. 진화 원리를 거스르는 역진화적 생존전략이다.
2
이젠 어제에 이어, '철학이 깊을수록 삶은 단순하다'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기쁠 때 들뜨지 않고, 슬플 때 무너지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늘 마음 안에 고요한 중심, 자신 만의 철학들을 갖고 있어, 바람이 불어도 뿌리 깊은 나무는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중심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철학들을 깊게 만드는 거다. 그러면 마음의 근육이 키워진다. 그런 차원에서 동양에서 전해 내려오는 '6 가지 마음 회복력'을 살펴본다. 우연히 페이스북의 광고에서 얻은 6 가지 이다. 늘 고민하던 것들인데, 정리가 된다. 그래 연속해서 생각들을 정리하고 공유한다. 사실 우리들의 삶이 흔들리는 이유는 삶을 지탱하는 그러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1) 무위(無爲): 힘을 빼야 흐른다.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게 두는 것이다. 무위는 게으름이 아니다. 조용히 자기 흐름을 지키는 방식이다. 무리하지 않고, 억지로, 일부러 일상을 흐르게 하지 않는 거다.
(2) 정려(靜廬): 고요한 집중을 하곤 한다. 말없이, 깊이 생각하곤 하는 명상이다. 몸을 멈추고 마음이 뚜렷해 지는 순간의 고요함을 갖곤 한다.
(3) 지족(知足): 충분함을 아는 지혜이다. 더 갖기 보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는 거다. '이러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지족하는 거다.
(4) 양기(養氣): 기운을 보존하는 기술이다. 말을 줄이고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다. 과한 인간관계를 다이어트 하고, 불필요한 감정 소비 대신 기(氣, 에너지)를 내 안에 고요히 모으는 시간을 갖는다.
(5) 중용(中庸): 기울지 않기 위한 태도이다. 극단적인 것을 피하고 균형을 지키는 삶을 추구하는 거다.
(6) 안신입명(安身立命): 내 삶의 자리를 받아들이는 힘을 기른다. 몸을 편히 두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가 내 인생이라면 그걸 수용하는 용기를 갖는 거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냥 버티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거다.
이 6가지 철학을 좀 더 깊게 사유 해보고, 공유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3) 지족(知足)에 대해 성찰한다.
3
<럭키 루이>라는 시트콤에 아빠와 어린 딸의 대화가 나온다. “왜 걔는 갖고 나는 못 갖죠? 이건 공평하지 않아요”라고 투정하는 어린 딸에게 아빠는 말한다. “항상 다른 사람과 같은 것을 가지진 못해.” 아빠는 그러면서 “잘 들어. 네 이웃의 그릇을 쳐다볼 오직 한 가지 이유는 그 사람이 부족하지는 않나 확인할 때밖에 없어. 네가 네 이웃만큼 가졌나 확인하려고 그의 그릇을 보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한다. 면도날은 날카롭지만 나무를 자를 수 없고, 도끼날은 강하지만 수염을 자를 수 없다. 누구나 각자의 특성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기에 상대를 깎아 내리는 어리석음보다는 높여주고 가치를 인정할 때 나도 발전한다. 우리는 이웃의 그릇과 나의 그릇을 비교할 때가 있다. 비교가 우리에게 남기는 건 두 가지다. 내가 남보다 더 가졌다는 생각에 교만해지거나 내가 남보다 덜 가졌다는 생각에 비참해지는 것이다.
내가 일상에서 '만트라'처럼 외우는 문장이 "지족상락(知足常樂), 수분자안(守分自安)"이다. 지인에게서 배운 거다. '만트라'는 산스크리트어로, '만'은 '마음'을 의미하고, '트라'는 '도구'이다. 만트라를 말 그대로 하면, '마음 도구'이다. 특정한 음절이나 단어, 문장을 반복하면 강력한 파동이 생겨 마음이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트라는 나를 정신차리게 만드는 경종이다.
'지족상락'은 '족함을 알면 늘 즐겁다'는 뜻이다. 족함은 아는 것은 현재에 체념하거나 안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재를 긍정하면서 밝은 내일을 위해 즐겁게 노력한다는 밝은 마음이다. 흔히 "지족상락(知足常樂), 능인자안(能認自安)"이라 한다. '능인자안'은 참고 견디면서 편안히 지낸다'는 말이다. 나는 이보다 "수분자안(守分自安)'이 더 낫다고 본다. 이건 '자신의 분수를 지키면서, 편안히 지낸다'는 말이다.
자족하는 법이 필요하다. '바라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라야 흡족해 하는 것이 만족이라면, 자족은 어떠한 형편이든지 긍정하는 삶의 태도이다.' 그러니까 행복의 비결은 자족(自足)이다. 요즈음 우리 대부분이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은 끼니를 걱정하는 절대 가난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으로 무엇이나 남처럼 가지려 하는 마음 때문에 생겨난다. 흔히 말하듯 '필요'보다 '욕심'에서 생기는 가난이다. 이럴 때 분수를 알고 자족할 줄 알면 빈곤감이 없어지고 자기에게 있는 것만으로도 부자처럼 느끼며 살 수 있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결혼을 했든 혼자이든, 성공을 든 실패를 했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괴로움 없이 마음 편하게 사는 거다. 수분자안(守分自安)이다. 나의 '만트라'인 이건 '자신의 분수를 지키면서, 편안히 지낸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삶의 중심을 잘 잡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여긴다.
우리가 부자가 되면,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긴다는 거다.
▪ 한 사람이 부자가 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가난해진다.
▪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길 수 있다.
▪ 사람이고 자연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돈으로 보일 것이다.
▪ 함부로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고 허깨비처럼 살다 보면 아이들이 살아갈 ‘오래된 미래’인 숲(자연)을 짓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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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상락'은'안분자족(安分自足)' 정신에서 나온다. 이 말은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分數)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앎'이란 뜻이다. 자기 분수에 맞게 무리하지 않고 만족하면서 편안히 지낸다는 거다. 나의 두 번째 만트라로 늘 외우는 문장은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을 알자' 이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인격이 높은 덕망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잣대로 오만(傲慢)에 빠지거나 자만(自慢)하지 않고, 크고 작은 일을 나 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삶의 아름다운 향기가 풍긴다. 이렇듯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욕심을 버리고 만족할 줄 아는 삶이야 말로 '멋진' 삶이 아닐까? '바라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라야 흡족해 하는 것이 만족이라면, 자족은 어떠한 형편이든지 긍정하는 삶의 태도이다.' 그러니까 기쁨의 비결은 자족(自足)이다. 요즈음 우리 대부분이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은 끼니를 걱정하는 절대 가난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으로 무엇이나 남처럼 가지려 하는 마음 때문에 생겨난다. 흔히 말하듯 '필요'보다 '욕심'에서 생기는 가난이다. 이럴 때 분수를 알고 자족할 줄 알면 빈곤감이 없어지고 자기에게 있는 것만으로도 부자처럼 느끼며 살 수 있다.
‘안분자족’은 노자 <<도덕경>> 제44장의 다음 문장을 소환한다. "知足不辱(지족불욕) 知止不殆(지지불태) 可以長久(가이장구)" 이 말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치욕을 당하지 않고, 적당할 때 그칠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으니 오래오래 삶을 누리게 된다'이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구절이다. 만족(足)을 알고 그치는(知) 것이 내 몸을 살리고, 내 정신을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해답이다. 이 구절을 가지고 노자의 철학이 소극적이고 허무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의 주체는 성공한 귀족이거나 권력자이다. 이미 성공이라는 문턱에 다다른 사람에게 하는 경고이다. 자신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더 큰 탐욕을 보일 때 벌어지는 참사에 대한 경고이다. 소유는 나눔을 통해 빈자리가 비로소 채워진다. 지속(長久) 성공과 생존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족함을 알아야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다'를 "살아서 창고에 많이 간직하고, 죽어서 무덤에 많이 간직하면, 살아서는 도둑이 쳐들어올까 염려하고, 죽어서는 도굴 될까 근심한다"고 푸는 사람도 있다. 명예와 몸, 몸과 재물, 잃음과 얻음, 그 어느 것도, 엄밀하게 말하면, 더 이롭고 더 아름답지 않다. 문제는 우리 안에서 일렁이는 욕심이다. 그 욕심을 그칠 줄 아는 지혜와 균형이 필요하다. 적당히 만족하고 삼갈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재물을 크게 쌓지 않으면 많이 잃는 법도 없다. 욕심을 줄이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멈출 줄 아는 게 중요한 것은 곧 오래가기 위함이다. "가이장구(可以長久)"는 생존의 지속을 말하는 것이고, 편안함을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명예보다 몸-생명이 더 중요하다. 몸-생명을 잃은 뒤 재물이나 명예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러니 몸-생명을 성히 보존하려면 욕심을 그치고 지족(知足) 하라고 이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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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된 힘으로 세상의 순리를 역행 할 수 없다. 세상의 순리를 믿고,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뜻대로 안 된다고 그릇된 힘을 쓰는 것은 늘 끝이 나쁘다. '항용유희(亢龍有悔)'와 '물극즉반(物極則反)'으로 말하는 <<주역>>의 주장이 세상의 순리이다. 그러니 절반의 성공에 만족하고, 절반은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다. "항용유회(亢龍有悔)"는, <<주역>>에서 하는 말로,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 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주역>>에서는 만물의 변화가 아래에서부터, 내면에서부터 생긴다고 말한다. 높이 올라간 자가 조심하고 겸퇴(謙退)할 줄 모르면 반드시 패가망신 하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내려올 일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높은 자리에 있을지라도 민심을 잃고, 현인을 낮은 지위에 두기 때문에 그 보좌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해도 뉘우칠 일 밖에 없게 된다.
"항용(亢龍)"에 대한 공자의 해석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빠르게 높이 올라가면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교만하여 민심을 잃게 되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으므로 "항용"에 이르면 후회하기 십상이니 이것이 '항룡유회'라는 거다. 따라서 보름달보다는 열 나흘 달이 좋고, 활짝 핀 꽃보다는 몽우리일 때가 더 가치 있으며, 완전 중앙이 아닌 미앙궁(未央宮)이 더 여유가 있다. 새길 일이다. 물극즉반(物極則反), 만물이 극에 이르면 기우는 법이다. 보름달이 된 달은 조만간 작아져 초생달이 된다. 만조의 바다는 썰물로 갯벌을 드러낸다. 나라가 융성하면 쇄국의 운명을 겪는다. 생의 성숙한 노년은 죽음의 쇠락을 맞게 된다. 차고 넘치면 좋은 건만은 아니다. 왕성한 풀들은 낫을 맞게 된다. 가득 차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다 성장한 연륜은 쇠락을 맞게 된다. 만월의 달은 더 커질 수 없고 자연 줄어든다.
이제 필요한 것이 "술은 반취(半醉), 꽃은 반개(半開), 복(福)은 반복(半福)"이라 했다. 술을 마시되 만취(滿醉)하면 '꼴' 사납고, 꽃도 만개(滿開) 상태보다 반쯤 피었을 때가 '더' 아름답다. 사람 사는 이치(理致)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충분한 만족(滿足)이란 있기도 어렵거나 와 혹 그렇다면 인생이 위태로워 진다. 결핍은 부실함이 아니라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결핍은 견디기 어려우나, 오히려 풍요가 우리를 타락시킨다는 게 나의 철학이다. 어려운 상황은 사람을 분발하게 하지만 안락한 환경에 처하면 쉽게 죽음에 이른다. 맹자는 이를 "生于憂患 死後安樂(생우우환 사후안락)"이라 했다. 이를 말 그대로 하면, '우환이 나를 살리게 할 것이고, 안락이 나를 죽음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뜻이다. 결핍으로 불편 해져야 삶이 자란다는 거다.
6
살다 보면,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둠 속을 전력 질주해도 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매장(埋葬)된 것이 아니라, 파종(播種)된 것이다. 매장과 파종은 다르다. 파종은 씨앗이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이다. 그래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4월이 떠나고 나면/목필균
꽃들아, 4월의 아름다운 꽃들아.
지거라, 한 잎 남김없이 다 지거라
가슴에 만발했던 시름들
너와 함께 다 떠나버리게
지다 보면
다시 피어날 날이 가까이 오고
피다 보면 질 날이 더 가까워지는 것
새순 돋아 무성해질 푸르름
네가 간다 한들 설음 뿐이겠느냐
4월이 그렇게 떠나고 나면
눈부신 오월이 아카시아 향기로
다가오고
바람에 스러진 네 모습
이른 아침, 맑은 이슬로 피어날 것을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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