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5월 8일)
오늘은 일요일이며, 어버이 날이고 부처님 오신날이기도 하다. 부모님은 나의 아픔을 자신들의 아픔처럼 여기시고 나의 기쁨은 자신들의 기쁨처럼 여기셨다. 세상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마음이다. 내가 아플 때 사람들은 나를 동정하지만,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고 나를 도와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은 달랐다. 내가 아플 때 연민을 느끼실 뿐만 아니라, 내 아픔을 자신들이 짊어지고 그 아픔을 덜어주려 하셨다. 내가 기쁠 때, 더 기뻐하시는 존재는 부모 님이었다. 어버이날은 우리들에게 그런 심성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날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부모가 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어버이 날 아침에, 나는 어른 짓을 잘 하는지 나를 되돌아본다. 나보다 먼저 하늘 나라로 가신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 아내가 생각난다. "별국", "별빛 사리"가 나의 배를 불리운다. 오늘 사진 속의 아카시아 꽃이 별 같다.
별국/공광규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나는 모짜르트가 했다는 말을 되새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비난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내 감성에 충실할 뿐이다." 그렇지만 가슴에 새겨 둔 명심(銘心)은 히브리 성서 <잠언> 3장 3절이다. "친절과 진실이 너를 떠나지 않게 하라. 친절과 진실을 목에 묶고 너의 심장의 서판에 새겨라".
친절은 히브리어로 '헤세드(hesed)'라 한다. 역지사지 하는 마음에서 출발해, 상대방의 희로애락을 나의 희로애락으로 공감하고 타인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실제로 애쓰는 행동이며, 타인의 정서를 진실로 기뻐하는 마음이다. 가장 대표적인 친절이 어머니의 사랑이다.
진실은 히브리어로 에메스(emeth)이다. '에메스'는 '아멘'의 여성 명사형이다. 그리스도 인들은 '아멘'이라는 단어를 통해 기도를 끝맺는다. '아멘'은 '믿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은 일회성 행위가 아니라 그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하려는 삶의 태도이다. 진실이란 그런 믿음이다. 진실이란 자기 신뢰이며, 그 가치를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이다.
나는 나를 믿고 나 스스로에게 친절하고 진실된 믿음을 가슴에 새길 것이다. 그래야 다른 이에게도 친절이라 수 있다. 다시 한번 구체적인 일상에서 실천할 다음의 내용을 소환한다. "누가 지혜로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누가 강한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사람이다. 누구 부자인가? 자신의 몫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누가 존경받을 만한가? 자신의 동료들을 존경하는 사람이다." (<탈무드, "선조들의 어록" 4장 1절)
가슴에 새긴 이 4가지를 최근에 잊고 살았다. 그래 나에 대한 믿음이 약해져 생각이 흩트려지었다. 다시 정돈하고, 스스로에게 친절하고자 다짐하는 일요일 오전이다. 생명은 점진(漸進)이다. 조금씩 앞으로 나감이다. 그러려면, 앞에서 말한 네 가지 원칙을 잘 지키는 일이다. 이것이 기본이다. 집중, 의지 그리고 상승이다. 집중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이며, 그 상황으로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움츠림이다. 의지는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 의지가 있어야, 우리는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일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상승이다. 점진적으로 시선을 높이는 일이다. 우리 각자의 하루는 상승을 위해 점진적으로 수련하는 시간일 뿐이다. 어머니의 사랑 덕분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다 값을 치룬 것이다, 받는 사람이 대가 없이 받아 먹기만 하기 때문이다.
무료이용권/임지만
‘한번은 시처럼 살아야 한다’라는 시집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따뜻한 햇볕 무료, 시원한 바람 무료, 아침 일출 무료, 저녁 노을 무료..... 여기까지는 좋은데 어머니 사랑이 무료라고 그럽니다. 이 시인 감성만 있고 통찰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사랑이 어떻게 무료입니까? 어머니 사랑은 무료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아침 일출과 저녁 노을도 무료가 아닙니다. 지구가 한바퀴 돌아야 비로소 생기는 것들입니다. 무료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 값이 지불된 것들입니다.
어머니 사랑은 무료가 아니다. 어머니의 남은 시간과 생살을 깎아서 나오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다. 그걸 무료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염치가 없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도 무료가 아니다. 받는 쪽에서만 보니 값없이 받은 것처럼 보여지지만 주신 분은 모든 것을 주신 것이다. 내 쪽에서 값을 지불하지 않다 보니 무료인 것처럼 생각돼서 감격도 없다. 어제는 수녀님 누나가 다녀가셨다. 그 누님은 매일 주시기만 한다. 어제도 한 보따리 가져다 주셨다.
주신 분은 모든 것을 내어 주셨는데, 받은 사람은 값없이 받다 보니 그 사랑이 도무지 가늠이 안된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나는 무료이용권을 끊고 하루를 입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어머니가 그립다. 오늘 공유하는 세 번째 시 때문이다. 손가락이 열 개가 된 유래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 유래를 믿는 사람은 선할 수 있다. 내 손가락을 내려다보면서 이 손가락은 어머니 은혜, 이 손가락은 어머니 사랑, 이 손가락은 생명의 소중함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이 나쁘게 살 수가 없다. 난 '성선설(性善說)'을 믿는다. 어머니 하면, 나는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생각난다. 어린 예수를 안고 헤롯의 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떠나는 마리아, 그녀는 먹지 못해 나오지 않는 젖을 예수에게 빨게 하는 그 그림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 보고싶은 어머니. 어제 수녀님 누나가 좋은 액자에 넣은 피에타 사진도 선물로 주셨다. 난 성선설을 믿는다.
1801년 조선, 천주교 박해가 극에 달할 때, 황사영은 선교사를 보낸 국가인 프랑스에 함대를 파견해 조선에 압력을 가해 달라고 보낸 편지가 발각되어 대역부도(大逆不道, 임금이나 나라에 큰 죄를 지어 도리에 크게 어긋나 있음) 죄인으로 처형됐다. 그때 황사영은 서울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고, 그의 처 정난주와 두 살 배기 아들 경한은 제주도 대정현 관노로 가게 되었다. 모자가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정난주가 당시의 세력가 정약용 가문의 조카였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정난주는 자신의 아들을 살리고 싶었다. 호송관원과 함께 전남 강진에서 쪽 배를 탄 모자(母子)는 추자도에 이르렀고, 정난주는 관원에게 아들이 유배 도중 숨져 수장한 것으로 해 달라고 부탁한 후, 추자도 갯바위에 아들을 남겨두고 떠났다. 평생 노비로 살게 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추자도 사람들을 통해 내려오는 오래된 풍습이 이 이야기를 뒷받침한다. 추자도 사람들의 황씨와 오씨는 혼인을 하지 않는다. 갯바위의 황경한을 오씨 성의 어부가 거두어 자식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천주교는 이 이야기를 살려서 추자도 올레 길 코스의 황경한 묘 옆에 ‘모정의 쉼터’와 약수터 ‘황경한의 눈물’을 만들었다. (국민일보 전정희 논설위원) 난 성선설을 믿는다.
성선설/함민복 (1962∼ )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합니다. 염치도 없이......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들은 '사월초파일'로 기억한다. 석가모니(=싯다르타, 고마타 붓다)의 석가는 부처님 당시 인도의 특정 부족 이름이지 부처님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고, 석가탄신일보다는 부처님 오신 날로 바꾸자고 불교계는 주장하며,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탐진치(貪瞋痴)의 무명(無明) 밝혀 진여(眞如) 깨치게 하소서."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와서 중생들에게 광명(빛)을 준 날이다. 나도 오늘 아침 <인문일기>를 통해 그 빛을 밝혀본다.
부처님 탄생 게(誕生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였다. 이 말은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이니 내가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뜻이다. 자신의 존귀함을 알라는 말이 다시 와 닿는다. 우리는 매 순간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좋아하고 싫어함이 즐거움과 괴로움의 원인이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과 즐거움의 근본 원인은 우리들 밖에 있는 대상이나 조건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에 있으니 직접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좋아하는 마음을 늘려가라는 것이다. 그 길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좋아하고 싫어함은 욕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려면 나를 버리고, 내 재산, 내 재능, 내 몸, 내 마음을 필요한 곳에 나누어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나눔만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우리 중생들의 즐거움을 얻는 방법이다.
글이 길어지니, <부처님 오시 날> 이야기는 내일로 미룬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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