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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과거는 참 좋은 핑계이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5월 6일)

어제는 '저주(詛呪)'라는 말을 오래 생각했다. 저주는 '남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도록 빌고 바람. 또는 그렇게 하여서 일어난 재앙이나 불행'을 말한다. 이 저주라는 말이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미국 작가 루이스 쌔커(Louis Sacher)의 <<구덩이>>의 다음 구절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일이 원하는 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내 인생에 저주가 걸린 게 아닌가 의심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자신의 인생이 저주에 걸린 게 아닌가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준다.

이 소설에는 기계적인 패턴의 하루 속에 놓인 인물이 주인공이다. 10대 소년인 스탠리 옐네츠로, 유명 야구 선수의 운동화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텍사스 사막의 초록호수캠프에 입소하게 된다. 청소년교화캠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곳은 청소년들에게 부당 노동을 시키는 수용소였다. 캠프에서 스탠리는 너비와 깊이 1.5m가량의 구덩이를 파라는 지시를 매일 받는다. 무엇을 위해 이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가는 듣지 못한 채 사막의 뜨거운 태양 아래 갈증과 싸워가며 구덩이 수십 개를 파내려 간다. 그게 고조 할아버지의 저주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자기만 억울하고, 자기만 불행하고, 불운은 자기만 따라오는 게 아닌가 푸념하는 때가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그렇게 생각한다. "네가 여기에 있는 건 한 사람 때문이야.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네가 이 더운 뙤약볕 아래에서 구덩이를 파고 있지 않았겠지. 그 사람이 누 군지 아니?"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돼지 도둑 고조 할아버지이다." 그러나 조금 후에 이런 문장이 이어진다. "아니야." "그 사람은 바로 너야, 스탠리. 네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바로 너 때문이다. 너에 대해서는 네가 책임을 져야지. 네가 인생을 망쳐 놨으면 그걸 고치는 것도 너 한테 달린 거야. 어느 누구도 널 대신해서 해줄 사람은 없어."

과거는 참 좋은 핑계이다. 내 잘못도 아니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은 더러운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피해자인 척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무 것도 좋아지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실마리를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바로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현재를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삶에서 쉬운 것은 아무 것도 없어, 하지만 그게 포기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지."

여기까지 <인문 일기> 쓰며, 나 자신의 스산한 마음도 가라앉았다. 요즈음 몇일 동안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이 동네 축제에 참여하여, 체험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이라 잘 준비를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서로 도우며 잘 이어가고 있다. 특히 딸의 활약이 돋보인다. 나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주'님과 함께 보내며, 나를 힘들게 하였다. 그래 마음이 스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덩이>>를 다 읽었다. 밀린 <인문 일기> 오늘 아침에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제 하루 종일 반성했다. 그리고 다시 다짐했다.

사람은 참 다양하다. 특히 어떤 가치를 두고 함께 일을 하면서, 반응하는 태도가 정말 다양하다. 나같이 않다. 나는 일단 긍정의 힘을 믿고, 행동한다. 그런데 말은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태도, 행동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태도, 생각이 없어 남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가 위험한 무능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무능은 개인의 무능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타인의 삶까지 침몰 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속상한 마음에 일찍 일어나 잡은 책이 고 채현국 선생의 대담 집인 <<쓴맛이 사는 맛: 시대의 어른 채현국, 삶이 깊어지는 이야기>>를 읽었다. 고인이 이사장으로 계시던 개운중학교 정문 오른쪽에 "지성(至誠)"이라 새긴 돌 비문이 있다고 한다. 바로 영화 <역린>으로 유명해진 <<중용>> 제23장이 소환되었다. 基次致曲,曲能有誠(기차치곡 곡능유성)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성즉형, 형즉저, 저즉명, 명즉동, 동즉변, 변즉화) 有天下至誠能化(유천하지성능화)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내면적으로 형성되어 겉으로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 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답은 '지성(至誠)'이다. 그러지 못했다면, 내가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영화 <역린> 장면이 생생하다. 여기에 나오는 정조의 삶이 내가 지향하는 것이다. 정조의 삶은 배움, 곧 읽기와 쓰기였다는 것이다. 흔히 권력은 소유와 지배, 나아가 쾌락의 증식일 뿐, 거기에서 자유와 충만함을 누리기는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 둘을 가늠하면서 헷갈려 한다. 물론 선택은 언제나 소유와 쾌락 쪽으로 기울고, 그러면서 삶이 힘들고 공허하다고 한탄한다. 헷갈린다 이보다 진실을 알고 싶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다시 <<탈무드>> 중 <선조들의 어록> 제4장 1절에 나오는 랍비 밴 조마의 말을 비틀어 보았다.

나는 지혜롭고 싶다. 그래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려 한다.
나는 강하고 싶다. 그래 나의 욕망을 절제하려 애쓴다.
나는 부자이고 싶다. 그래 나의 몫에 만족하려 한다.
나는 존경받고 싶다. 그래 내 주변의 사람들을 존경하려 한다.

늘 이걸 명심(銘心)하고 싶다. '명심'이란 잊지 않도록 마음에 깊이 새겨 두는 일이다. 머리가 아니라 심장에 그 내용을 새기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나를 괴롭히면, 내 심장에 기록된 다음 글을 읽으리라. "물론 나는 없다. 이미 다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나를 괴롭히고 저주하려는 그들이 그런 짓을 못하게 할 능력은 내가 없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힘겹더라도 내적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에픽테토스의 다음 말도 자주 기억하리라.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어떤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상, 즉 내가 가진 이미지이다. 비난도 모욕도 가난도 어쩌면 죽음 마저도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단어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포의 양이 그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 공포를 줄이면 된다. 줄이는 방법은 공지영 작가에서 얻었다. "오늘이 전부일 뿐 바라는 것이 적으면 두려움도 적다." 지금-여기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 공 작가의 바람처럼 말이다. "모두들 행복하시라. 바로 오늘! 바로 지금! 한 번 뿐인 당신의 생이 가고 있으니."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하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할 것이다. 그래 오늘 시처럼, 나는 외롭다.

사랑해서 외로웠다/이정하

나는 외로웠다 바람 속에 온몸을 맡긴
한 잎 나뭇잎 때로 무참히 흔들릴 때
구겨지고 찢겨지는 아픔보다
나를 더 못 견디게 하는 것은
나 혼자만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는
외로움이었다

어두워야 눈을 뜬다
혼자 일 때, 때로 그 밝은 태양은
내게 얼마나 참혹한가
나는 외로웠다
어쩌다 외로운 게 아니라
한순간도 빠짐없이 외로웠다

그렇지만 이건 알아다오
외로워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라는 것
그래 내 외로움의 근본은 바로 너다
다른 모든 것과 멀어졌기 때문이 아닌
무심히 서 있기만 하는 너로 인해
그런 너를 사랑해서 나는
나는 하염없이 외로웠다.

이어지는  <<구덩이>> 이야기는 블로그로 옮긴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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