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5월 1일)
오늘은 노동자의 날이다. 프랑스는 이날 일반 직장이 쉬는 것은 물론 대중교통까지 운행을 중단한다. 버스와 트램을 책임지는 사람들도 모두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노동하는 자가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 그들을 위한 축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노동절에 은방울꽃을 지인이나 동료에게 선물한다. 이 꽃을 프랑스에서는 뮈게(Muguet)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결혼하는 신부를 위한 부케로 사용하는 전통이 있다. 꽃의 모습이 신부와 같이 아름답고 우아하다. 이 꽃말은 "틀림없이 행복해 집니다"이다. 사실 잘 보면, 우리들의 호의호식은 모두 노동자들 덕분이다. 그들에게 감사하는 날이다. 그들이 행복해야 사회가 건강하다. 그들에 이 뮈게를 바친다.

오늘은 한가한 주일이다. 그러니 '의식이 존재를 배반한다'는 말을 다시 소환하며 정치를 공부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30-50 클럽'에 들어 갔다.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 권에 드는 나라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가 5천명만 명 이상인 나라를 이렇게 부른다. 지구상에서 불과 일곱 나라만 이 그룹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2019년에 이 그룹에 7번 째로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김누리)속에서 정치 민주화는 이루었는데, 사회, 경제 그리고 문화 민주화의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정치 민주화가 다시 후퇴할 지경이다. 현실 정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춘다. 그렇다고 절망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역사는 비틀거리면서도 진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오늘의 화두로 돌아간다.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다'는 이 말은 존재는 노동자인데 의식은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처럼 의식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그 이유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인식이 부족해서이다. 이 말은 칼 마르크스가 유물론에서 제기했던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형성한다'는 주장이다. 나의 사회적 존재를 생각해 보자는 거다.
존재론에서 존재의 형성에 있어, 즉 주체의 형성과정이 유물론과 관념론은 서로 상반된다. 관념론에서 데카르트의 코키토(존재)을 인용한다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생각하는 나는 물질적 관계 속에서 가 아니라, 내 관념에서 정립되는 주체로, 스스로 주체를 규정한다. 내가 누구인 가라는 관념적 사유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이다.
유물론에서 주체의 형성은 철저하게 관계로 해석한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주체가 형성된다. 나는 내가 규정하는 '나'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가 규정된다. 예컨대, '나'가 노동자라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서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로 관계 지어질 때 노동자로 존재가 규정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노동자임을 거부하게 만드는 편견이 우리 스스로의 존재감을 이질화 시키고 분화 시킨다. 한국 사회의 노동 경시 문화 때문이다. 노동, 노동자 경시 풍조가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든다. 즉 자신의 계급을 부정하고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노동자로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여기서 존재가 의식을 배반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존재가 의식을 배반하게 만들어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자신 있게 노동자라고 선언해야 한다. 그래 5월 1일 노동자의 날은 의미 있는 말이다. 노동당 지지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요구해야 한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은 개인 요구의 반영 이라기보다 사회공공성 확충을 요구한 공화주의 이념이다. 자유와 평등 의식과 함께 연대와 인권 의식을 전제하는 민주공화국의 시민 의식이 부재한 탓으로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요구하면, 수구기득권 세력은 바로 사회주의적 발상이니 좌파적 발상이니 하는 논리를 편다. 그것은 바로 수구기득권 세력이 민주공화국의 기본인 사회공공성, 공익성에 관심조차 없었다는 것을 뜻하며, 바로 그들이 분단이후 반세기를 넘는 동안 민주공화국을 철저히 배반하면서 사익을 추구해 왔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누구나 알 듯이 남한에서 친일파로 불리는 일제 부역 세력은 청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게 아니다. 바로 그들이 이른바 민주공화국의 모든 공적 부분을 장악한 헤게모니 집단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전 분야에서 지배세력 그 자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민족적 정체성을 가질 수 없었던 그들은 강대국의 힘(특히 미국의 힘)을 빌려 비어 있는 일부를 채웠고, 그들은 좌우 분단구도를 타고 '보수'와 '민족'을 참칭함으로써 나머지 부분을 채웠다.
여기서 '참칭(僭稱)'이란 말을 강조하고 싶다. 이 말은 '분수에 맞지 않게 스스로 임금이라고 칭하거나, 분수에 넘치는 칭호로 스스로를 부르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사적 이익이나 일신을 위해 민족을 배반했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국가를 경영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민족 이익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사적 이익 추구에 열심이었고 열심일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민주가 독재에 의해 유린되었기 때문이다. 독재가 가능했던 것은 냉전의식에 바탕을 둔 색깔론과 지역 패권주의(지역 색 강화)의 도움이었다. 게다가 교육과 언론을 장악한 지배집단은 이를 이용하여 사회 구성원들에게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주입시켜 형성 시켰다. 오랫동안 존재를 스스로 배반하는 의식화를 체계적으로 일상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데카르트의 존재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아래에서 의식하는 존재로서 그러나 인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스피노자와 칸트는 인간은 의식하는 존재이긴 하나 자유롭게 의식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말했다. 즉 의식하는 것에 대해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집안, 어떤 교육, 어떤 사회 환경이냐에 따라 인간의 의식은 규정된다고 했다. 더 나아가 칼 마르크스는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함으로써 의식을 규정하는 출발점이 존재 자체임을 명료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과정과 대중매체에 의해 존재를 스스로 배반하거나 부정하는 의식형성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지배계급은 사회구성원들을 자발적으로 종속되도록 노예화 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일제침탈, 분단, 전쟁과 독재로 이어지면서 의식 주입과 세뇌가 이루어져, 이젠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자기 존재의 요구조차 스스로 거부하고 부정하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들이 태극기 부대들의 대부분이다.
나의 사회적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자본가는 자본가의 일상과 이해관계에 따라 자본가의 의식을 갖고, 노동자, 농민은 노동자, 농민의 일상과 이해관계에 따라 노동자, 농민의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계급적 존재가 계급의식의 당연한 출발점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 명제가 한국 사회에서는 배반 되고 있다. 즉 우리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 뿐 아니다. 나이 든 일부는 냉전의식화, 안보의식화, 질서의식화, 친미사대의식화, 물신숭배 의식화, 지역감정 의식화 등 까지 이루어져 있다.
오늘 여기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탈의식화이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벗어내야 한다. 자기 존재에 상응하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스피노자도 강조했듯이 사람은 한번 형성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조차 무지와 헤게모니(패권, 覇權 지배권) 작동에 의해 고집한다. 진보가 잘 안 되고 느리고 어렵고, 불편한 까닭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진보의 길이 어려운 건 아니다. 어렵기 때문에 진보인 것이다. 건너 가기는 불편하다. 왜? 지금 있는 곳이 편하기 때문이다. 비록 의식이 존재를 배반한다 할지라도. 그게 인문운동가가 주장하는 인간의 길이다. 인문 운동가가 정치 교육까지 해야 할 정도로 이번 달부터 시작되는 새정부는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신록이 초록으로 짙어 가며, 계절의 여왕 첫날 아침부터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5월의 햇볕에 세상은 더 눈이 부실 거다. 실제로 동네의 하얀 철쭉들로 눈이 부시다. 그리고 오랜만에 거리두기가 끝나며 이제 일상이 눈부시게 바뀔 거이다. '눈부시다'는 "빛이 아주 아름답고 황홀하다, 활약이나 업적이 뛰어나다'란 말이다. 프랑스어로는 eboulir이다. 한불 사전에서는 "(강한 빛으로) 눈부시게 하다, 경탄을 불러일으키다, 마음을 사로잡다"로 풀이하고 있다. 한자어로는 眩(현)이라 한다. 옥편을 찾아보니, 아찔할 현자이다. 눈 목(目)자와 가물가물 현(玄)자가 합쳐져 있다. 그러니까 눈이 가물가물해진다는 말이다.
3년 전었에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난 드라마를 잘 보진 않지만, 이 드라마는 줄거리를 잘 모르는 채, 간헐적으로 눈길을 주었다. 김혜자라는 걸출한 배우의 연기에 끌렸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빼앗겨버린 시간 때문에 한순간에 노인이 된 젊은 여자의 안타까운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사실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반전은 우리들에게 시간과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었다. 특히 마지막 회의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라는 명대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의미에서 큰 울림을 주었다.
그해 5월 1일에 그 배우 김혜자가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대상을 받았다. 나는 그녀의 수상 소감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당신은 이 모든 것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 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젊은 시절에 난, 노래방에서 못 부르는 노래로 들국화의 <행진>을 부르곤 했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행진, 행진, 행진." "나의 미래는 항상 밝을 수는 없겠지. 나의 미래는 때론 힘들겠지.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 행진, 행진, 행진.
우리는 '현재를 즐겨라(Carpe diem)'는 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요즈음 자신의 힘을 절제하지 못해, 원심력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그런 사람은 중독을 유발하여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는 쾌락, 자극, 새로운 것을 항상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닌다. 쉽게 웃음과 울음을 자아내는 촌극을 감동이라 평가하고, 세네카의 구심력 찬양문구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건배사로 착각하고 니체의 고통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라는 혜안인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노래방 춤 쯤으로 여긴다. 원심력에 경도되어 있는 사람은 힘이 없고 불안하고 산만하다." 배철현의 <매일묵상>에서 읽은 것이다.
반면, 원심력을 구심력으로 제어하기 위해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힘이 있다. 그런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원심력의 과시를 희생하여야 한다. 나는 이 구심력과 원심력의 조화를 위해, 아침 마다 <인문 일기>를 매일 쓰고 있다. 자꾸 밖으로만 출렁이는 생각과 본능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무기력하지만, 그것들을 제어하고 조절하여, 그 힘을 비축하는 사람은 강력하고 매력적이 되기 때문이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카르페 디엠’을 위해 오늘 나는 또 친구들을 만나러 천안에 간다. 운동 후에 옻순을 먹기로 했다. 카르페 디엠은 ‘순간을 포착하여, 과감히 자신을 위한 최선으로 전환시켜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하인리히 하이네(독일 시인, 1797-1896)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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