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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흙이 망가지면 인간의 삶도 황폐화된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3월 10일)

봄이 좀 다가온 듯해서 어제는 주말농장에 가 흙을 만났다. 지난 해의 풀들을 거두고, 삽으로 땅을 파 뒤집었다. 뽑으려 하니, 모두 잡초로만 보이더니, 품으려 하니, 모두 꽃으로 보이더라는 말을 생각했지만, 일단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으로 그라운드 제로를 만들었다.

해가 뜨기 전, 봄날의 새벽에 밭에 나가면, 땅 속에서 얼었던 물기가 반짝이는 서리가 되어 새싹처럼 땅 위로 피어난다. 이게 봄 서리다. 흙은 늦가을 서리에 굳어지고, 봄 서리에 풀린다. 김훈은 "봄 서리는 초봄의 땅 위로 돋아나는 물의 싹"이라고 말한다. (김훈, <자전거 여행 1>) 풀 싹들은 헐거워진 봄 흙 속의 미로를 따라서 땅 위로 올라온다.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풀이 올라온다. 이건 놀라운 생명의 힘이다. 생명은 시간의 리듬에 실려서 흔들리면서 솟아오르는 것이어서, 봄에 땅이 부푸는 사태는 음악에 가깝다. 경이(驚異)이다.

봄의 흙은 헐겁다. 봄이 오면, 언 땅이 녹고, 햇볕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흙의 관능은 노곤하게 풀리면서 열린다. 봄의 흙이 헐렁해 지는 과정은 아름답다. 초봄의 햇살은 흙 표면의 얼음을 겨우 녹이고 흙 속으로 스민다. 흙 속에서는, 얼음이 녹은 자리마다 개미집 같은 작은 구멍들이 열리고, 이 구멍마다 물기가 흐른다. 밤이 되면 다시 기온이 떨어져, 이 물기는 다시 언다. 그러나 겨울처럼 꽝꽝 얼어 붙지는 않는다. 다음날 아침에 햇살이 다시 내리 쬐이면, 구멍 속의 얼음이 다시 녹는다. 얼고, 녹기를 거듭하면서, 흙 속의 작은 구멍들이 조금씩 넓혀진다. 그 넓혀진 구멍들로 햇볕이 조금 더 깊게 스민다. 이런 식으로, 봄의 흙은 헐거워지고, 헐거워진 흙은 부풀어 오른다. 작년은 "뽑으려 하니 모두 잡초였지만, 품으려 하니 모두 꽃이었다"는 이 말에 풀에 져 여름에 포기했지만, 올해는 초발심을 잊지 않고 싶다. 천양희 시인의 시, <나를 살 게 하는 말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얼음이 녹으면 봄이 된다는 말이/나를 살게 한다."

나를 살 게 하는 말들/천양희

얼음이 녹으면 봄이 된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불완전하기에 세상이 풍요하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는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시가 없는 세상은 어머니가 없는 세상과 같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그 중에서도 나를 살게 하는 건
사람을 쬐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

날마다 나를 살게 하는 말의 힘으로
나는 또 살아간다

내일 3월 11일은 '흙의 날'이라 한다. 농업의 근간이 되는 흙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제정된 날이라 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김춘진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흙의 날에는 생명의 원천으로서 흙의 상징성이 있다고 했다. 3월 11일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3월은 우주를 구성하는 천(天)·지(地)·인(人)의 ‘3원’, 그리고 다산 정약용이 강조한 ‘3농’(편농·후농·상농)과 농업·농촌·농민의 ‘3농’에서, 11일은 열 십(十)과 한 일(一)을 더한 흙 토(土)자에서 따왔다.

탄소는 순환한다. 공기(기권)와 땅(지권), 바다(수권), 생물(생물 권) 사이에서 형태를 바꿔 가며 돌고 돈다. 자연 환경에서는 탄소의 배출량과 흡수 량이 균형을 이뤄 탄소순환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인간의 활동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어나면서 순환 시스템이 깨졌다. 땅속에 저장됐던 탄소가 공기 중에 배출됐고 대량의 탄소는 순환하지 못한 채 공기 중에 머물게 됐다. 이는 온실가스 농도를 증가시켜 지구의 온도를 높였다. 인류는 기후위기를 마주하게 됐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줄여야 하는 것이다. 흙이 망가지면 탄소 격리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흙이 망가지면 인간의 삶도 황폐화된다. 흙은 생명의 원천이자 인류 생존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흙 1㎝가 만들어지는 데는 최소 200년이 걸린다. 하지만 1분마다 축구 경기장 30개 크기의 토양이 훼손되고 있다. 도시화와 화학비료 사용 등으로 흙이 병들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활동으로 지구 토양의 4분의1이 황폐화됐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흙이 망가지면 탄소 격리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탄소 량을 늘어나게 하고,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마지막 빙하기가 물러가고 1만 년 이상 온난한 기후가 지속되면서 지구에 수많은 생명체가 번성해 왔다. 인간이 살기에 알맞은 기후가 유지되는 것은 지구를 둘러싼 대기가 온실효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대기가 없다면 지구 평균기온은 지금보다 33도 낮아져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그래서 어떤 대기환경과학 교과서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의 대기는 파괴되기 쉬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섬세한 생명 유지의 공기 담요이다.”

산업화 이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기온을 유지시켜온 ‘공기 담요’는 온실효과를 높여 기온을 빠르게 상승시키고 있다. 잘 변하지 않던 기후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기후변화에 의한 기상이변도 자주 발생한다. 산업혁명 이후 불과 200년도 안 된 기간에 평균 기온이 1도 이상 상승했다. 지금 추세라면 금세기 이전에 기온이 2도 이상 올라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2015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평균 기온이 2도 상승하면 생물종의 20∼30%가 멸종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기온 상승폭을 2도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는 1870년 이후 누적된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790기가톤으로 제한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허용된 배출량의 3분의 2를 이미 써버린 상태다. 남은 배출 허용량, 즉 탄소예산 약 250기가톤을 각국이 배분하여 탄소 배출을 극적으로 줄여가야 할 텐데, 2030년 이전에 탄소예산이 소진될 공산이 크다. 탄소예산이 소진된다는 것은 이산화탄소를 더이상 배출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이 제로(0)인 상태를 유지하려면 배출량과 감축 량이 상쇄되어 순배출이 없게 되는 탄소중립(Net Zero)을 실현해야 한다. 이미 70여 개국이 이런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중국과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도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2050년까지 달성할 것이라고 했다.

많은 나라들이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현대문명은 석유와 석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가히 탄소의존적 문명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탄소와의 결별이 쉽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120개 이상의 국가들이 탄소중립을 표방하지 않고 있고, 미국처럼 주요한 탄소배출국의 기후 정책이 국내 정치에 따라 요동치기도 한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주권국가 중심의 국제질서에서 각국의 탄소 감축 약속을 강제할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앞서 언급한 대기환경과학 교과서의 다음 구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대기는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생명이 태어날 때부터 함께하는 공기는 한시도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 오래 전에 노트에 보관해 두었던,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인 차상민의 글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환경위기는 명백한 파국의 기반이 서서히 쌓여간다. 전쟁은 마지막 순간에도 막을 수 있지만, 환경위기는 티핑포인트를 지나면 되돌릴 수 없다. IPCC의 2018년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는 지금 당장 세계가 탄소중립사회로 전환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인류가 행동할 기간은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비상종이 울리고 있다. 어떤 인간안보도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인간의 마음이 결정한다. 불교의 가르침인 신토불이(身土不二)는, 몸은 지금까지의 행위에 의한 결과인 정보(正報)로, 땅은 그 몸이 의지하고 있는 환경인 의보(依報)로 나타나는데 둘이 아니라고 한다. 지구의 환경은 인간의 마음이 만든다는 뜻이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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