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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만트라'는 나를 정신차리게 만드는 경종이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3월 8일)

오늘 아침은 '만트라' 이야기를 하려 한다. '만트라'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만'은 '마음'을 의미하고, '트라'는 '도구'이다. '만트라'를 말 그대로 하면, '마음 도구'이다. 특정한 음절이나 단어, 문장을 반복하면 강력한 파동이 생겨 마음이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트라'는 나를 정신차리게 만드는 경종이다. 부패와 발효는 똑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어떤 미생물이 작용하는가에 따라 해로운 변화와 이로운 변화로 나뉘듯이, 어떤 문장이나 단어는 무의식 속에서 정신을 부패 시키고, 어떤 단어와 문장은 기도처럼 마음에 희망과 의지를 발효시킨다. 이게 '만트라'이다.

나의 '만트라 1: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 상호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갈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절제'. '중도', 아니 중용이 필요하다. 혼돈과 질서, 음과 양의 경계에 서서 말이다. 어느 날, 다른 사람 평가하기를 좋아하는 자공이 공자님께 물었다. 선생님,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현명합니까?" 공자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장은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 그러자 다시 자공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자장이 더 현명한 것입니까?" 그러자 공자께서 한 말씀 덧붙이셨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논어』 "선진" 편에 나오는 공자님과 제자들의 이 대화에서 그 유명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지나치지도 않고 미치지 못하지도 않는' 자기 절제가 곧 삶의 지혜인 것이다. 그래서 불가는 중도(中道)를 이야기하고, 그리스철학과 유학은 중용(中庸)을 논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위대한 삶이다. 이 말은 중국의 옛 시인 백거이(白居易)라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중용』 제14장에 나오는 "군자거이사명(君子居易俟命, 군자는 평범한 자리에 살면서 천명을 기다린다)"라는 말의 거이(居易)를 따온 것이다. '거이'는 '거할 거(居)'와 '평범할 이(易)'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평범한 곳에 거한다'는 뜻이다. 또 그의 자가 낙천(樂天)이라 한다. 이는 <<주역>>의 <계사편>에 나오는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 천명을 즐기고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했기 때문에 중앙정치 무대의 격심한 당쟁에 휘말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인은 아마도 평범한 일상을 지향하면서, 다가오는 운명이 어떤 것이든 그에 맞는 가장 최적의 인생 방법을 찾아낸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마트라 2: '안분지족(安分知足)':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을 알자.'

이 말은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分數)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앎'이란 뜻이다.  자기 분수에 맞게 무리하지 않고 만족하면서 편안히 지낸다는 거다. 윤리적으로 인격이 높은 덕망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잣대로 오만(傲慢)에 빠지거나 자만(自慢)하지 않고, 크고 작은 일을 나 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삶의 아름다운 향기가 풍긴다. 이렇듯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욕심을 버리고 만족할 줄 아는 삶이야 말로 '멋진' 삶이 아닐까? ‘안분지족’은 노자 <<도덕경>> 제44장의 다음 문장을 소환한다. "知足不辱(지족불욕) 知止不殆(지지불태) 可以長久(가이장구)" 이 말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치욕을 당하지 않고, 적당할 때 그칠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으니 오래오래 삶을 누리게 된다'이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구절이다.

만족(足)을 알고 그치는(知) 것이 내 몸을 살리고, 내 정신을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해답이다. 이 구절을 가지고 노자의 철학이 소극적이고 허무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의 주체는 성공한 귀족이거나 권력자이다. 이미 성공이라는 문턱에 다다른 사람에게 하는 경고이다. 자신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더 큰 탐욕을 보일 때 벌어지는 참사에 대한 경고이다. 소유는 나눔을 통해 빈자리가 비로소 채워진다. 지속(長久) 성공과 생존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니버의 기도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주님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화(차분함, 靜)를 주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勇)를 주시며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智)를 주소서."

<<중용>>에 의거하면, 수신(修身) 방면으로는 지혜(知), 사랑(仁), 용기(勇)를 “3가지 두루 통하는 덕”이라는 ‘3달덕(三達德)’을 배양하고, 니버의 기도에서 보는 것처럼, 서양인들은 수신(평온함)을 위해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차분함(靜), 바꿀 수 있는 변화의 용기(勇),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智)를 갈고 닦는다. '족함을 알아야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다'를 "살아서 창고에 많이 간직하고, 죽어서 무덤에 많이 간직하면, 살아서는 도둑이 쳐들어올까 염려하고, 죽어서는 도굴 될까 근심한다"고 푸는 사람도 있다. 명예와 몸, 몸과 재물, 잃음과 얻음, 그 어느 것도, 엄밀하게 말하면, 더 이롭고 더 아름답지 않다. 문제는 우리 안에서 일렁이는 욕심이다. 그 욕심을 그칠 줄 아는 지혜와 균형이 필요하다. 적당히 만족하고 삼갈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재물을 크게 쌓지 않으면 많이 잃는 법도 없다. 오늘 아침은 한 단체 카톡에서 만난 좋은 시 한 편을 공유한다.

비움의 미학/나승빈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 무엇을
채워갈 때가 아니라
비워갈 때이다.

사람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 무엇이건
다 비워 놓고
채우지 않을 때이다.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 무엇이나
다 비워 놓고도
마음이 평화로울 때이다.

지난 달에 만난 <작은경제연구소>  김영권 소장의 글에서 나의 만트라로 삼을 흥미로운 다른 나라의 '주술 같은' 문장들을 알게 되었다. 그래 공유한다.

1. '우분투': 아프리카 줄루어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우분투'를 '아프리카의 정신'이라 했었다. 만델라의 동지였던 투투 대주교는 "나는 당신과 우연히 만났고, 필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풀이했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으므로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 우리는 누구도 남남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형제자매'인 것이다. 이 '우분투'를 붓다의 연기법으로 옮기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가 된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서로 기대어 엮이고 섞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게 만물의 존재 법칙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 이 말은 이것이라는 말은 저것이라는 말이 없을 때는 의미가 없다. 이것이라는 말은 반드시 저것이라는 말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라는 말 속에는 저것이라는 말이 이미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저것을 낳고, 저것은 이것을 낳는 셈이다. 아버지만 아들을 낳는 것이 아니라, 아들 없이는 아버지도 있을 수 없으므로 아들도 아버지를 낳는 셈이다. 아버지도 원인인 동시에 결과이고, 아들도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다. 이렇게 서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방생(放生)'이라고 한다. 이를 영어로 말하면, 'mutual production', 'Interdependence'이다.

2. 마야 인디언들에게는 '인라케시 알라킨'이 '우분투'에 해당하는 말이다. 마야인들은 함께 모일 때 누군가 "인라케시!"라고 외치면, "알라킨!"이라고 응답한다고 한다. '나는 너'라는 말에 '너는 나'라고 답하는 거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거다. 마이클 잭슨이 노래한 대로 'We are the world!'이다. 티베트의 인사말인 '나마스테'도 결국 우분투와 같은 말이다.

3. '나마스테'는 내 안의 영혼이 당신 안의 영혼에게 고개 숙여 인사드린다는 뜻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다신의 영혼에 절합니다'로 표현할 수 있다. '우분투'는 아프리카의 정신을 담은 영적인 '만트라'인 것이다. 내 마음에 종소리처럼 번지는 영혼의 울림이다.

4. 영화 <라이온 킹> 덕분에 유명해진 '하쿠나 마타타'도 그런 '만트라'이다. '하쿠나 마타타'는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문제 없다'는 뜻이다. 영어로 말하면, 'No Problem'이다. '하쿠나 마타타'를 우리 식으로 말하면, '걱정 마. 문제 없어. 다 잘 될 거야'가 될 것이다. 이 말은 "낫싱 스페셜(Nothing Special)"라는 말과도 통한다. 프랑스어로는 "빠 드 스페이시알(Pas de special)"이다. 류시화 시인은 이것을 한국 말로 이렇게 옮겼다. "큰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 단지 하나의 사건일 뿐인 데도 우리의 마음은 그 하나를 전체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살면서 겪는 문제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괴물이 되어 더 중요한 것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걸 그렇게 큰일로 만들지 말고, 문제와 화해하고 받아들일 때 그 문제는 작아지고 우리는 커진다. 실제로 우리 자신은 문제보다 더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5. '하라카 하라카 하이나 바라카(스와힐리어로 '서두르고 서두르면 복이 달아난다)'와 '폴레 폴레 느디오 음웬도('천천히 천천히 하는 것이 나아가는 방법이다.)'

'서두르는 것에는 축복이 깃들지 않는다'는 풀이도 있다. '하라카 하라카'는 '빨리 빨리', '자꾸 이러면 복이 달아나요', '축복이 물러섭니다'란 뜻이다. 하느님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는 거다. 아프리카에서 35년 동안 활동하고 봉사했던 제니스 맥로플린(Janice McLaughlin) 수녀가 쓴 책 <<바오밥나무는 내게 비우라 하네>>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맥로플린 수녀는 1978년 모잠비크에 피난 온 짐바브웨 난민들을 도우려 갔는데, 난민캠프를 운영하는 책임자들이 시큰둥해서 속이 터졌다. 아무리 조르고 기다려도 되는 일이 없는 허탈하고 짜증 나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왜 여기 와서 이런 생고생을 하나? 깊은 회의를 떨칠 수 없지만 문득 기다리는 일 자체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세를 바꿔 직원이나 젊은 경비원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면서 사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을 열어 가까워지고 친구가 되자 마침내 일이 제대로 굴러갔다. 나중에는 그들을 이해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하라카 하라카' 대신 '폴레 폴레' 하면 보낼 생각이다. '빨리 빨리를 입에 달고 살면 행복이 달아난다. 천천히 해야 오히려 즐겁게 지낼 수 있다. '하쿠나 마타타!' '낫싱 스페셜(Nothing Special)'. '큰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자.'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다 잘 될 겁니다. 잘 될 거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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