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2월 28일)
'잠룡'이 '현룡'이 되었다. "九二는 見龍在田(현룡재전)이니 利見大人(이견대인)이니라." 용이 세상에 나와 밭에 있으니, 큰 사람을 봄이 이로울 것이다. 여기서 "밭"이란 현장이다. 언젠가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둔 적이 있다.
복음서에 한 농부가 자신의 밭을 갈다 보화를 발견한 이야기가 나온다. 천국은 자신의 밭을 갈 때, 발굴되는 보물이다. 그 농부는 그것을 찾기 위해, 자신의 밭을 갈기 시작하였다. 그 농부가 다른 사람의 땅에 불법 침입하여 밭을 가는 행위는 범죄다. 천재는 자신의 마음 밭에서 숨겨진 자신이라는 보물을 찾는 자다. 그것이 보물인 이유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사유(思惟)라는 말의 한자어에서 '사(思)는 마음 심(心)'위에 있는 글자가 '밭 전(田)'이 아니라, 한자의 뇌(腦)라는 글자의 오른쪽 아래 등장하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배철현 교수는 생각의 대상은 뇌 속에 있는 이데아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만나는 일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더 나은 나로 변화시키는 현장은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며, 집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며 책이다. 예수는 "천국은 밭에 감춰진 보화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천국은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 아니라 바로 여기, 매일매일 만나는 삶의 터전이다. 다만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그 안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하는 훈련이 바로 사유이다. 즉 생각한다는 것은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마태복음(13:34)이다. 복음서 저자는 천국을 농부가 그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거름 냄새로 가득한 밭에 숨겨져 있는 보화라고 말한다. 초인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자신의 마음이 옥토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곳에 희망이라는 씨앗, 즉 보화를 심으라고 촉구한다. 그 보화는 마치 씨앗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날 것이다. 그에게 천국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화초처럼 정성을 다해 키워야 할 희망이다.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완벽을 수련하는 시간과 장소는 ‘지금-여기’일 수밖에 없다. ‘지금-여기’에 대한 탐구가 ‘공부工夫’다. 인간은 한 번도 ‘그때-거기’에 살아본 적이 없다. 그는 항상 ‘지금-여기’안에서만 살아있다. 복음서는 ‘지금-여기’를 천국(天國)이라고 부른다.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천국에 대한 비유는 그 사실을 정갈하게 표현한다. ‘천국은 마치 들판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고 말한다. 천국이 발견되는 장소와 시간은 바로 지금-여기다. 복음서 저자는 ‘지금-여기’를 그리스 단어 ‘아그로스(agros)'를 사용하였다. ‘아그로스’는 흔히 ‘들판, 밭, 평원’이란 의미다. ‘아그로스’는 농부에게는 밭이고, 학자와 학생에게는 책과 책상이며, 직장인에게는 직장이다. 자신이 생계를 유지하는 그 일상(日常)이 천국이다. 아무나 자신의 일상을 천국으로 여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천국은 은닉(隱匿)되어 있어 대충 보고는 발견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진 시간과 장소인 일상은, 그것을 깊이 관찰하려는 사람에게 천국이다.
다시 <<주역>>의 건괘 이야기로 돌아온다. '잠룡'이 '현룡'이 되었다. 이후 '용'은 어떻게 날아오르는가? <건괘>는 물에서 나온 잠룡(潛龍)이 하늘을 나는 비룡(飛龍)이 되기까지 다음과 같이 각 단계마다 스스로 강해지기 위한 단련 과제를 부과한다는 말을 지난 26일에 했다.
1.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라.
2. 사람을 찾아내는 역량을 길러라
3. 자만에 빠지지 말고 시시각각 반성하라.
4. 작은 성취에 현혹되지 마라
<<주역>>에는 지나친 강인함에 대한 경계로 "씩씩하고도 남을 해칠 정도로 지나치게 강하면 안 되고 똑똑하더라도 남을 해칠 정도로 지나치게 살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 어제까지 현룡(물에서 나온 잠룡)은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라' 그리고 '사람을 찾아내는 역량을 길러라'는 말은 이미 이야기 했다. 그리고 어제 자만에 빠지지 말고 시시각각 반성하라는 "석척약(夕惕若)" 이야기를 하다 못한 내용을 오늘 이어간다.
"종일건건(終日乾乾)"하는 군자는 매우 강력한 추진력으로 어떤 조직이나 사업을 이끌고 가는 리더이다. 이렇게 추진력이 강한 인물들은 대체로 주변을 잘 돌아보지 못한다. 이런 캐릭터들은 추진력 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모든 조직원이 "종일건건"하는 리더의 템포에 맞춰 사업을 진행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소수 조직원은 그 템포를 따라 잡겠지만 적지 않은 이들은 그 템포를 따라잡기 어렵다. 그러나 리더가 최선을 다해 "석척약"한다면 낙오자와 탈락자는 최소화될 것이고, 그들이 입을 상처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우리는 리더를 평가할 때 "종일건건(終日乾乾)"하는 추진력과 더불어 "석척약(夕惕若)"하는 반성 능력을 함께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리더가 조직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리더 자신도 "종일건건"의 추진력과 더불어 "석척약"의 반성 능력을 함께 길러야 '소시오패스형'의 괴물로 변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시오패스(sociopath, 반(反) 사회적 인격장애자)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며 이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 외 자신을 잘 위장하며 감정조절이 뛰어나다. 인생을 이겨야하는 게임이나 도박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들을 이용할 타깃으로 생각한다. 매우 계산적이다. 겉으로는 매력적이고 사교적으로 보일 수 있다. 어릴 때 비정상적으로 잔인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재미 삼아 한다. 자신의 잘못이 발각되면, 거짓으로 후회, 반성을 하거나 동정심에 호소하면서 자신의 순진함을 강조한다. 거짓말을 하는 데 능숙하다. 일반인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들통날 까 봐 긴장하지만, 소시오패스는 양심이란 사전 속 단어이기에 일말의 망설임이 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해 자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뒤, 냉혹하게 버리면서 어떤 심리적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흔히 '사이코패스(psychopath) 형'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상태에 갇히지 않고 상대방의 상태에 나를 투영해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역지사지의 능력, 이것이 있기에 인간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회적 동물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능력의 정도가 사람의 사회성을 결정한다. 그런데 이 능력이 부족해 상대방의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병증이 '자폐'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는 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상대방의 감정에 전혀 공감하지 못할 때 '사이코패스(psychopathy)'가 된다. 사이코패스는 반복적인 반사회적 행동과 공감 및 죄책감의 결여, 충동성, 자기중심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전통적인 성격 장애 분류이다. 그리고 사이코패스는 아무런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 없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가리키는 범죄심리학 용어이다. 최근에는 소시오패스라는 개념을 쓰는 연구자들이 많다. 소시오패스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사이코패스와 같다. 그러나 이들은 노골적으로 범죄행위를 저지를 경우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처벌 받을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자신의 비양심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교묘하게 은폐한다. 요즈음 총선 시기를 맞아 그런 류의 사회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모습들을 커밍 아웃하고 있다.
그러면서 '벌써'로 시작한 2월이 '벌써" 떠나간다. "'벌써'라는 말이/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새해 맞이가 엊그제 같은데/벌써 2월(…)"(오세영, <2월>) 그런데 오늘이 "벌써" 2월의 마지막이고, 내일부터 3월이다. 나는 매년 2월 말 이면, 오늘 공유하는 시를 불러낸다. 그냥 2월에게 편지 한 통 보내고, 우린 3월을 봄과 함께 '힘차게' 마중 가야 한다. 커파라이커 정철의 자신의 책 <<사람사전>>에서 다음과 정의한다. "겨울이 갔다는 신호, 여름이 온다는 신호. 추위가 더위로 바뀐다는 신호,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빨간 불로 바뀔 때 아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노란 불 같은 것. 봄날은 짧다. 봄날은 간다." 봄날은 짧다. 2월이 그렇게 간 것처럼. 빨리 겨울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난 벌써 주말농장에 가 밭을 갈기 시작했다. 이쯤에 밭에 나가면 김훈의 글이 소환된다.
해가 뜨기 전, 봄날의 새벽에 밭에 나가면, 땅 속에서 얼었던 물기가 반짝이는 서리가 되어 새싹처럼 땅 위로 피어난다. 이게 봄 서리다. 흙은 늦가을 서리에 굳어지고, 봄 서리에 풀린다. 김훈은 "봄 서리는 초봄의 땅 위로 돋아나는 물의 싹"이라고 말했다. (<자전거 여행 1>) 풀 싹들은 헐거워진 봄 흙 속의 미로를 따라서 땅 위로 올라온다.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풀이 올라온다. 이건 놀라운 생명의 힘이다. 생명은 시간의 리듬에 실려서 흔들리면서 솟아오르는 것이어서, 봄에 땅이 부푸는 사태는 음악에 가깝다. 경이(驚異)이다.
그렇게 2월은 간다/홍수희
외로움을 아는 사람은
2월을 안다
떨쳐버려야 할 그리움을 끝내 붙잡고
미적미적 서성대던 사람은
2월을 안다
어느 날 정작 돌아다보니
자리 없이 떠돌던 기억의 응어리들,
시절을 놓친 미련이었네
필요한 것은 추억의 가지치기,
떠날 것은 스스로 떠나게 하고
오는 것은 조용한 기쁨으로 맞이하여라
계절은
가고 또 오는 것
사랑은 구속이 아니었네
2월은
흐르는 물살 위에 가로 놓여진
조촐한 징검다리였을 뿐
다만
소리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여,
그렇게 2월은 간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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