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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청룡의 푸른 기상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한 해를 소망해 본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2월 10일)

오늘은 갑진년, 청룡의 해가 시작되는 설날이다.
- 설날은 '낯설다‘의 설에서 유래한 처음 맞이하는 ‘낯 설은 날’이라고 하는 뜻과
- ‘서럽다’는 뜻의 ‘섧다’에서 '늙어감이 서럽다'는 뜻이 있다 한다.
- 또 다른 유래는 '삼가다'라는 뜻을 지닌 '사리다'의 '살'에서 비롯했다는 설도 있다. 여러 세시풍속 책에는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표현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조신하게 하여 새해를 시작하라'는 뜻이라 한다. 즉 설날은 ' 일년 내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을 조심하라'는 깊은 뜻을 새기는 명절이다.

'설' 을 언제부터 쇠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잘 알 수가 없지만, 중국의 사서에 있는 "신라 때 정월 초하루에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신(日月神)에게 배례했다"는 내용으로 보아 상당히 역사가 오래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구한말인 1895년에 양력이 채택되면서 그 빛이 바래기 시작했고, 1985년 "민속의 날" 로 지정, 이후 설날 명칭을 되찾아 사흘 간의 공휴일로 결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아직도

'구정(舊正)'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구정'이란 이름 그대로 '옛 설' 이란 뜻이다. 구정은 일제가 한민족의 혼과 얼을 말살시키기 위해 '신정(新正)'이란 말을 만들며 생겨난 것이다. 모두 일본식 한자어이며 설날이 바른 표현이다. 조선 총독부는 1936년 <<조선의 향토오락>>이란 책을 펴 내 우리의 말, 글, 성과 이름까지 빼앗아 민족문화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이 때부터 '설' 도 구정으로 격하해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꼭 설날이라 하고, " '설' 잘 쇠십시요, 쇠셨습니까?"라고 해야 한다.

설날에 먹는 떡국은 나이 한 살 더 먹으라는 게 아니라, 희고 뽀얗게 새로이 태어나라고 만든 음식이다. 순백의 떡과 국물로 지난 해 묵은 때를 씻어 버리는 것이다. 즉 순백의 계절에  흰 한복을 입고 흰떡을 먹으며, 묵은 그림을 버리고, 하얀 도화지에 한해의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래 설날에 내리는 눈을 우리는 '서설(瑞雪)'이라 한다.

올해도 나는 새롭게 주어진 하얀 도화지에 부지런히 점을 찍으며 어떤 상황에 서든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살 생각이다. 그러면서, 나는 또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존재적 경험과 배움의 기회를 갖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잊고, 다시 말하면 노골적으로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일상을 지배하면서 장기적으로 '좋은 삶'을 살아가면 된다. 그러한 삶의 구조를 만들려면, 돈은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필요 이상의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으므로, 돈을 버는 데 집중되었던 자원을 적절히 재배치 하여야 한다. 우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일들은 금전적 가치 외에 비금전적 가치도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활동과 관계를 의도적으로 늘려야 한다. 재화의 소비측면에서, 소유적 소비보다 존재적 소비에 치중해야 한다. 존재적 소비란 훌륭한 인물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다. 가까이에 뛰어난 인물들이 많을수록 우리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와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설날/김종해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주셨다
밤새도록 자지 않고
눈 오는 소리를 흰 떡으로 빚으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올랐다
빨간 화롯불 가에서
내 꿈은 달아오르고
밖에는 그 해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

매화꽃이 눈 속에서 날리는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가 이고 오신 하늘 한 자락에
누이는 동백꽃 수를 놓았다

섣달 그믐날 어머니의 도마 위에
산은 내려와서 산나물로 엎드리고
바다는 올라와서 비늘을 털었다

어머니가 밤새 빚어놓은
새해 아침 하늘 위에
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오르고
어머니는 햇살로
내 연실을 끌어올려 주셨다

다사다난했던 계묘년(癸卯年)이 저물고 갑진년(甲辰年)의 태양이 시작된다. 2024년은 푸른색의 '갑(甲)'과 용을 의미하는 '진(辰)'이 더해진 청룡(靑龍)을 의미하는 해이다. 푸른 용의 기운이 넘치는 새해를 맞아, 뜻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더욱 풍요롭고 여유로운 한 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청룡의 푸른 기상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한 해를 소망해 본다.

우리에게 용은 매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예로부터 자비와 길조의 상징으로 묘사되곤 했다. 고구려 벽화 사신도에 나오는 청룡은 동방의 수호신으로 사신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도 전해진다. 용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여러 전설과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악어나 도마뱀, 공룡이 그 원조로 추측되는데, 중국 문헌들에 의하면 ‘낙타 머리, 사슴 뿔, 토끼 눈, 잉어 비늘, 매 발톱, 호랑이 주먹’ 등 아홉 가지 동물을 닮은 것으로 묘사된다.

우리에게 용은 재앙을 물리치고 갖은 조화를 부리는 신통한 존재다. 왕이나 절대권력을 용에 빗댔다. 왕이 앉는 평상은 ‘용상(龍床)’, 왕의 얼굴은 ‘용안(龍顔)’이다. 신라 문무왕은 죽어서 바닷속 대룡이 돼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고, 백제 무왕과 고려 태조 왕건은 스스로 용의 자손이라고 했다. 민간에선 용왕에게 만선과 무사 귀환을 기원하고, 용 그림을 가까이 두고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바랐다. ‘용’자가 들어간 지명이 1000개가 넘는다. 우리 민속문화 속에 뿌리내린 용의 흔적들이다.

<<주역>>을 펼치면, 64괘 중 첫번 째인 ,충천 건(乾)>에 용이 나온다. 잠룡(潛龍), 현룡(見龍), 비령(飛龍), 항용(亢龍)이 나온다. <<설해문자>>에 용을 이렇게 묘사한다. "용의 파충류의 왕이다. 어둠 속에소 살 수도 있고, 밝음 속에서 살 수도 있다. 작아질 수도 있고, 거대하게 될 수 도 있다. 짧아질 수도 있고 길어질 수도 있다. 춘분에 하늘에 오르고, 추분이면 연못 속으로 숨는다." 용은 물속, 땅위, 하늘 모두 삶의 영역을 지닐 수 있는 생명체로서 상정되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연속시키는 어떤 우주적 작용이다.

<<도올주역강해>>에 있는 백서자료 <이삼자> 제1장을 실린 다음 대화를 공유한다.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에게 물었다: <<역>>에는 용이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용의 덕성은 어떠한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한다. '용은 거대하다. 용은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다. 천제(天帝)의 힘을 빌어 자신의 신성한 덕(神聖之德)을 드러낸다. 용은 하늘 높이 솟아올라 일월성신과 더불어 놀면서도 튀지 않으니 양의 덕성이 극도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아래로는 깊은 연못 속으로 빠져들어가면서도 익사하지 않으니 그것은 음의 덕성이 극도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위로 솟아오르면 바람과 비가 그를 받들고, 아래로 깊게 잠겨도 천천히 그를 보호한다. 깊은 흐름 속에 노닐면 물고기와 뱀이 그를 앞뒤로 둘러싼다. 물의 흐름 속에서 용을 따르지 않는 자가 없다. 솟아오르면 벼락의 신(뇌신)이 그를 기른다. 바람과 비는 용과 싸우지 않고, 새와 짐승은 용을 방해하지 않는다. 아 ~ 용은 진실로 위대하다."

이렇게 '용'은 동아시아의 생활이나 의식 속에서 무한한 긍정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이는 'Dragon'이라 불리는 서양의 '용'과는 완전히 다르다. 동양의 '용'은 수호신이며 물을 관장하고 농사에 필요한 비를 적절하게 뿌려주는 인간에게 이로운 상징인 반면, 서양의 '용'은 인간을 괴롭히는 괴물의 상징이다. 서양에서 어둠과 악의 상징인 '용'을 퇴치하면 영웅이 되는 반면, 동양에서는 정의와 수호의 상징인 '용'의 보호를 받으면 영웅이 되었다. 이렇듯이 '용'의 보호를 받은 영웅은 다시 '용'처럼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하는 숙명을 지니게 된다. 그렇게 '용'은 임금을 상징하게 되었다. 왕은 군림하기보다는 '용'처럼 무궁한 능력으로 승천하여 하늘에 오르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변화무쌍과 천변만화는 '용'의 능력을 표현하는 용어다. '용'들 중에서 가장 젊은 '청룡'은 늙은 '황룡'보다 더욱 생동감 넘치기 때문에 더욱 변화무쌍하다. 갑진년 '청룡'은 더욱 변화가 심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갑진년의 갑(甲)이 지닌 동쪽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작을 상징하며, 청색은 푸르름으로 건강미 넘치게 새로이 시작하는 역동의 모습이다. 물론 새로 시작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지닐 수 있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해처럼 희망을 품고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기존의 질서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계묘년이기 때문에 갑진년에 변화를 두려워하고 기존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만 집착하면 향후 10년의 미래에 뒤처질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진(辰)은 오행으로 '토'에 해당하며 천간 목(木, 나무)의 기운인 갑(甲) 목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지지기반이 되기도 하고, 감(甲) 목(木) 입장에서는 진(辰) 토(土)를 경작하는 '소토(燒土)'의 의미도 지닌다. '소토'란 경작의 의미로 새로운 농사를 짓기 위해 밭을 갈아엎는 것이다. 즉 유행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기반을 만들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면에서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10년의 시작을 꿈꾸어 보는 것이 2024년 갑진년 푸른 청룡의 해다. 더불어 지난 것들을 털어버리고 소토하여 밭을 새롭게 갈아엎는 수고를 필요로 한다. 모든 이들이 갑진년 새해에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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