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젠 딸과 <1987>을 봤다.
먹먹함을 아시는가? 내가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의 일이고, 너무 고단한 유학 생활 이후에, 난 그날을 잊었는데,
기억이 살아나 먹먹했다.
아침에, 이성복 시인의 <그날>을 읽었다.
그날/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점占 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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