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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기능에 빠진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본질을 지키는 삶을 살 것인가.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벌써 대덕 특구의 연구단지 중심부의 신성동으로 이사를 와, 와인 바를 하다가, 3년전부터는 인문운동가로 직업을 바꾸어 글 쓰고, 커뮤니티에 참여하며 인문운동을 나는 열심히 하고 있다. 그래 우리 동네에 관심이 많다.그러다가  페북으로 연결된 <매일경제>의 이런 기사를 만났다. "정부가 공공 부문에 일괄적으로 적용한 주 52시간 근무제도나 블라인드 채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은 연구기관, 특히 연구직에 한해서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이 기사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를 말한다.
▪ "주 52시간 근무제의 취지는 좋으나 연구 분야에까지 시간 제한을 둔다면 대한민국은 망할 것"
▪  "채용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연구기관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다른 공공기관과 획일화된 기준으로 채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제도에 대해선 "장기적으로 인력 구조가 경직되면 혁신적인 연구를 해야 하는 출연연이 관료화될 수 있다"며 "한 번 연구자들이 들어오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않아도 큰 문제없이 정년까지 있는 것이야말로 연구기관으로서는 악몽 같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사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젊은 피를 수혈받는 것"이라며 "신진 연구자 비중을 확대하고 박사후연구원 제도도 활성화하겠다"

오늘 아침에 침대에 누워 페북을 보다가, 전 서강대 교수 최진석의 글을 만났다. 그의 글의 요지는 '기능에 빠진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본질을 지키는 삶을 살 것인가'였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목적에 집중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목표에 집중하는 삶을 살 것인가'였다. 목표와 목적은 다르다. 최교수는 이런 예를 든다. "학생도 꿈을 가진 상태에서 공부하는지 아니면 그냥 성적이나 대학 합격을 전부로 생각하는 상태에서 공부하는지가 인생 전체의 격차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이어서 정치 집단의 이야기를 했지만, 이걸 연구 집단의 이야기로 바꿀 수 있다고 나는 본다. 아니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중요한 사항이다.

문제는 과학기술 분야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총괄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의 신년모임에서 나눈 이야기에서 어떤 정신, 영혼이 담긴 본질을 읽지 못하고, 기능의 문제만을 보고 있았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직접 최교수의 말을 들어 본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는 묻지도 않은 채 우선 공부만 열심히 해서 성적만 올리라고 계속 강요해왔던 우리 교육의 결과이다. 기능적인 삶을 사는 것만 배웠지, 본질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더 높은 삶을 사는 훈련을 받지 못한 것이다."

연구단지의 연구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이젠 기능의 문제를 논하기보다 본질을 이야기 해야 할 때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연구자들이 시간에 갇히고, 공간에 갇히면, 이젠 선도(先導)하는 연구를 못한다. 많은 연구자들의 고민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할 때이다.  연구 기관 간의 장벽이 낮아져야 하고, 남의 말을 듣는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 세계에만 빠지면 뒤처진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서로 많이 만나야 한다.

어디선가 읽고 적어 두었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 아침 글쓰기는 여기서 멈춘다. 시대가 바뀌었다. 유발 하라리는 정보의 자유와 인간 표현의 자유와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표현의 자유는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말할 인간의 권리를 보호했다. 여기에는 입을 다물 권리와 생각을 밝히질 않을 권리도 포함된다. 반면 정보의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게 주어진다. 정보가 자유롭게 유포될 권리는 인간이 정보를 소유하고 그 흐름을 제한 할 권리보다 우선한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들을 기록하고, 업로드하고, 공유한다. 과거의 예술은 개별적인 천재를 신성시하였다. 그리고 과학도 개인 연구자를 찬미하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점점 많은 예술과 과학 창조물이 '모든 사람'의 끝없는 협업으로 생산된다. 예컨대, 위키피디아가 그렇다. 개인은 점점 누구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거대 시스템 안의 작은 칩이 되어가고 있다.

현대 데이터 신봉자들은 경험에 의하면, 데이터는 공유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본다. 지금은 여행하면서 어떤 것을 보면, '무슨 느낌이 드는지' 자문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뒤 2분마다 한 번씩  '좋아요'가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확인하느라 바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하고 새로운 모토는 이거다.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하라. 업로드하면 공유하라."

데이터 신봉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나은 것은 인간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시를 써 온라인에 게재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전 지구적 데이터 처리 시스템을 풍성하게 한다. 늑대는 이렇게 못한다. 이젠 인간의 가치는 경험을 하는 데 있지 않고, 경험들을 자유롭게 흐르는 데이터로 전환하는 데 있다. 그러니까 소비만 하지 말고, 생산하여야 한다. 그 생산으로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거니" 물어야 한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거니/윤은주

12월의 찻집 창가에 앉아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은 바람에게 묻는다

산수유 열매 씨앗 속에 잠자다
봄 꿈 깨어 왔니
휘어진 안개, 사람의 감옥에
스스로 섬이 되어 떠돌다 여름 무인도에 닻을 내렸니
처마 밑 무청 시래기 토닥이다 왔니
정겨운 구름의 속삭임
다 벗어버리고
바람의 알몸 되어
어디로 가는 거니

다시 돌아온 겨울 찻집,
그 자리에 앉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뽀얀 김을 바라본다
수많은 입술에 닿아 따뜻해진
찻잔에 내 입술을 포갠다
뜨거운 찻물에 섬이 풀어진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창밖에 내리는
흰 눈은 아무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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