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그는, 삶의 군더더기를 매일매일 깍아내고 있다."

7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둘, 이야기 하나

자코메티가 묻는다/박수소리

난 이 말이 좋다.
"그는, 삶의 군더더기를 매일매일 깍아내고 있다."
20세기 초 근대를 종식시키고 현대를 시작할 '새로운 인종'을 탄생시킨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말이다.
그의 작품들은,
삐적 마른 모습으로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거나,
대지에 굳건히 몸을 대고 우주의 끝을 응시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겉모습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순수한 영혼의 모습을 찾고 싶어했다.
그의 작품들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심연을 응시하도록 침묵을 훈련시키고,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추구하도록 촉구한다.
그의 강렬한 눈빛은
자신을 오랫동안 바라본 사람만이 갖는 눈빛을 가진다.
침묵의 시간을 가진 사람만이
그런 눈빛을 갖는다.

침묵을 연마하여야 한다.
침묵이란 자신이 굳이 입으로 발설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에 지장이 없는 그런 쓸데없는 말들을 가려내는 능력이다.

침묵의 시간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치의 시간이다.
침묵의 시간은
김치가 익기 위해 장독에 갇혀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침묵의 시간은
와인이 어두운 지하실의 오크통에서 침잠하는 시간이다.

"지혜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여기서 "잠잠하느니라"라는 히브리어가 '조각하다'라는 뜻이란다.

'잠잠하다'는 말의 사전 뜻은 '말없이 가만히 있다'는 말이니, 침묵한다는 말이다.
조각하다에서 '조각'이라는 말은 '재료를 새기거나 깍아서 입체적으로 형상을 만들거나 그런 미술 분야를 뜻한다.
한문으로는 이렇게 쓴다. 彫刻조각
'각' 자가 '깍을 각'자이다.

침묵하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위대한 자신을 발견하려고 추구하는 사람이다.
침묵하는 사람은
마치 조각가가 그러하듯이 자신의 삶에서 쓸데없고 부질없는 것들을 매일매일 깍아내는 사람이다.

미켈란젤로가 다윗상을 조각하기위해 다듬지 않은 커다란 대리석을 보다가 한 말은 잘 알려져 있다.
"내 손에는 정과 망치가 있다. 나는 이 커다란 돌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덜어낼 것이다."

자코메티도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자신에게 감동적인 '신의 형상'을 찾아 매일매일 깍아냈다고 한다.
자신과 세계 그리고 신과의 관계를 모색하면서.

자코메티의 작품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내 삶의 군더더기에 대해 묵상해 보았는가?"
"나는 그것들을 과감히 걷어낼 용기가 있었는가?"

노자의 말이 생각난다.
"위학일익 僞學日益, 위도일손 爲道日損".**
"배움의 목표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 도의 목표는 날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삶의 길은 버리는 것이다.
군더더기를 깍고, 덜어내는 것이다.

*<구약성서> 잠언 11:12
** <도덕경> 48장
*** 배철현교수의 <국민일보> 칼럼을 읽고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