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오늘 글이에요.
시를 쓰는 시간/박수소리
자코메티의 조각은 주로 걷는다.
우리 인간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우리 인간은 영원히 머무르지 못한다. 떠나야 한다. 아니,
떠나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인간은 반드시 죽게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필멸의 존재, 아니
죽어가는 존재이다.
우리는 멈출 수 없다.
'여기'서 '저기'로 걸어간다.
그 걸음은 죽음으로의 걸음이다.
백구과극
하얀 말이 좁은 문틈으로 지나가는 그 짦은 시간이 삶이다.
우리의 삶은 두 개의 침묵,
태어나기 이전과 죽은 이후 사이에 잠시
끼어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은 그 두 간극을 걷는 것이다.
영원히 멈출 수 없다.
삶이 시작되면 걷고, 삶이 끝나면 걸음이 멈춘다.
걸음을 멈추면, 우리는 흙이 된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간을 히브리어로 ‘아담(adam)’이라고 불렀다.
‘아담’은 ‘붉은 흙’이란 의미다.
그러니까 걸을 때, 우리는 ‘신의 형상’을 지닌 거룩한 존재지만,
걸음을 멈추면, 우리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내 삶은 '없음'과 '없음'의 사이에 잠시
머물며 걷는 일이다. 다만,
걸으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묻는다.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확신하지 마라.
회의해라.
이렇게 연결되어야 한다.
신념이 물음에 연결되어야 한다.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순간이 영원이 되도록 걸어야 한다.
자코메티 조각처럼.
걸으면서,
삶의 부스러기를 떼어내야 한다.
나도,
자코메티 처럼, 걸으면서
삶의 군더더기를 매일매일 깍아낸다.
모든 길은 오직 한 번 간다.
모든 길은 한 번 갈뿐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이렇게 걸어가는 길이 어딘지,
이 길에서 내 삶이 무엇인지를.
그것을 묻기에 우리는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오늘 아침 자코메티를 만나,
나는 내 삶의 길을 돌아본다.
이런 멈춤은 크로노스적 시간의 기계적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다.
카이로스의 시간, 아니 순간의 시간이다.
이 때가 시를 쓰는 시간이다.
쓰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너무 뚱뚱하다.
자코메티 조각처럼, 삶의 뼈대만 남을 때까지,
시를 쓰고,
그래도 나는 서서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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