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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토요일에 만나는 와인 이야기

오늘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다. 바람도 다르다. 그러나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인데, 딸이 백신 2차 접종이 있어 시내에 나왔다. 그리고 점심을 같이 먹고 차로 오는 길에 가을 빛을 만나 한껏 찍은 것이 오늘 사진이다. 딸은 집으로 가고, 나는 내 연구실에서 하잔한 오후를 보내며, 독일 와인 여행을 하였다. 독일 와인 이야기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독일에는 ‘사고’가 만든 독일 ‘명품’ 와인, 트로겐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이 있다. 약자로 TBA라 한다.

독일 와인은 네 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그 중 ‘아주 질 좋은 와인’이란 뜻이며 가장 최고급 등급이 QmP(Qualitätswein mit Prädikat)이다. 이 등급은 설탕이나 그 외의 다른 첨가물은 일체 허용되지 않으며 이 영역의 와인들은 다시 포도의 성숙과 포도 수확 시기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다시 여섯 단계로 나뉜다.

북반구 대부분의 와이너리들은 9월~10월 중에 포도품종별로 수확기간을 정하여 단번에 수확을 마친다. 그러나 독일의 와이너리들은 10월 경부터 여러 차례 수확하며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수확을 완료한다. 한 포도밭에서도 한번에 모든 포도를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캐비넷으로 일찍 수확, 며칠 후 다시 수확, 좀 더 놔뒀다가 늦게 아우스레제 수확, 꽁꽁 얼어붙을 때까지 포도 일부를 남겨 두었다가 아이스바인용으로 수확하는 식이다. 귀부 병에 걸린 포도 알은 수확 때에 손으로 일일이 선별하여 TBA 용으로 수확한다. 대단히 숙련된 인부만 할 수 있다. 아이스바인은 영하 8도 이하의 날씨에 수확하여 즉시 압착한다. 영하 8도보다 높은 기온에서는 압착 때 수분이 새어나오므로 높은 당도를 유지할 수 없다. 아이스바인을 수확하는 작업은 한겨울 한밤중, 해뜨기 전에 이루어진다. 인부들도 다 떠난 늦은 계절이라 와이너리 직원 및 직원 가족들까지 동원된다. 인건비를 생각하면 아이스바인의 가격이 결코 비싸지 않다.

① 카비네트(Kavinett) 18세기에 처음으로 교회와 귀족의 후원을 얻어 우수한 와인에 대한 품질 표기가 시작되었고, 양질의 와인은 저장고(Kabinett)에서 보관 되었다. 오늘날 와인 등급의 하나인 카비네트도 여기에서 유래 했다.
: 잘 익은 포도로 만든 부드러운 와인
② 슈페트레제(Spätlese): 늦게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
③ 아우스레제(Auslese): 조금이라도 더 늦게 수확하여 만든 와인
④ 베렌아우스레제(Beeren Auslese-BA): 포도가 상하기 직전에 손으로 수확하여 만든 와인(여기서 베렌은 영어로 베리(Berry)라는 뜻으로 즉 포도 한 알 한 알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⑤ 아이스바인(Eiswein): 포도를 12월까지 포도나무에 두어 언 상태에서 수확하여 즙을 내서 만든 와인
⑥ 트로겐베렌아우스레제(Tocken Beeren Auslese-TBA): 귀부 현상이 있는 포도 알을 건포도 수준에서 수확하여 만든 와인 여기서 '트로켄'이란 ‘말랐다’는 의미이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포도 수확시기가 늦은 것으로 그만큼 더 당도가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까치밥용으로 감을 따지 않고 나무에 내버려두면 달고 맛있는 홍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이스바인은 포도가 얼 때까지, 트로겐베렌아우스레제는 귀부현상으로 건포도 상태에 가까워질 때까지 각각 기다렸다가 이를 수확해 만든 명품 와인이다. 값이 비싸고 식후에 마시는 디저트와인이다.

여기서 귀부현상이란 수확을 늦추는 노력에 까다로운 기후 조건, 즉 여름에는 맑고 수확기를 지난 늦가을에는 오전의 찬 서리와 오후의 태양이 만나 얼고 녹는 반복적인 작용으로 ‘고귀하게 부패하는(noble rot)’하는 현상이다. 여기에 증식하는 균이 보트리티스 씨네레아(Botrytis cinerea)이다. 이 세균이 포도 알에서 수분을 없애는 대신, 당분과 맛을 농축시켜 준다. 이 병든 포도송이 중 마른 알갱이만 모아 만든 와인이 트로겐베렌아우스레제이다. 여기 토로겐이란 와인 맛이 달지 않다는 의미에서의 드라이가 아니고, 건포도처럼 쪼글쪼글 말랐다는 의미에서의 드라이를 말한다.

옛날에는 최고급 QmP에 속하는 것은 카비네트만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사고’로 슈페트레제라는 와인이 탄생하면서 지금과 같은 복잡한 등급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슈페트레제 이상의 등급은 우연히 탄생한 슈페트레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생산된 와인들이다. 그 우연한 ‘사고’는 이런 것이었다.


1775년 독일 라인가우 지역에 여러 포도밭을 갖고 있었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수도원은 라인가우 슐로스 요하니스버그(Schloss Johannisberg)에 있다. 이 수도원에서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를 책임지고 있던 수사는 여느 해처럼 포도를 수확해도 좋다는 허락을 얻으려고 약 150㎞ 떨어진 곳에 있는 교구의 대주교에게 잘 익은 포도 몇 송이를 전령을 통하여 보냈다. 그런데 보통 일주일 정도면 돌아오던 전령이 돌아오지 안했다. 게다가 그 해 가을 날씨가 너무 좋아 하루가 다르게 포도는 익어갔다. 3주가 지나서야 ‘포를 수확해도 좋다’는 허락을 얻고 전령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포도가 너무 익어 와인을 만들기에는 적당치 않게 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버리기도 아까워 남아 있던 포도를 수확해 와인을 만들었다. 그 이듬해 수도원의 와인 전문가들이 교구 각 지역의 와인들을 평가하기 위해 각각의 와인들을 맛보다가 갑자기 다른 와인 맛을 접하자 깜짝 놀란 표정으로, 와인 전문가들이 와인을 가지고 온 전령에게 “이렇게 맛있는 와인을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었다. 갑작스런 질문을 받은 전령은 엉겁결에 “슈페트레제(Spätlese, 영어로는 레이트 하비스트 late harvest)”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바로 “늦게 수확했을 뿐입니다.”라는 뜻이다. 늦게 수확한 것이 오히려 포도의 당도를 높여 더 달콤한 와인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부터 포도를 늦게 수확하게 되었다.

그러자 독일 와인 제조업자들은 슈페트레제에서 늦게 수확하니 좋은 와인이 된다는 힌트를 얻어 수확시기를 더 늦추어 아우스레제(더 늦게 수확), 베렌아우스레제(수확을 늦게 수확하다 보니 아예 포도 알이 상해서 수확을 포기하는 불상사가 생기자, 상하기 직전의 포도송이에서 손가락으로 충분히 익은 포도 알만을 수확) 탄생시켰다. 게다가 더 좋은 와인을 만들려고 늦은 가을까지 포도를 수확하지 않았는데, 불행하게도 귀부 병에 걸려 포도송이가 썩어 들어갔다. 버리기 아까워 병든 포도송이로 만든 와인이 트로겐베렌아우스레제(거의 상한 정도의 포도 알에서까지도 포도즙을 추출 하여 만든 와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좋은 와인을 만들려고 포도를 최대한 늦게 수확하려고 노력하던 중 불행하게도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포도 알이 얼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포도를 급히 수확해 압착했다. 포도 속의 수분은 얼어 그 온도에서 얼지 않은 약간의 당분만 조금 흘러나왔다. 이를 정성껏 발효해 와인을 만든 것이 그 유명한 아이스바인이다.


지금부터는 얼음의 기적, <아이스바인(Eiswein)>에 대해 이야기 한다. 독일에서는 Eiswein이라 표기하고 아이스바인이라고 부른다. 아이스 와인은 독일에서 최초로 생산하였지만, 기후가 온화하여 아이스 와인을 매년 생산할 수 없는 반면, 캐나다는 겨울이 매우 추워 매년 아이스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독일의 아이스바인(아이스 와인)은 ‘포도를 늦게 수확하니 좋은 와인 된다.’는 힌트를 얻어 포도 수확시기를 늦추려고 노력하던 중 불행하게도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포도 알이 얼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 언 포도를 급히 손으로 수확하여 압착 한 후 와인을 만들었더니 아주 맛 좋은 와인이 나온 것이다. 이것이 아이스와인이다.

아이스 와인은 한 겨울까지 포도를 수확하지 않고 들판에 두었다가 12월과 1월 사이에 온도가 영하 8°C~10°C 정도로 떨어졌을 때 포도송이 채 수확하지 않고 적당하게 언 포도 알갱이만 골라서 손으로 직접 수확하여, 양조장으로 옮긴 후 부드럽게 압착 시켜 와인을 만든다. 언 포도를 압착 시키면, 포도 속의 수분은 얼어 그 온도에서 얼지 않은 약간의 당분만이 조금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당도가 높은 스위트한 와인이 되는 것이다. 포도의 언 상태가 절정일 때가 중요하다. 그러나 보통 새벽 1~3시경이 포도의 언 상태가 가장 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얼은 포도를 녹기 전에 하나하나 손으로 따야 한다. 그러므로 아이스 와인은 만드는 동안에 손실이 많고 그 과정도 매우 힘들어 정성과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에 사랑과 인내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와인이다. 우리나라의 황태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귀한 와인이기 때문에 병의 크기도 750㎖의 반인 375㎖이다.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아이스 와인 한 병 밖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독일, 캐나다, 오스트리아에서 아이스 와인을 만들고 있다.

모든 포도품종으로 아이스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스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품종은 리슬링(Riesling)과 비달(Vidal) 품종이다. 이 두 포도품종은 상대적으로 포도 껍질이 두꺼워 서리가 내린 이후에도 포도가 상하지 않고 잘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메를로(Merlot)나 샤르도네(Chardonnay) 등 다른 품종의 아이스 와인을 만들려 시도하고 있다.

아이스 와인은 진한 황금색이고 향이 풍부하고 진하다. 그리고 스위트한(단) 와인이지만 풀 바디(full-body)하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있다는 말이다. 각종 과일 향과 꽃향기가 농축된 달콤한 디저트 와인으로, 아이스크림과도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최근에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포도 속에 있는 수분을 인위적으로 대형 냉장고에 넣어 얼린 후 포도를 압착하여 만드는 아이스 와인이 나오고 있다.  고가의 독일이나 캐내다 산이 부담스러우면 뉴질랜드나 호주 산 아이스와인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끝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 와인 하나를 더 소개한다. 독일 와인 중에 외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와인 상표 중에 <블루 넌(Blue Nun)>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의 원래 명칭은 립프라우밀히(liebfraumilch-‘Milk of our lady’이란 뜻이다)>인데, 외국 사람들이 발음하기가 어려워 <블루 넌>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름을 고친 후 더 세계적인 와인이 되었다. 이에 힘입어 요즈음에는 <Blue Nun>이라는 상표로 메를로, 리슬링 그리고 스파클링 와인까지 내놓고 있다. 이 와인은 독일의 라인헤센 지역이 출생지인 부드럽고 달콤한 세미 화이트와인이다. 그렇게 좋은 와인은 아닌데, 독일 와인 수출의 1/3을 차지한다. 독일보다는 외국, 독일 내에서도 관광객 등 비독일인에게 인기가 좋다.

<블루 넌> 화이트는 맑은 파란 병, 흰 바탕을 한 라벨 위에 포도밭을 등지고 역시 파란 색상을 한 수녀 복을 입은 수녀의 이미지는 모두에게 친근감을 보이면서 깊이 인식되는 브랜드이다. 알코올 도수는 그리 높지 않다. 약 10%내외이다. 와인의 품계는 QbA급으로 맛은 상큼하며 약간의 감미를 보이는 전형적인 라이트 스타일의 독일 화이트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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