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편의를 위한 도구는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지만, 가슴의 헛헛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무덤덤할 뿐 좀처럼 감탄할 줄 모르는 정신의 혼수상태에 빠진 이들이 의외로 많다. 도로테 쥘레는 이런 이들을 '고장난 존재'라 했다. 지향조차 분명치 않은 길 위에서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달려간다. 그런 내달림 속에서 공허함이 모습을 드러낼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모습에 낯선 존재를 발견한다. 존재의 불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대인들은 공적인 역할의 세계와 감춰진 영혼의 세계 사이를 오가면서 분리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분리된 일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때문이다. 세상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일수록 영혼과가 접촉을 끊고 자기에게 부여된 역할 속으로 숨어들기 일쑤다. 하지만 참된 삶은 자기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열린다. 파커 파머는 사람들이 자기 영혼의 못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며 그것을 일러 '신뢰의 서클'이라 했다.
그 모임은 값싼 위로를 제공하지도 않고, 바로잡으려 들지도 않는다. 조용하게 그리고 존중하는 태도로 서로의 영혼의 소리를 경청할 뿐이다. 옛 성인은 우리가 대지를 딛고 서기 위해서는 다만 몇 평의 땅만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실제로 쓰지 않는 땅을 모두 파 없애 버리면 서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주위가 온통 벌어진 틈이고 허공이라면 누 군들 현기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성인은 그 이야기를 통해 '쓸모 없는 것의 쓸모 있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누군가의 배경이 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누구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다.//별을 빛나게 하는/까만 하늘처럼."
세상은 내게 '충고'하지만, 우리는 조용히 내 가슴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들어야 한다.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들을 바로잡아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다. 그때마다 상대방은 더욱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곤 한다. 바로잡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순간 상대방은 굴욕감을 느끼게 되고, 그가 심리적인 참호 속으로 퇴각하면, 모든 관계는 단절되고 만다. 그것은 가족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영혼은 날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신뢰의 서클> 안에는,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있음 그 자체로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일상의 순례길을 걷는 것이다. 그 순례길을 걷는 사람은 구도자이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정화 스님이 말했다는 '별별해탈"을 소개하였다. '집착과 욕망의 불꽃을 조금씩 끌 때마다 해탈이 된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탐진치'가 존재를 다 잠식해 버릴 정도로 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착의 불을 끄는 것이 열반이고 해탈이다. 그리고 그런 해탈을 이루는 것이 수행이다. 매일 수행을 하지 않으면 욕망과 능력의 간극, 그 사이에서 오는 '탐진치'의 불꽃을 제어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동양 철학은 종교하고 구별이 잘 안 된다. 동양은 철학이 곧 종교이다. 인격신 대신 천지를 준칙으로 잡는다. 서양은 인간과 자연을 뛰어넘는 초월자를 인격신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은 인간의 원초적 동력이다. 모든 존재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이고 구도자라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공무원 시험, 임용 고시 같은 어려운 일들은 기꺼이 한다. 물질적 이익을 위해서는 몸을 사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의 확충이나 인식의 자유에 대해선 대체로 무관심하다. 가치에 대한 사유, 삶에 대한 탐구는 게을리 한다. 그러나 철학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철학은 내 행동과 일상과 관계, 나아가 삶 전체를 규정하는 키이다. 왜냐하면 세계를 보는 눈을 바꿔야 행동이 나오기 때문이다. 감정이나 유행에 휩쓸려서 뭘 하게 되면 금방 식어 버린다.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이든 인생이든 뭔가를 바꾸려면 관점이나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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