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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정치의 기본적인 네 가지 전선, 즉 '혁신 대 기득권', '새로움 대 낡음', '미래 대 과거', '통합 대 분열''

김누리 교수는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새로운 사회로 변화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으로 86세대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을 지적한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왼쪽에 있는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등한 세계를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과 대결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의 상대는 언제나 외세에 기대어 기회주의적으로 사적인 이익만을 탐하는 수구 보수들이었다. 그들은 도덕적 하자가 너무나도 분명해 상대적으로 86세대가 도덕적으로 우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86세대들은 자기들보다 더 도덕적으로 우월한 진영과 싸워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내면에 뿌리내린 깊은 도덕적 우월감은 그들을 무능하게 했다. 생산적인 논쟁이 가능했단 진보 세력과 보다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방법을 놓고 경쟁했더라면 그들도 지금처럼 무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상대인 수구 보수 세력은 이미 역사의 썰물을 타고 자연 소멸될 세력이다.

여기서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의 흥미로운 분석을 다시 한 번 공유해 본다.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보면,  "한국에서는 '리(理)'의 중추로부터 배제되는 쪽은 '리'를 장악하는 쪽에 의해 가혹하게 지배 받는다." 그러므로 지금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가 벌이는 '리'의 쟁투는 대한민국 최초로 주류교체를 걸고 벌이는 진검승부이다.

비주류의 선봉에 선 현 정권을 중심으로 한 촛불세력은 두 개의 역사적 전쟁을 동시에 치르고 있다. 안으로는 '적폐 청산'의 '리'를 들고 '대한민국 주류 교체'라는 큰 전쟁을 치르고 있고, 밖으로는 '한반도 평화'의 '리'를 들고 국가의 명운이 걸린 생존 싸움을 하고 있다. 둘 다 위험하다. 왜냐하면 하나라도 패배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 싸움 모두 국민적 지지가 관건이다.

주류였던 보수는 단순히 정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대의명분인 ‘리’를 빼앗겼다. 보수의 사상/이념/비전/이론/정책이 국민의 동의를 잃고 있다. 매력 있는 인물도 없는데, 조직은 사분오열됐고, 메시지는 설득력이 약하다. 그냥 '혐오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지역/이념/세대/계층의 전선에서 보수는 주류에서 비주류로, 상수에서 변수로 전락하고 있다. 정치의 기본적인 네 가지 전선, 즉 '혁신 대 기득권', '새로움 대 낡음', '미래 대 과거', '통합 대 분열''서 보수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박성민 정치평론가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 전쟁을 우리는 지금도 한창 진행중이다. 지금은 부동산 정책으로 대결하고 있다. 어쨌든 김누리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수구 보수 세력과 싸우는 것은 이젠 역사적 정당성을 갖지 못하다고 본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발 딛고 선 바닥은 지극히 불안하고, 사회적 성숙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분석이다.  사실 발전은 압축적으로 할 수 있지만, 성숙은 압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개인들이 성숙해야 발전을 이룬다. 그래 나는 틈나는 대로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고 주장한다.  개별적으로 브레히트가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는 군사독재가 남긴 유산을 내명적으로 잘 청산하지 못하였다. 그것이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가려는 지금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 시간이 없다.

86세대의 내면에 남아 있는 도덕적 정체성이 한국 사회를 개혁하고 변혁하는 동력으로 살아나야 한다. 한 때 정의를 외쳤던 86세대, 도덕적이라고 간주되었던 한 세대의 정치적 실패는 사회 전체에 앤소주의 패배감, 좌절감, 무력감 같은 굉장히 나쁜 사회적 결과를 남기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나브로 빠져든 기득권 의식에서 벗어나 사회 변혁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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